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경(브롱스 MS 142 교사)
나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명랑하고 총명하고, 학우들과의 관계가 원활함”이라고 쓰여 있다. 한국에선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고 친구들이 많았던 내가 뉴저지주로 이민왔을 때 나는 사춘기에 접어든 나이였다.
영어는 못하지만 내가 잘하는 한국어 실력을 아무도 인정하기는 커녕 한국이라는 나라를 들어보지도 못하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identity)의 일부인 김치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 때, 나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하락할 뿐이었다.
나의 모국과 모국어, 또 내가 한국인이기에 자랑스러웠던 것이 차츰 변하여 한때는 열등의식까지 느꼈다. 본인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자는 공부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 때 나의 손을 잡아주며 “너는 세계에서 둘도 없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한글의 주인이고 자랑스런 한국인이니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거라”라고 하는 한국인 교사가 학교에 있었다면 나는 어떠한 젊은이로 성장했을까 생각해 본다.
나의 민족, 나의 문화, 나의 모국어, 나의 음식을 남들이 인정해 주고 호감을 가질 때 우리에겐 자부심과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 확실하다.브롱스 과학고등학교에서 우리 한국학생들이 조금만 잘못하면 카운셀링을 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노력보다는 퇴학시키는 사례, 혹은 전학을 권하는 것을 더 많이 듣고 보는 것같아 마음이 아팠다.
6년 전, 이들을 도울 수 있을 방법을 생각하다가 언어소통이 불편한 한국계 학부형들에게 전화해 주는 일을 자원봉사 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그 당시 거만한 학교측의 태도에 불쾌감만 느껴 나와버렸지만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을 시간이 흐른 뒤 후회했다.
그러던 중 지난 겨울, 본인의 혜택이나 이익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우리 학생들과 한국어반 확장만을 위해 최대한의 정성을 쏟는 최경미 선생을 만났을 땐 반갑고 고마울 뿐이었다. 최 교사를 도와 함께 일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4월에는 나의 중학교 한국어 학생들도 브롱스 과학고 학생들의 코리안 페스티발에 참여해 동요와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또 하나의 매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최경미 선생은 지난 2월 초에 Reidy 교장선생님, Rocchio 외국어 총책임자, 한국어진흥재단의 문애리 박사, 한국학부모 이용원 회장과의 회의중 한국어 프로그램이 권리를 못 찾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의 조언을 받아 한국어반 수를 늘리자는 수백명이 서명을 한 청원서와 학부모, 학생들, 나아가 학교와 관계 없는 몇몇 분들도 교장선생에게 한국어반을 확장시켜야 할 이유와 한국어반의 긍정적인 영향의 내용등이 담긴 수십통의 편지를 보냈다.우리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한글과 자랑스런 문화를 이 뉴욕땅에서 우리 2세들과 타민족들에게 가르치려 열심히 노력하는 최선생을 당연히 모두 지지하리라 믿은 것은 오산이었다.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쳤던 유관순 누나에게도 이러한 장벽은 있었으리라.
어찌해서 학교측에서 허락하는 한 과목의 한국어만 얌전히 가르치지 않고 물결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냐고 하지 않나, 한국어 확장은 시기상조 아니냐, 교장선생에게 심려를 끼치는게 아니냐, 더 나아가 한국어를 한국계 학생이 공부하면 대학 입학시 불리하다는 등의 이유로 최선생의 노력은 오히려 도전을 받았다.
여기 이 도전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말하고 싶다.
1. 한국의 교육문화와 달리 미국의 공립학교에서는 본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판단을 내렸을 때는 당당한 대우와 권리를 찾을 때까지 예의를 지키며 목소리를 높이는 자가 존경을 받는다.
2. 수십년 전부터 미국의 공립고등학교에 일본인 학생이 몇 명 안되어도 일본어는 자리잡고 잘 뿌리를 내리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 언어를 번창시키는 것은 오히려 시기상조라니? 영어에 “Something is wrong with this picture...”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건 뭐가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 되었는데...”라고 번역해도 되겠다.
우리 뉴욕시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학교에서 스페인어, 이태리어, 일본어 등은 잘 진행되어가고 있지만 어찌하여 한국어는 한 과목, 그것도 모자라 존속의 여부를 걱정하는 상황에 있어야 할까,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데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니 이젠 민족의 거국적 단합이 필
요하다고 본다.
3. 교장선생님의 심려 끼치는 것 때문에 한국어를 택하겠다고 신청한 69명의 한국계와 타한국계 학생들의 실망과 장래는 묵인해야 옳은 것인가!
브롱스 과학고등학교에 하루빨리 한국어가 제 2외국어로서 인정받는 과목으로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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