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위대한 예술가들 중 38%가 우울증세를 보였다는 보고가 있다.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던 예술가 중 대표적인 인물이 빈센트 반 고흐이다. 태어날 때의 뇌손상에다 살면서 겪었던 수차례의 실연으로 극심한 우울증세를 보였던 고흐는 작품활동을 시작한 1880년부터 37세가 되던 1890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년 동안 무려 800점의 작품과 1,000여점의 데생을 남겼다. 고흐의 이같은 초인적인 창작열을 곤궁한 살림과 실연 등으로 상처 받았던 그가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 보였던 방어적인 행동으로 보는 정신분석학자들이 많다.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또 다른 유명인물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 윈스턴 처철이다. 명문집안 출신에 남부러울 게 없을 것 같았던 처칠은 그리 행복하지 못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이것이 그의 우울증의 원천이 됐다. 처칠은 “나에게는 평생 뒤따라 다닌 검정개 한 마리가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검정개는 우울증이었다. 입에 문 커다란 시가와 멋진 미소로 상징되는 처칠이 우울증으로 말못할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조금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검정개는 신분이나 사회적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든 따라 다닌다.
예술가들에게는 우울증이 창작혼의 근원이 될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일 뿐이다. 특히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우울증 환자 대다수가 자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자의 대부분은 우울증 환자이다. 연구에 따르면 자살자의 80% 정도가 우울증을 앓던 사람들이다.
이런 연구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최근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다. 며칠전에는 우울증을 앓던 한국의 한 젊은 여가수가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한인사회에서도 새해 벽두부터 한인들의 자살소식이 이어져 많은 이들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가족문제, 생활고 등 자살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몬 것은 결국 검정개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우울함과 맞닥뜨릴 수 있다. 가끔 ‘우울하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누구도 예외 없는 일이다. 당신이 어떤 경우에도 우울한 감정을 느껴 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는 지고한 영성을 가졌거나 감정회로에 문제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감정이 지속되고 병증에 이를 때이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인생에서 우울증과 만날 확률을 15% 정도로 본다. 특히 우울증이 마음의 병이기에 앞서 “인간의 정서를 관장하는 뇌의 변연계에 문제가 생겨 일어나는 질환”인 것으로 밝혀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울증이 초래하는 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 ‘부끄러운 병’이란 게 원래 세상에 없지만 우울증은 더더욱 부끄러운 병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지와 관계없이 당뇨병에 걸리 듯 그렇게 찾아오는 병일 뿐이다. 신체적인 불균형은 약물을 통해 바로 잡고 마음의 불균형은 사회적·심리적 치료를 통해 바로 잡아가면 된다. 뒤따라 다니는 검정개를 때론 잠재우고 때론 잘 쓰다듬으며 도닥거리 듯 말이다.
전문의들은 문화적인 이유로 한인들의 우울증의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음을 안타까워 한다. 한인이나 중국인 등 동양문화권에서는 우울증을 질병이 아닌, 당사자의 의지가 박약해서 나타나는 증상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여전히 지배적이며 우울증으로 밝혀진다 해도 가족 내에서 해결하려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발병 후 의사를 찾기까지의 기간이 미국인들에 비해 훨씬 길다. 코미디언 짐 케리는 한 토크 쇼에 나와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 복용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또 배우 브룩 실즈도 산후우울증으로 고생한 얘기를 대중 앞에 스스럼 없이 털어 놓았다. 이제 우리에게도 이런 문화와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자기사랑’이다. 의사들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들이 많이 자살하는 시기는 오히려 병세가 어느 정도 호전된 시점이라고 한다. 바로 수치심의 작용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성향에 비춰볼 때 자기를 사랑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을 것 같지만 제대로 자신을 사랑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여러 가지 가면을 갖고 살아간다. 검정개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이것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한가지 가면만을 보이려 자신을 억압할 이유도, 여러 가면을 갖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자기사랑’을 절대 잊지 말라. 자기를 악착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이기적이란 말은 들을지 몰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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