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람 좋은 남자”로, 여성들에게는 “자상한 남자”로 알려진 40대 가장이다. 직장에서는 ‘nice guy’ ‘gentleman’으로도 알려져 있다. 동료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여성 동료들을 함부로 대하는 다른 남자직원들이나 상사들을 보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또 그런 일을 당한 동료에게는 뭔가 한 마디 위로의 말을 해 주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한 그런 사람 좋은 사람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로버트는 의리 있고, 희생정신 강하고, ‘끝내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남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시미 칼을 들고 가서 누군가를 위협하는 그런 해결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분해하거나, 억울해하거나,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을 때 이를 그냥 보고 지나가면 매우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서 마음을 써 주어야 편안해진다. 다른 사람들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 주어야 할 직무가 마치 그에게 주어진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다.
로버트는 또 사람들이 어떤 부탁을 해 오면 거절할 줄 모른다. 전화 외판원과 일단 통화 연결이 되면 대체로 그 물건의 필요 여부를 떠나서 구입하는 쪽으로 사단이 난다. 그래서 읽지도 않는 백과사전도 구입하고 몸에 좋다는 영양제, 심지어는 화장품도 구입하고, 단체, 기관에서 “이번 주에 좀 도와주시겠어요?” 부탁하면 가족들과 한 약속은 제쳐두고 일단 “Okay”를 한다. 로버트의 이런 증상을 ‘자상한 남자 증후군’이라고 한다. 가정에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상한 남편, 아빠가 아니라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상한 남자’ ‘멋진 남자’ 소리를 듣는 남자들을 일컫는 말로 상당수의 미국 남성들과 한국 남성들이 이 증후군을 앓고 있다.
하지만 자상한 남자가 뭐가 어떻단 말인가? 세상은 다른 사람, 특히나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문제는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상한 남자 노릇을 하느라 아내와 자녀들에게는 전혀 자상하지 않은 모순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느라 자신의 문제, 가정의 문제를 소홀히 하는 무책임한 남편이요 아빠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다른 사람 부탁에 “No” 하면 하늘이라도 무너져 내리고 상대방이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이라도 할 것 같지만 실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로버트에게 알려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로버트처럼 상대방 면전에서 거절하는 일이 힘들 때 약간의 전략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부탁이 들어오면 “저의 일정표를 검토해 보고 결정해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일정표를 검토하면서 이 일을 들어주었을 때 자신이 가족과 보낼 시간이나 하고 싶은 일들이 방해를 받는지 아닌지 확인한 다음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그리고 기꺼이 해주고 싶을 때 들어주도록 한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으면서 하기 싫을 때는 “힘든 부탁을 해 오셨는데 저는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통보하는 연습을 100번 정도 마음속으로 한 다음 그대로 전달하면 된다. 전화로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주문들은 전화기의 ‘Hold’ 단추를 일단 누른 다음에 5분 정도 생각을 가다듬어서 결정을 알려주는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잠깐 Hold 합니다.” 하고는 화장실로 가서 얼굴에 찬 물을 잔뜩 끼얹은 다음에 그 부탁을 정말 들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보다 현명한 판단이 서면 그때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면 되겠다.
“아니오.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 아이들과 할 일이 있어서 부탁을 못 들어드립니다.” 이렇게 거절해도 거절당한 사람들이 충격으로 쓰러지거나 로버트를 증오해서 버리지 않으며, 자상한 남자, 아빠 노릇은 가족들에게만 해도 세상은 그를 나쁜 남자라고 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 다음 위의 행동 수정전략으로 밖의 다른 사람들 일보다는 자신과 가족 일들을 먼저 돌보도록 했더니 로버트는 자신의 삶에서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rksohn@yahoo.com (213)234-8268
리차드 손 <임상심리학박사·PsychSpecialist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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