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희 기자
화장품
한달 전 스리랩(3 Lap)이 시작이었다. 미국의 니만 마커스 같은 고급 백화점에서 파는 명품화장품이라고 과대광고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한국서 환불소동과 함께 ‘가짜 화장품’이라고 엄청 두들겨 맞았다.
그러더니 지난 주 진짜 명품화장품인 SK-II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외신을 탔고, 바로 이틀 전 랑콤, 에스티로더, 크리스천 디올, 클리닉 등 4개 화장품의 콤팩트파우더마저 중금속이 함유돼 있다는 뉴스가 뜨면서 화장품 업계는 지금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업계만 난리인가? 피해자인 소비자들, 여자들은 더 황당하다.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침저녁으로 매일 화장품을 쓰기 때문에 이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가 없다.
엊그제 한 무리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화장품 이야기로 밤새도록 토론이 이어졌다. 각자 사용하는 화장품, 평가 및 경험담, 트러블이 생겼을 때의 치료법 등등…
그런데 이날 가장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나였으니 불행히도 나는 위에 열거한 모든 화장품을 다 써보았기 때문이다. 어디 나뿐인가? 대다수의 여성들은 다 한두 번씩 써본 제품들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바로 그 문제의 SK-II 때문에 고생한 생각을 하면 지금도 분이 다 안 풀린다. 하도 좋은 명품 화장품이라기에, 몇 달전 스킨 토너와 화이트닝 소스, 아이크림, 클린징 크림 등 네가지 SK-II 화장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에 뭐가 돋아나고 피부 톤이 거칠어지는 등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화장품을 한꺼번에 일제히 바꿨다면 그 원인을 금방 알 수 있지만, 쓰던 것이 다 떨어지는 순서대로 하나둘씩 바꾸게 되면 원인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계속 사용하다가 문제가 커져버린다.
더구나 비싼 화장품이 아까워서 차마 남 주거나 버리기는 너무 억울한 관계로 자꾸 원인을 다른데서 찾으려는 비겁한 태도도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음식 탓이 아닌지, 혹시 샴푸가 문제인지,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게 아닌지, 몸이 좋지 않아 피부마저 상하는 것인지, 그러면서 피부를 달래보려고 더 열심히 클린징하고, 더 자주 스크럽하고, 이것저것 발라보고, 그렇게 혹사시키다가 결국 남 보기 딱할 정도가 되고 나서야 화장품을 원래 쓰던 것으로 다 바꾼 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피부는 엄청 예민한데 나의 반응이 너무 둔해서 빚어진 참극, 정말 값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그런데 참고할 것은 이 SK-II 화장품이 너무 좋아서 몇 년째 잘 쓰고 있는 친구들도 주위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도 내가 이 화장품을 못 쓰게 됐다고 하자 한 친구가 얼른 나서서 너무나 고마워하며 모조리 가져갔던 것이다.
여성들이 이처럼 엄청난 양의 화장품을 생활필수품으로 소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작용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정상인의 10~12%가 화장품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다. 화장품 때문에 피부과를 내 집 드나들 듯 했던 한 친구의 경험담에 따르면 화장품 중에서도 기능성, 특히 화이트닝 제품에 문제가 많다고 한다. 기능성 화장품이란 그 기능을 더 많이 내도록 뭔가 더 센 화학성분을 넣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 아닐까.
실제로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화장품을 많이 쓰면 지구가 병듭니다’라는 보고서에서 화장품의 첨가물에는 수은 등 중금속과 발암성물질이 포함돼 있다며 특히 얼굴을 하얗게 만들어준다는 미백 화장품의 경우 수은과 같은 중금속이 다량 함유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피부가 건강한 사람은 무슨 화장품을 써도 괜찮지만 나처럼 민감성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기초 화장품(토너, 에센스, 아이크림, 모이스처라이저)만 사용할 것을 권하고 싶다. 여기에 아침엔 선스크린을, 저녁엔 모이스처라이저 대신 때때로 영양크림을 발라주면 탈이 날 염려가 없다.
아울러 화장품만은 아무리 비싸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꾸준히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한번 트러블이 일어나면 하루하루 너무나 신경 쓰이고, 속상하고, 그 낭패감을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아무리 비싸도 탈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비싼게 비싼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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