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희 기자
지난 여름방학 중에 아들은 아빠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돌을 잡은 지 한 달밖에 안 되었으므로 아직은 흑을 무려 아홉 점이나 깔고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런 아들을 남편은 너무나 흡족하고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면서 훈수를 넘어선 잔소리 수준에서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남편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남편이 이날을 15년 이상 기다려왔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나에게서 바둑을 배웠고, 이제야 아들을 통해 설욕의 기회를 얻게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언니들과 바둑을 두며 잔뼈가 굵은 나는 신혼시절 무심코 남편에게 바둑을 가르쳐주었다. 흑 잡아먹는 재미로 시작한 놀이였는데 남편은 심상치 않은 전투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야 실력이 쨉수도 안 되었으므로 남편이 흑을 새까맣게 깔고 시작했다. 그러나 ‘바둑입문’ 같은 책을 사다놓고 연습을 거듭하며 덤벼드는 통에 전세는 금방 불리해졌다.
그렇게 얼마간 티격태격하던 어느 날 나는 종전을 선언했다.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겠다는 ‘절둑 선언’이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내가 지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결코 쉽게 이기지 못 하리라는 상황을 파악하고 나자 바둑은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없는, 괜히 시간만 죽이는 스트레스 투성이의 놀이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지는 것을 너무나 싫어한다. 얼마나 싫어하는가 하면 누군가와 게임이나 경기를 하는 일은 절대 피하고 있고, 팀 스포츠는 아예 생각도 해본 적이 없으며, 테니스도 그런 이유에서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유일한 스포츠란게 수영이나 달리기, 즉 혼자 움직이는 운동뿐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기고 지는 줄다리기의 그 피 말리는 긴장감, 지고 났을 때의 그 분하고 억울하고 약오르는 감정을 다스릴 여유가 내게는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아들이 어렸을 때 체스나 다이어몬드 게임 한판 두자고 그렇게 애타게 매달렸건만 언제나 매정하게 뿌리친 것도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모정을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때 나는 당연히 바둑을 둘 수 없었고, 남편은 거의 울 것처럼 보였다. 이제 겨우 바둑에 입문해 한창 물이 올랐는데 유일한 상대인 내가 돌을 꺾고 돌아서 버린 것이다. 혼자 흑과 백을 다 쥐고 끓어오르는 바둑열정을 다스리지 못해 끙끙거리던 남편은 어느 날 나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하나 얻어듣게 된다. 둘째 언니도 바둑을 둘 줄 안다는…
그날부터 남편은 어떻게든 하시엔다의 처형 댁에 놀러갈 궁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이었으므로 우리의 동선이 한층 자유로웠던 시기이기도 했다. 남편이 언니와 대국을 하고 앉으면 나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 소파 한구석에서 잠이 들곤 했다. 이제 다 했나 싶어서 일어나면 “한 판만 더 둘께.” 그러면 또 한시간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어번씩 하시엔다를 찾던 어느 날 언니가 답례 차 글렌데일에 있던 우리 아파트로 찾아왔다. 밤이 깊어질수록 대국도 길어져서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에 나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두사람을 거실에 남겨둔 채 침실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새벽 3시쯤 되었던 것 같다. ‘숙희야, 숙희야’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더니 언니와 남편이 사색이 된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왜, 왜 그래?’ 놀라서 물으니, 언니 차가 없어졌다는 거다. 바둑을 끝내고 나가보니 스트릿 파킹해놓은 언니의 차가 온데간데없어져서 이제껏 둘이 찾아 헤매다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니, 자고 있던 날보고 어떡하라는 말인가.)
나는 일단 글렌데일 경찰국에 전화를 했다. 차를 잃어버렸다고 신고했더니 차번호가 뭐냐고 묻는다. 아무아무번호라고 했더니 잠시 후 ‘그 차는 토잉 당했다’고 알려주었다. 차의 알람이 고장나서 밤새 울어대는 바람에 주민들이 토잉카를 불렀다는 것이다. 황당하기는 했지만 무척 안심되는 대목이었다.
그날 언니는 우리집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고 새벽 6시에 토잉회사로 차를 찾으러 갔다. 그리고 그 날이 언니와 남편의 마지막 대국이었다. 그때 이후 남편은 오직 아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자신의 상대가 되어주기만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이제 그 날이 온 것이다.
하지만 방심은 늘 화를 부르는 법. 아들은 벌써 아빠를 세 번 이겼다고 한다. 첫 번째 이긴 판은 사진으로 찍어 셀폰 화면에 저장해두었을 정도니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엄마의 피를 이어받았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의에 불탄 남편에게 이보다 더 불행한 소식은, 아들의 철칙이 ‘바둑은 하루에 한 판만 둔다’는 것이다. 아무리 얼르고 달래도 한판이면 일어서는 아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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