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NFL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뉴욕 자이언츠의 러닝백 티키 바버가 지난 7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끝내겠다고 일찌감치 밝혔던 바버는 자이언츠가 필라델피아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 1회전에서 패함에 따라 아쉽게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바버는 NFL 러닝백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탑 클래스 선수이다. 그의 올 정규시즌 16경기 러닝은 총 1,662야드. 경기당 100야드 이상을 뛴 것이니 러닝백으로는 최고수준의 성적이다. 올해 31세로 커리어의 정점에 서 있던 바버의 은퇴선언은 많은 풋볼계 인사들과 팬들을 놀라게 했다.
바버는 왜 은퇴를 결심했는지, 또 현역에서 물러난 후 무엇을 할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러니 은퇴를 선언한 그의 속내를 100% 알 수는 없는 일. 다만 평소 그의 성품으로 미뤄볼 때 연봉 800만달러를 받는 풋볼보다 좀 더 의미있는 것을 추구해 보자는 뜻이 아닌가 짐작해 볼 뿐이다.
최정상에서 떠났던 또 다른 스포츠 스타로는 NFL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러닝백이었던 배리 샌더스가 있다. 89년부터 98년까지 153경기에서 1만5,269야드를 뛰며 자타가 공인하는 NFL 최고의 러닝백으로 자리매김했던 샌더스 역시 전성기인 98년 시즌을 끝으로 별다른 설명없이 은퇴하고 고향 오클라호마로 돌아갔다. 현 NFL 최고 러닝기록이 에밋 스미스가 지난 2002년 세웠던 1만8,355야드이니 샌더스는 몇 시즌만 더 뛰었더라면 불멸의 기록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향에서 비즈니스를 하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그가 얼마전 인터뷰한 것을 보니 은퇴결정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정상에 있을 때 내려 오는 것은 어려울 뿐더러 드물다. 스포츠와 은막의 스타들 가운데 간혹 그런 인물들이 있는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여건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선 벌만큼 벌었다는 것이다. 지극히 범속한 유추일지는 모르지만 경제적인 여유를 배제하고 이런 결정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또 많은 경우 이들은 최고의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지난 1941년 36세의 나이에 절정의 인기를 버리고 은막을 떠난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그랬다. 가르보는 “늙어가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은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부와 명예를 넘어서는 어떤 가치가 있다는 통찰력과 각성 없이는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기란 힘든 일이다.
중국 역사에 나오는 범려는 월왕 구천의 재상이다. 그는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복수를 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최고 참모였다. 구천이 부차를 죽인 후 기쁨에 들떠 논공행상을 할 때 가장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던 범려는 홀연히 떠나갔다. 그는 “구천은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어도 기쁨을 함께 할 수는 없는 군주”라는 말을 남겼다. 뒤에 남아 자리에 연연하던 많은 신하들은 구천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람이 자리에서 떠날 때를 아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떠날 때를 알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일이 그렇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잘 나갈 때 떠나는 일은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보는 멋진 일이다. 하지만 당장의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항상 내려올 준비를 하는 마음의 자세는 가질 수 있다. 위로 오르는 일은 눈을 부릅뜰 일일지 몰라도 내려오는 일은 눈을 감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할만큼 하지 않았는가” “국민들이, 교인들이, 조직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리 보전을 위해 비루함을 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용퇴’와 ‘쓸쓸한 퇴장’은 모양과 시기에 있어서 종이 한장 차이다. 지난 중간선거 후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럼스펠드도 조금만 더 일찍 사임했더라면 그나마 ‘용퇴’로 평가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실기함으로써 스타일을 구겼다. 정계와 종교계 등 곳곳에 ‘용퇴’와 ‘쓸쓸한 퇴장’의 경계에 서 있는 많은 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산에 올랐으면 아직 밝다고 생각되는때 하산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곳의 어둠은 생각보다 일찍, 그리고 갑작스레 찾아오기 때문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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