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가을이 되니 계절의 상징인 국화꽃이 곳곳마다 갖가지 색들로 만발하고 있다. 국화꽃은 보면 향기보다 그 색깔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을꽃은 아무리 화려해도 왠지 가엾은 느낌이 든다. 아무리 진한 색깔을 자랑해도 가을꽃은 가을 햇볕처럼 어딘지 모르게 여윈 색들이다. 그런 꽃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가을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자기 몸을 물들이면서 마음껏 아름다워 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색깔을 내는데 봄철의 시작은 다들 같았지만 가을이 되면 차별이 생긴다. 그 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기는 바라지도 않는 일인데 내가 정작 바라는 일보다 바라지 않는 일들이 더 많이 온다. 그런 것은 바로 우리에게 많은 혼돈을 남겨 주었다.
그런 혼돈을 잘 견디어 낸 사람들, 그런 혼돈을 잘 견디어낸 나무들은 색깔이 아주 곱다. 그러나 혼돈이나 고난을 겪지 않고 되는대로 살아온 사람이나 아무렇게나 자라나는 잡풀들은 색깔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다. 잡풀의 특징은 시들어 버리지 고운 색깔이 안 나온다. 많이 흔들리고, 시달림을 많이 당한 나무일수록 그 단풍이 아름답다.
우리가 직장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도 참 보기가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 1년 동안 해온 일을 가만히 옆에서 보면 참 열심히 했고 맑게 했고 참 정성을 다해서 하였다. 이런 사람은 정말 아름답게 보인다. 그래서 결실의 계절, 즉 다시 얘기해서 가을이라고 하는 것은 냄새로서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서 향기가 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 열심히 한 사람, 맑게 한 사람을 참 보기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결국 향기는 보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진 아내는 남편을 현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부인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참 아름답게 보이고 어떤 사람은 추하게 보인다. 아름다움은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남편에게 내조를 잘 해서 남편을 훌륭하게 만든 부인들을 보면 참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내조로 남편을 성공시킨 부인의 예는 한 두 건이 아니다.
그러면 이 아름다움은 언제 볼 수 있는가. 마지막에 가서 아름답느냐, 아름답지 않느냐가 판가름나게 되어 있다. 한문에 봄을 알리는 춘(春)자를 보면 사람 인(人)자가 들어가고 가을을 말하는 추(秋)자를 보면 불 화(火)자가 들어 있다. 이것의 의미는 봄에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가을에는 나무에 불타듯이 불을 지피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을을 일컫는 추(秋)자는 단풍이 물들어 가는 것을 말함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점이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절적으로 가을은 지금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추수 때와 같이 걷어 들여야 할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그 때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정말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보여줄까, 아니면 잡풀처럼 그냥 시들어 버릴건가. 결과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행보에 달려 있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그냥 오지 않는다. 가을이 됐어도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공통분모가 다 온몸이 노곤하고, 온 정신이 노곤하고, 온 마음이 노곤할 뿐이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운동과 같아서 열심히 삶을 꾸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힘이 되는 근육이 붙고,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은 가을이 되면 모든 것이 운동 부족으로 노곤하기만 할 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해답은 내 앞에 놓인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다. 올
가을에 아름다운 색깔의 향기를 내보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내년에 가을은 또 온다. 가을이 오기 전에는 반드시 시작이 되는 봄이었으니 시작에서부터 다시 열심히 계획하고 노력하고 마음을 잘 가다듬어서 해나가야 한다.
가을이 되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중에도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가을 단풍의 색깔을 보이고 떠난 사람들은 밤이 깊어도 잠이 들지 못하도록 아련한 감동을 남기고 있다. 그 것이 가을에 생각나는 아름다운 향기의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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