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논설위원
우리 신문사가 위치한 행콕팍 지역은 고풍스러운 부자 동네이다. 도로 양옆으로 잘 가꿔진 정원들이 이어지고 정원 멀찌감치 안쪽으로 수백만달러 짜리 저택들이 들어앉아 있다. 박물관 같기도 하고 백악관 같기도 한 저택들이 늘어선 길로 매일 출퇴근을 하며 동료들과 가끔 농담을 한다.
“세상은 고르지도 못하지. 똑같이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저런 저택에 살고, 어떤 사람들은 집도 없이 살아야 할까?”
라스베가스의 부호 스티브 윈이 그런 저택 수십채 값의 그림을 찢은 것이 요즘 화제이다. 미라지, 벨라지오를 개발했고 윈 호텔을 새로 연 카지노 억만장자 윈은 미술품 애호가로 유명하다. 그의 소장품들 중 피카소가 1932년 당시 애인 마리-테레즈 월터를 그린 ‘꿈’이 있는데 헤지펀드 거부인 그의 친구 스티븐 코헨이 수년 전부터 눈독을 들여왔다. 그래서 최근 두 사람은 그림 값으로는 사상 최고인 1억3,900만 달러에 ‘꿈’을 사고 팔기로 합의를 했다.
사고가 난 것은 그림과 돈을 맞바꾸기 직전이었다. 라스베가스를 방문한 바바라 월터스 등 친구 일행에게 윈이 그림을 보여주던 중 팔꿈치로 캔버스를 쳐서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시야가 좁아지는 색소성 망막증을 앓고 있는 그가 신나게 설명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저지른 일인데 캔버스 찢어지는 소리가 상당히 컸다고 한다.
그 ‘대형 사고’를 윈은 거부다운 대범함으로 수습했다. 캔버스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확인해보고 나서도 그림 설명을 계속하고, 몇 시간 후 다시 그 일행과 만나서 “그림일 뿐이다. 누가 병들거나 죽은 건 아니지 않는가”라며 즐겁게 저녁식사를 하고, 매매 계약은 없던 일로 하고, 그림은 수선을 맡겼다. 그러면서 ‘모든 게 스케일의 문제’라고 했다고 당시 참석자들은 전했다.
흔치않은 사건인 만큼 주류 미디어에는 이를 소재로 한 칼럼들이 여럿 실렸다. 그중 LA타임스에 실린 칼럼이 인상적이었다. 로브 롱이라는 칼럼니스트가 윈 호텔에 묵으며 경험한 에피소드를 함께 엮어 썼다.
윈의 객실 미니 바에는 센서가 있다고 한다. 고객이 음료수나 간식을 꺼내면 바로 객실담당 전산실로 연결되어 숙박료에 가산이 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다이어트 코크를 집었다가 진저레일로 바꾸었더니 센서가 두 개를 다 소비한 것으로 읽어서 음료수 값이 이중으로 부과되었다. 그래서 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항의를 하니 음료수 값 하나를 깎아 주더라며, 누구는 1억3,900만 달러 손실에도 느긋한데 “나는 겨우 진저레일 하나 값을 가지고 실랑이를 하는구나”라고 그는 썼다. “세상 참 고르지도 못하다”는 느낌이 백번 이해가 된다.
같은 행성, 같은 시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지구를 한 마을로 축소해보면 그 동네사람들 삶의 모습은 어떻게 나뉠까. 수년 전부터 사이버 세계에는 그런 가상의 마을이 만들어져 세계 수백만 명에게 전해져왔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글이다.
시작은 다트머스 대학 환경학 교수였던 도넬라 메도우스 박사의 칼럼이었다. 메도우스 박사는 지난 1990년 ‘지구촌 보고서’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세계가 만일 1,000명의 마을이라면’을 서두로 풀어나갔다. 세계 인구 통계 비율을 그대로 적용해 인종, 종교, 언어, 나이별 인구, 소득 등을 분류한 내용인데 언제부터인가 인구가 1,000명 대신 100명으로 줄고, 내용이 보태지고 조정되면서 인터넷을 떠다니고 있다.
일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세계 부의 59%는 6명이 소유하고 있고, 그들은 모두 미국사람들이다. 80명은 수준 이하의 주거시설에 살고 있고, 50명은 영양실조이다. 대학 교육받은 사람은 1명이고 2명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어진다. “냉장고에 먹을 게 있고, 몸에 옷을 걸쳤고, 머리 위로 지붕이 있고 잠잘 곳이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 75% 보다 부자이다”“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있고, 집안에 잔돈이 굴러다닌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8%안에 드는 사람이다”
‘고르지도 못한 세상’하고 불평하려던 입을 머쓱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저택에는 못 살지만, 피카소 그림도 없지만 지구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이 가을에, 자족을 연습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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