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대충 어림짐작으로, 눈대중으로 두리 뭉실. 오늘은 푸릇푸릇 맛있는 시금치 무침이 되고 내일은 누렇게 뜬 시금치 무침이 되는 이유. 육즙이 살아 있으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 절이기의 비법. 우리 조상들이 김치를 담그며 절차에 따라 절이기와 담그는 시간 차이를 두는 이유 등등. “옛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더라”라는 그 조상들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서말이라는데 선조들이 대대로 이어오는 음식 만들기 비법의 근본은 바로 과학이다.
삶으면 누래지는 시금치, 퍽퍽한 고깃살, 부풀지 않는 빵반죽…
도대체 왜?
<야채요리와 과학>
▲클로로필 - 초록색
<클로로필이 풍부한 시금치>
시금치, 브라컬리, 케일, 그린 페퍼, 스노 피, 콜라드 그린 등에 들어 있으며 염분과 만나면 더욱 푸른색으로 변하고, 식초와 만나면 누렇게 변한다. 푸른색이 나는 야채들을 삶을 때 소금을 충분히 넣고 삶으면 짙푸르게 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캐로틴 - 오렌지 또는 노란색
<캐로틴 성분이 풍부한 당근과 감>
당근, 콘, 토마토, 노란페퍼, 오렌지색 페퍼 등에 들어 있는 색소며 특별히 식초나 염분 등에 민감하지 않다.
▲안토시아닌 - 붉은색, 보라색, 푸른색
붉은 무, 붉은 양배추, 가지 등에 들어있는 색소이며 물에 녹는 성질이 있어 오랫동안 물에 담가 놓으면 보라색물이 양배추에서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초를 넣으면 색이 더욱 선명해 지는 성향이 있고 염분과 만나면 색이 탈색이 된다.
▲베타레인
<소금물에 삶아서 검게 변한 비트>
붉은색 비트에 들어 있으며 식초와 만나면 색이 붉어지고 염분과 만나면 미끄덕거리게 변하며 더욱 진한 브라운색으로 변하는경향이 있다.
<고기요리와 과학>
고기를 재우는 이유에서도 단순한 과학을 살펴볼 수 있다.
식초, 오일, 허브 등이 고기재우는 필수성분들인데 이 성분들이 고기의 단백질 구조 안으로 스며들어 고기를 부드럽게 한다. 가장 쉽게 맛이 스며드는 흰살 고기류들(닭고기, 생선)은 그 육질구조가 붉은 고기 성분보다 훨씬 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기 재우는 시간도 그만큼 짧게 잡아야 한다. 고기를 너무 오랫동안 재워 놓았을 때 발생되는 맛의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고기 재울 때 사용된 식초(산) 성분이 시간이 오래지남에 따라 고기의 표면을 알게 모르게 서서히 익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결과로 건조한 맛의 고기를 먹게 되는 것이 이유이다.
또 다른 쿠킹테크닉의 하나로 브라인닝(Brining)을 간과할 수 없는데, 이것은 고기구조를 알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다. 보통 퍽퍽한 살의 포크찹 스테이크나 터키를 요리하기 전에 사용되는데, 소금물에 고기를 12시간 정도 담가 놓아 고기의 성분 안으로 수분과 염분이 스며들어 고기를 덜 퍽퍽하게 만들어주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퍽퍽한 부분의 고기가 요리되면서 이미 물에 담가 두어 물기가 충분히 고기에 배어 있으므로, 소금 물기가 조금 빠져나간다고 해도 요리가 된 후 먹을 때는 좀 더 촉촉한 맛의 고기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붉은 무·가지는 염분 만나면 탈색
고기 너무 오래 재우면 맛 건조해져
밀가루 충분히 쳐야 잘 부풀고 쫄깃
<베이킹에 쓰이는 과학>
밀가루와 물만 있으면 기적처럼 부풀어 올라서 빵이 만들어 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듯 싶다. 하지만 간단한 기본원리를 알아 둔다면 이유도 모르게 빵 만들다가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스트는 수분(물, 계란, 우유 등), 적당한 온도, 산소와 설탕 성분이 있어야 스스로 살아나서 부풀어 오른다. 또 밀가루는 성분의 차이에 따라 복잡하게 여러 이름으로 나누어진다.
▲브레드 밀가루
가장 높은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지만(12~14%) 스타치(녹말) 성분은 낮게 들어 있다. 단백질 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빵 만들기에 필요한 단단한 구조를 만드는데도 도움이 된다. 스타치 성분은 반죽 과정에서 설탕으로 변해 이스트가 먹고 자라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정리해 말한다면 빵을 만들어주는 것은 ‘글루텐’이라는 성분인데 이것은 밀가루를 열심히 쳐대는 과정에서 물기와 합쳐지면서 만들어지며(쫄깃쫄깃한 빵의 결), 빵이 충분히 부풀어 오를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쫄깃한 수제비나 식빵을 먹으려면 열심히 반죽을 해야 한다고 늘 말하던 할머니의 조언이 그냥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바로 과학인 셈이다.
▲패스트리와 케익용 밀가루
<패스트리용 밀가루로 만든 퍼프 패스트리>
가장 높은 스타치 성분이 들어있는 반면 가장 낮은 단백질 성분(7~9%)이 들어있다. 패스트리의 레서피를 보면 빵과는 달리 살짝, 가능한 밀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만 섞으라고 되어 있는데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많이 섞어서 글루텐이 형성되면 부드러운 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나무주걱으로 글루텐이 형성되지 않을 만큼, 살살 섞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므로 레서피에 적혀 있는 대로 해야 한다.
▲다목적용 밀가루
스타치 성분과 단백질 성분이 균일하게 들어있어 말 그대로 다목적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쉽게 빵을 만들거나 팬케익을 집에서 구울 때면 왠지 집에서 만든 티를 감출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다목적용 밀가루를 쓰기 때문일 수도 있다. 편리하긴 하지만 그만큼 단백질 성분이나 글루텐 함량이 적기 때문에 부드러운 케익 만들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기회가 있다면 케익용 밀가루로 케익 만들기를 다시 한번 시도해 보면 좀 더 부드러운 전문가 같은 케익을 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은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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