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로 니카라과를 다녀왔다고 하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니카라과? 웬 니카라과?
바로 그래서 나도 다녀온 것이다. 평생 가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나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나라, 별 흥미도 호기심도 안 느껴지는 나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호기심이 동했다고 할까.
나의 친구 줄리는 니카라과 통이다. 올해만 세 번 다녀왔고 이번 겨울에 가족들과 또 간다니 분기별로 다니는 셈이다. “비행기 표가 싸게 나왔는데 함께 가볼래?” 했을 때 선뜻 그러마고 했던 것도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는 니카라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줄리는 그곳 바닷가에 땅을 샀다. 그리고 별장을 짓겠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그녀가 변호사를 만나 부동산 서류에 사인하고, 건축가를 만나 집 짓는 일을 상의하고, 바닷가 자기 땅을 돌아본 다음 그곳 리조트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 유숙하는 일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한 여행이었다. 두 여자가 렌터카(이 나라엔 스틱기어 차밖에 없다)를 몰고 다니며 이국 땅을 탐험한 4박5일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LA에서 5시간반, 니카라과의 첫 인상은 ‘오염되지 않은 나라’라는 것이었다. 생활수준은 60년대 한국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고 자연에 가까운 삶이 그곳에는 있었다. 특히 사람들이 너무나 순박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의 티없이 깨끗한 미소는 지금 현대사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무공해 미소. ‘개발의 물’이 안 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줄리의 표현을 빌자면 파나마나 코스타리카만 해도 관광지로 많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발랑 까졌는데’ 이곳 사람들은 아직 순진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개발이란 것은 오염과 동의어, 순수의 반대말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 기사에서도 썼지만 10년전 파나마와 코스타리카를 휩쓸고 지나간 개발붐이 지금 니카라과에서 일고 있어 미국인들이 땅을 사기 시작했다니 머잖아 이곳도 변질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니카라과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정국이 혼란하거나 치안이 불안할 것이라는 선입견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로 중남미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게 그곳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증언이다. 산디니스타 좌익정권과 콘트라 반군의 내전이 끝난 것이 1990년대 초. 그 때 이후 민주화된 이 나라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외자를 유치하여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지금 여기저기서 개발의 몸짓이 부지런하다.
우리는 주로 수도 마나과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는데 수도라고 해봐야 신호등이 몇십개 안 되는 작은 도시다. 그런 곳에도 한국사람이 500명이나 살고 있고 한국식당도 세 개나 되니, 과연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나과는 그런 대로 현대사회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그외 모든 지역은 완전히 시골이었다. 시내 차도에서도 자동차와 자전거, 마차, 사람, 개들이 다 함께 어울려 다니는 정도니 시골길은 거의 비포장도로라고 보면 된다.
니카라과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날씨와 벌레였다. 열대성 기후라 여름철 습도가 높아서 어찌나 무덥던지. 따라서 모기가 많고 도마뱀과 여러 종류의 벌레들을 일상적으로 보게되는 점이 너무나 괴로웠다. 특히 나는 벌레를 보면 모든 신체기능이 마비될 만큼 유난한 벌레공포증을 갖고 있는데, 이 나이에 친구 앞에서 벌레 한 마리 볼 때마다 펄쩍 펄쩍 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참으로 말못할 어려움을 겪었다.
‘호수와 화산의 나라’로 불리는 니카라과는 아직도 분화구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화산들과 바다만큼 큰 2개의 호수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관광지는 1523년 중남미에 진출한 스페인이 가장 먼저 건립했다는 고풍창연한 2개의 식민도시 그라나다와 레온으로 500년된 교회들과 스페인 풍의 집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 관광도 많이 하고, 샤핑도 많이 하고(물가가 너무 싸다), 스패니시 잘 하는 친구 덕분에 사람도 많이 만나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이 나라의 구석구석을 체험하고 왔다. 무엇보다 내가 잘 모르던 중남미 사람들의 삶과 문화, 미국보다 오랜 그들만의 역사를 엿보고 왔다는 점이 큰 수확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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