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목사/수필가)
때가 되면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살인더위도 어느새 꼬리를 감추고 조석이면 긴소매 옷을 입게 된 것은 이미 보
름 전에 입추가 지나갔고 오늘이 처서(處暑)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말이 생겨난 듯 하다.
흔히 말하는 ‘독서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독서가 정신적 양식이라면 계절의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가을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검도록 짙은 초록색이 점차 연해지며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저녁이면 수많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옴이 마치 독서를 재촉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일용할 양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이 여기에도 해당되는 듯 하다. 인간은 갈대처럼 연약한 존재이지만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인간의 위대성이 ‘사고력’에 있다는 말이다. 그 사고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독서는 필수조건이라 하겠다.
옛날 나폴레옹은 여행중에도 마차 안에서 독서를 즐겼으며 다 읽은 책은 밖에 내버렸다고 한다. 그는 전장(戰場)에서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센트 헤레나 섬에 유배되어서도 8,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을 정도로 독서를 즐겼다고 한다. 세르반테스(Cervantes, 스페인 작가)는 나폴레옹보다 더 많은 독서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길바닥에 떨어진 종이쪽지를 주워서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그가 그려낸 ‘동 키호테’도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미쳤다고 동네 사람들이 평할 정도의 독서광이었다.
‘동 키호테’는 발 들여 놓을 자리도 없을 만큼 집안에 꽉 찬 책을 보고 언제나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겠는가고 탄식했다.
사람이 일생을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수명을 70년이라고 해도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은 그중 55년 정도라 하겠다. 하루에 한시간씩 책을 읽는다 해도 일생에 2만 시간 독서를 하는 셈이다. 따라서 책 한권 읽는데 10시간이 걸린다면 일생을 두고 많이 읽어야 고작 2,000권 미만일 것이다.
“좋은 책을 읽기 위해서는 책을 읽지 않는 기술이 필요하다. 읽지 않는 기술이란 일시적으로 인기있는 책은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리석은 사람을 위해 쓰는 작가가 항상 독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라고 쇼펜하우어는 아리송한 말을 했다. 그러나 아무
리 좋은 책이라 해도 누구에게나 유익한 것은 아니다.
2차대전 때 유대인 학살로 악명 높았던 아이히만의 애독서 중에는 ‘헤겔’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토마스 홉스도 많은 독서를 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책 읽는 시간보다 사색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다독(多讀)이란 사고(思考)를 억압하는 것
이다.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학자들이 많은 것도 다독의 탓이다”라고 갈파한 윌리엄 펜(William Penn)의 말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만한 말이라 생각된다.
영국의 어느 신문이 학자와 문인들에게 “당신이 읽지 못한 고전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 설문에 대한 회답 중에는 <왜 읽어야 할 책을 지금까지 못 읽었느냐?>는 변명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제 우리 자신들에게로 돌아와 생각해 보자. 독서가 인생살이에 있어서 어느 만큼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를 사람이 없겠지만 정작 나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독서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변명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책을 살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다
면 독서를 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긍정적인 대답을 할 것인지 궁금해 진다.우리의 생활 주변이 점차 독서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허둥지둥 서둘러 책부터 펴들지 말고 차분히 마음부터 가라앉혀 사색부터 해 보자. 그러노라면 나 자신의 인생을 살피게 될 것이고, 무슨 책을 읽어야 할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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