2024 선거전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경제적 풍요와 낮은 물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행정부는 미국인들에게 자급자족 농업으로의 회귀를 적극 권유한다.
최근 달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2개 들이 한 박스의 무게가 24온스 이상인 대형 달걀(large egg)의 도매가격이 8달러 선을 넘어섰다. 매장마다 한정판매를 실시하고 있지만 판매대에 진열된 달걀은 삽시간에 동이 난다. 이같은 현상의 주된 동인으로 조류 독감이 꼽힌다. 조류독감 확산에 따라 대부분의 닭 사육농가에서 이들을 집단 살처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트럼프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공교롭게도 농무부의 조류독감 전문가들을 해고했다가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들을 재고용하는 등 부산을 떨었고 조류독감 전염에 관한 연구를 의도적으로 억눌렀다. 이들 모두 계란 값을 진정시키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높은 가격과 정책적 실수에 대한 여론의 압력이 가중되자 행정부는 몇 가지 방안을 얼기설기 짜맞춰 실효성 없는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중 하나는 닭 예방접종을 연구하는 방안인데 많은 가금류 농가들은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들이 접종된 닭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또한 이 제안은 예방접종에 관한 행정부의 회의적인 메시지와도 맞지 않는다.
트럼프의 또다른 전략은 탐욕스런 농부들이 스스로 닭을 폐처분하는 등 반경쟁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한마디로 닭 사육 농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전략이다. 좌파 성향의 일부 포퓰리스트 단체들 역시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에 가해진 거대한 충격보다 농가들의 담합이 계란 값 인상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며 정부와 한 목소리를 낸다.
가장 기막힌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가정에서 자체적으로 닭을 키워 계란값 폭등에 대처하라고 권장한다는 점이다. 폭스 뉴스에 출연한 브룩 롤린스 농무부장관은 “달걀 품귀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집 주위를 돌아보고 ‘뒷마당에 닭을 키우면 좋지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참 멋진 발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시 지역에서 생활하는 미국인 가구, 혹은 가금류 사육이 불법인 교외의 거주자들이 자체적으로 식량을 재배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생계형 식량재배에 모든 시간을 쏟아붓는 대신 생산성이 더 높은 다른 전문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와 같은 종(speies)에겐 대단한 승리다.
우리의 후기 농경사회는 미국인들이 더욱 부유하고, 건강하며, 오래살고, 여가로 채워진 삶을 영위하도록 허용했다. 한 세기 전에 정치인들이 모두의 ‘뒷 마당에 뛰노는 닭’이 아니라 ‘냄비에 담긴 닭’을 약속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류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동물 사육 경험이 전무한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에게 아마추어 가금류 사육가가 되라고 권장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조류독감에 노출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달걀을 스스로(DIY: Do-It-Yourself) 생산토록 하는 전략은 현 행정부가 다른 식료품의 가격인상에 소비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대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느냐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트럼프는 멕시코산 수입 야채와 캐나다산 유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려다 중단한 후 다시 부과하겠다고 밝히는 등 변덕을 부리고 있다. 현재로선 북미 관세의 대부분은 30일간 ‘중지’된 상태다. 그러나 관세가 시행되면 아보카도와 신선한 토마토를 비롯해 미국인 소비자들이 가장 즐겨찾는 과일과 야채 가격이 껑충 뛰어오른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아보카도의 90%, 토마토의 2/3가 멕시코 산이다.)
예를 들어 1월에 당신의 집 뒷마당에서 이들을 생산하려면 행운이 필요하다. 특히 캐나다에서 80%를 수입하는 비료의 핵심 원료도 (세율이 ‘고작’ 10%에 불과하지만) 트럼프의 징벌적 관세 적용대상에 포함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바로 이 관세가 일년 내내 농사비용을 비싸게 만든다. 닭장을 만드는데 편리하게 사용될 캐나다산 목재에 붙는 관세도 같은 효과를 낸다. 지난 금요일, 트럼프는 목재에 대한 추가관세가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뒷마당에 세울 닭장의 철사를 사려고 마켓에 간다고 가정해 보자. 안타깝게도 트럼프는 멕시코와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철강제품에 대해 새로운 보편관세를 별도로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다음주부터 시행된다. 국내 철강 가격은 관세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며 이미 들썩이고 있다.
트럼프도 수입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면 가격이 오른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의 행정부는 계란 가격을 낮추려는 명백한 목표아래 달걀을 추가로 수입하는 방안까지 구상한 바 있다. 하지만 계란 추가 수입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뿐더러 움직일 수 있는 추가 물량 역시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자급자족 생활행태를 다루는 ‘홈스테딩 인플루언서’ 콘텐츠는 소셜미디어에서 인기가 있을지 모르나 각 가정에서 스스로 가축을 기르고, 벌목을 하고, 강철 와이어를 아연으로 도금하는 것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방법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는 평생동안 경제적 독립성에 집착했다. 경제는 무역에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자족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리고 자급 농업은 트럼프의 이같은 허황한 집착에서 비롯된 논리적 결론이다.
만일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면 주(state) 역시 자립해야 하는 게 아닌가? 주가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야 한다면 지역사회도 그래야 마땅한 게 아닌가? 지역사회가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야 한다면 모든 남성, 여성과 아이들도 참여해야 하지 않는가? 아마도 이런 식의 추론일 터이다.
조류독감과 홍역 및 다른 전염성 질환들 사이에서 전통적 아내(trad wife)/재앙 준비자(prepper)의 라이프 스타일을 채택하는 것이 지금 당장은 매력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을 망각한 환상에 불과하다.
<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