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받으면 선물이고 남이 받으면 뇌물”은 너무 고전적인 정의에 속하고 이보다는 “뇌관이 달려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선물이 뇌물”이라든가 “받고 나서 고뇌하게 되면 뇌물”이라는 해학적인 풀이가 훨씬 현실성이 있는 보인다.
작가 에머슨은 모든 선물에 뇌관이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가졌던 듯하다. 그래서 선물에 대해 병적일 정도의 결벽증을 보였다. 그는 한 에세이에서 “우리는 뭔가를 주는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손으로 그것을 받아 먹다가는 언제 그 손이 물릴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썼다.
에머슨의 결벽증은 지나친 감이 있지만 선물에 어느 정도의 호혜성이 깃들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을 연구해 온 언론인이자 생물학자인 매트 리들리는 선물의 의미에 대해 “한편으로는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량이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물을 받는 사람을 의무감에 묶어 놓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이론에 따르면 선물과 뇌물에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관계의 표현물로서 선물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핏줄끼리 주고받는 선물이 아니라면 100% 순수할 수 만은 없다. 그럼에도 타인들과 주고받는 선물은 여전히 자신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호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온갖 선물광고가 넘쳐 나고 수많은 이들이 좋은 선물을 고르기 위해 샤핑센터에서 발품을 팔거나 인터넷 샤핑몰에서 손품을 판다.
선물상품 목록이나 광고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무슨 선물을 주어야 좋은 느낌을 안겨주게 될까” “상대가 이걸 받고 시큰둥해 하는 것은 아니겠지…” “언제 건네는 게 좋을까” 등등. 그런데 선물을 고르고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했다가는 “쓸데없는 짓 했다”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고(많은 돈 썼는데 별로 필요 없는 물건을 받은 배우자) 상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주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격의 적정선도 고민거리가 된다. 평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던 주변사람들에게 선물로 그 마음을 전하는 계절에 이와 관련한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해 본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선물의 기술’이라고나 할까.
■상대방에게 유용한 것을 골라야 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상대가 꼭 필요로 하는 선물을 고르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평소 상대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없다면 무슨 선물이 유용한가를 알아채는 것 자체가 힘든 일 일수 있다.
요즘은 각종 선물권이 유행이라 선물하기가 한결 편해지기는 했지만 선물권을 받을 때와 정말 필요한 물건을 받아들 때의 기분을 비교할 수는 없다. 상대에게 별 필요 없는 흔하디 흔한 물건을 건넬 경우 그 선물은 재활용돼 다른 이의 손으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 세상일 돌고 돈다는데 선물도 돌고 돌아 다시 당신 손에 들어오는 황당한 경험을 하지 않게 되리란 법이 없다. 미국인들의 70% 이상이 받은 선물을 재활용한 경험이 있다니 결코 그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을 듯. 선물을 할 때 마음을 담은 짤막한 메모 동봉은 기본.
■이왕 줄 선물이라면 서둘러 주는 게 좋다. 혼자서 달리는 것이 여럿이 섞여 달릴 때보다 남의눈에 잘 뜨이고 확실하게 기억되는 법. 받는 사람의 기억의 트래픽이 심하지 않을 때 건네는 선물은 훨씬 큰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도 첫사랑이 오래 기억된다. 선물의 한계효용을 따지자면 남들보다 일찍 건네는 것이 경제적 효과가 더 큰 셈이다.
■직접 건네받은 경우는 물론이고 우편이나 인편으로 받은 경우에도 잘 받았음을 알리면서 꼭 고마움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선물을 받았다고 답례로 선물을 하는 경우이다. 자칫 상대방의 선물을 거래로 만들 수가 있으며 엎드려 절 받는다는 불쾌한 느낌을 줄 수도 있으므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표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올 연말에는 남들만 챙기지 말고 당신 자신에게도 선물을 주어라. 하나님이 인류에게 구속의 상징으로 준 예수 그리스도도 큰 기쁨의 선물이겠지만 말이다. 좋은 음식, 좋은 공연으로 한번 호사를 누려보면 어떨까. 아니면 짧은 여행도 좋을 것 같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자격이 있다. 올 한해 정말 열심히 달려 왔으니까.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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