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한국의 한 대형교회 목사가 설교를 통해 “부시 가문이 대를 이어 대통령이 된 것은 악의 세력을 ‘부수’라는 하나님 뜻이며 특히 W. 부시의 당선은 ‘더블로’ 부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는 보도에 실소한 적이 있다. 이 목사의 풀이대로 이름값 하느라고 그런 건지 십자군 의식을 드러내며 기세등등하게 이라크에 들어갔던 부시가 몇년째 헤어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다.
부시의 현 처지는 미군이 이라크 국경을 넘어선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이라크라지만 부시의 의도대로 요리되지 않으리란 것은 피자 한 조각만한 역사의식만 있었더라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미 행정부가 최고의 두뇌를 가진 엘리트들로 구성돼 있다지만 이들 역시 리더 한 사람의 역사의식과 판단에 이끌려 가는 ‘집단과 권력의 속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이라크 사태는 잘 보여준다.
리더로서 부시가 보이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웹스터사에 의해 ‘2006년의 단어’로 선정된 ‘트루시니스’(truthiness)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말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뜻한다.
부시뿐 아니라 많은 리더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의 하나는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한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균형 있는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다. 이런 경향이 반복 지속되다 보면 기온은 영하인데도 몸은 후끈 달아오르는 것처럼 의식 속에서 ‘저체온 현상’과 비슷한 불균형이 일어난다.
지난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시는 이라크 사태와 관련한 자신의 실책을 일부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승부수로 바그다드 일부지역 확보를 위해 미군 2만여 명을 증파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의 지도자로서 구겨진 그의 자존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과연 그의 고집이 미국의 국익과 이라크의 장래, 나아가 세계의 안전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이라크에 들어간 전비는 무려 4,000억 달러에 달한다. 전국적으로 경찰관을 800만명 이상 증원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이 경찰관만 늘린다고 해도 미국은 범죄가 발붙일 수 없는 ‘안전의 땅’이 될 것이다. 앞으로 들어갈 돈까지 따진다면 무엇이 미국을 위한 것인지 답은 자명해 진다.
정말 훌륭한 리더는 ‘아니다 싶을 때 멈출 줄 아는’ 사람이다. ‘멈춤의 철학’을 체계화 한 사람은 수나라 때 유학자 왕통이었다. 그의 철학은 “삶에는 나아가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잠시 멈추는 것도 있다”는 말로 집대성 된다. 그는 ‘나아감’과 ‘멈춤’의 상호보완을 강조하면서 멈춤의 ‘지’(止)와 멈추지 않음의 ‘부지’(不止)가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이자 큰일을 이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계라고 말한다. ‘멈춤’은 패배나 후퇴가 아니라 용기 있고 능동적인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는 철학이자 덕목이라는 것이 왕통 사상의 요체이다.
이런 멈춤의 지혜를 생활의 죽비로 삼고 있는 사람의 하나가 중화권 최대 거부인 홍콩의 리카싱이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 ‘멈춤을 안다’는 뜻의 ‘지지’(知止)라는 커다란 액자를 걸어 놓고 경계로 삼고 있다.
“가다가 그만 두면 아니 감만 못하다”는 시조가 있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간만큼 남는 것이요 때에 따라서는 아니 가는 것만큼 이익이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다.
멈춤의 지혜는 리더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투자에서 실패하고 있을 때 손을 뗄 수 있는 통제력, 중독의 조짐이 보일 때 발을 뺄 줄 아는 자제력과 의지. 이 모든 것들이 멈춤의 지혜이다. 그래서 투자의 귀재 코스톨라니는 “뱀에게 팔을 물렸다면 독이 온몸에 퍼지기 전에 그 팔을 잘라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100명 가운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5명도 안된다고 한탄한 것을 보니 멈춤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멈춤은 파탄과 파경을 막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생명을 살린다. 한해를 잘 달려가기 위해서는 개스가 충분한 지, 또 액셀은 잘 작동하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브레이크를 철저하게 살피는 일이다.
부시는 이제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면서 이라크에서 하루속히 손을 떼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그의 결단을 돕기 위해 백악관에 왕통의 책 보내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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