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재능을 찾는 것이 더 중요
시험, 성적이 없고 프로젝트에 몰두
그날은 처음으로 스키반이 모이는 날이었다. 스키는 남이 타는 것도 본적이 없었던 나는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학생들이 다 모이자 담당 선생님이 큰 소 다리뼈를 손에 들고 나왔다. 근처에 목장이 많았으니까 소뼈쯤은 흔히 보는 일이었기에 전혀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바로 그 다음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할 때 그 선생님은 갑자기 온 힘을 다해 그 뼈를 쇠로 된 책상 모퉁이에 내려 친 것이었다. 굉음과 함께 뼈는 산산이 부셔졌고 학생들은 “악!” 소리도 못 지른 채 넋이 빠져서 바라보았다.
놀란 우리들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선생님은 입을 열었다. “스키를 타다 보면 너희도 이 뼈같이 빨리 달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꼭 마음에 새겨둘 것은 너희들의 뼈는 이 소뼈만큼 강하지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해에 스키 사고가 났었겠는가 안 났었겠는가? 아주 개구쟁이 한명이 묘기를 부린다고 까불다가 잘못 떨어져 골절상을 입은 사건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 순간만은 모두 절대로 빨리 달리지 않겠다고 마음에 새겼었을 것이다.
또 한번은 생물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항에 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참 불쌍하구나, 평생 어항 속에 갇혀 있으니…”라고. 그런데 그 독백을 어떻게 들었는지 곧 그 괴짜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과연 우리의 처지는 물고기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라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일시적인 값싼 동정심을 깊은 철학적인 수준으로 승격시켜준 순간이었다. 그것도 철학 강의실이 아니고 고등학교 생물실에서.
이런 일은 학생과 선생님이 서로 잘 알고 친근한 관계에 있을 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모두 한 캠퍼스 안에서 같이 먹고 마시고 자며 같이 노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배움은 수업시간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력과 관심을 가진 교사진도 필수인데, 어떻게 된 일이었는지 시골구석에 박혀 있는 그렇게 조그만 학교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하버드, 스탠포드, 윌리엄스 칼리지, 매서추세츠대학(일명 U-Mass) 등 출신도 화려했고 학생들도 지극히 사랑해주고 또 자연에 둘러싸인 삶 자체를 아주 역력히 즐기는 선생님들이었다.
현실성도 높았던 것이 미술이나 재즈는 뉴욕 근처에서 일하는 현역들이 가르쳐 주었고 트럼펫과 트럼본은 근처 알바니의 재즈 클럽에서 트럼핏을 연주하는 분이 일주일에 한번씩 출장와서 직접 레슨을 해주었다.
학과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필요에 맞추어서 정했다.
그 예로 수학은 미분적분을 배우고 싶다니까 5명을 모아서 따로 반을 만들어 주었는데 중간에 두명이 탈락해서 3명이 되었고 두번째 학기에는 단 혼자가 되었지만 무엇이든지 배우고 싶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배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었다.
그리고 학기말에는 기말시험 대신 10일간 ‘Project Week’이라고 해서 학생이 평소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한 일들을 프로젝트로 삼아 몰두하게 했다.
성적표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기회를 활용해서 미술실에 들어가 인상파 화가부터 당시의 현대미술까지의 작품을 보고 모방작을 그려 보았다. 미술실에 갖추어진 물감이며 붓, 캔버스 만드는데 필요한 일체의 도구 등 미술에 필요한 모든 도구가 갖추어진 미술실이 극히 탐이 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 2주 동안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술실에 틀어박혀서 그림을 그려 볼 기회가 있었다. 모두 14편을 만들어 그렸는데 반 고흐와 피카소의 습작은 인기가 높아서 전시회가 끝난 후 달라는 사람에게 다 주었더니 나중에 미술 선생이 들어와 보고는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사고 싶어 하던 사람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 하루 4시간으로 공부도 잘할 수 있는가를 답하고 싶은데 그것은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과목들은 그렇게 수준이 높은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AP과목을 총망라해도 수재들은 몇년만에 다 독파할 수 있는 정도의 것들이다. 경쟁이 심한 유명학교에 가는 학생 중에는 여러 AP과목들을 자습해서 5점 만점을 받은 학생들이 많다.
문제는 관심과 취향과 재능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지 학원이나 개인지도를 받아가며 성적을 받아야 될 성질의 것들이 아닌 것이요,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학생이라면 그 학생은 먼저 그것이 자기의 적성에 맞는 것인가를 먼저 물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는 할 일도 많고 갈 길도 많은데 고등학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기초를 배우는 것이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 주는 선별의 과정으로써의 의미도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꼭 내가 하고 싶고 재능이 있는 것을 할 때 능률도 오르고, 또 혹 잘 안됐다고 해도 우선은 마음 먹은 대로 해 보았으니까 그 때에 가서 잘못된 목표를 일찍 수정할 수 있다고 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는 있는 것이 아닐까?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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