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스 데이를 며칠 앞둔 이번 주, 두 가지 사랑 이야기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하늘을 나는 우주인의 불같은 질투심, 그리고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신석기시대 남녀의 ‘5,000년 포옹’이다. 이성이 마비되어 죽을 길인 줄 알면서도 발을 내딛게 만드는 것, 둘이 함께라면 죽음도 불사하게 만드는 것 - 모두가 사랑이 벌이는 일들이다.
시간과 공간으로 수천년, 수만리 격절된 이들 사건은 묘하게도 상호 보완하며 구약의 아가서 한 구절을 증명해 보인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질투는 지옥처럼 잔인하나니 … 심히 맹렬한 불길을 가진 것이라. 많은 물로도 사랑은 끌수 없으며 홍수로도 잠기게 할수 없나니”
지난 5일 납치 및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체포되었던 리사 노웍(43)은 엘리트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여성이었다. 휴스턴 항공우주국(NASA) 소속 해군대령으로 지난해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한 우주인이자 삼남매를 기르는 어머니이다.
성공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완벽한 삶이었다. 하지만 동료 우주비행사에 대한 사랑이 끼어들면서 그는 추락하고 말았다. 삼각관계인 다른 여성을 제거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휴가 전날까지 아무 일 없는 듯 업무를 마치고, 변장할 가발, 무기, 현금 등을 꼼꼼히 챙겨서 범행에 나선 무서운 집착 - 지옥처럼 잔인한 질투의 발로이다.
우주인의 눈먼 사랑이 화제이던 6일 이탈리아에서는 좀 다른 사랑의 현장이 발견되었다. 공장 건축을 위해 땅을 파던 중 서로 마주보고 껴안은 모습의 유골이 나왔다. 고고학자들은 이들을 5,000-6,000년 전 젊은 남녀로 추정했다. 마침 발굴 장소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였던 베로나 시 인근이어서 ‘선사시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반만년 전 그들이 어떻게 젊은 나이에 죽었는지, 둘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꼭 껴안은 모습으로 보아 두 사람은 동시에 매장되었고, 그래서 갑작스런 비극적 죽음으로 추정이 되고, 그렇다면 필경 사랑하는 사이였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사랑 때문에 파멸을 맞고, 사랑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이런 ‘지독한 사랑’을 대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왜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이다.
문제 있다 싶으면 훌훌 털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편할 텐데 왜 그들은, 우리는, 특정한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걸까. 외모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훨씬 나은 사람이 옆에 있어도 마음은 오직 ‘그 사람’에게로만 향하고, 그의 눈길 하나 동작 하나로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며, 가슴앓이로 밥 못 먹고 잠 못 자는 사랑의 열병을 우리는 대부분 경험한다.
우리를‘제 눈의 안경’ 혹은 ‘짚신의 짝’으로 이끌어가는 그런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신화적 해석은 ‘큐피드의 화살’이다. 합리적 설명이 안 되는 사랑의 맹목성을 화살에 견주었다. ‘화살’이 꽂히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불교는 전생이라는 편리한 장치로 인연을 설명한다. 사랑하는 관계도, 사랑 때문에 받는 고통도 모두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냥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둘 다 확인 가능한 해석들은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각인’을 한 가능성으로 본다. 어린 시절 각인된 어떤 친근한 이미지에 우리는 저도 모르게 끌린다는 이론이다. 목소리, 성격, 체격, 냄새, 피부색 등 다양한 메시지가 뇌 속에 입력되어서 유년기에 이미 좋아할 타입이 결정되는데 이때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어머니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애인이나 배우자를 “처음 만날 때부터 왠지 오래 알던 사람 같더라”고 느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대입할 만한 이론은 아니다.
만남은 불가해한 신비의 영역이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까닭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중에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인연들에 감사하는 주간이다. 우리는 운명의 ‘그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하는 까닭’을 주고 있을까. 백발도 사랑하고, 눈물도 사랑하고 있는가.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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