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3인의 한인 청소년 ‘구슬땀 현장’
청소년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사회를 맛보는 첫 관문이다. 어떠한 이해관계도 존재하지 않는 학교라는 온실을 떠나 ‘시간당 7달러’라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이들은 수년내 맞닥뜨려야 할 ‘현실세계’와 잠시나마 조우하게 된다.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육체노동도 견뎌야 하고,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해 보기도 한다. 성인이 되기도 전 이 팍팍한 현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에 대해 잠시 걱정해보기도 하지만 10대들은 그 나이 때가 그렇듯, 고달픈 현실 이면의 밝고 긍정적인 것들에 더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고달프고 힘들지만 즐겁고 활기찬 삶의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한인 청소년 3인을 만나봤다.
엄마 샌드위치 샵 돕는14세 박승규군
어머니가 운영하는 샌드위치샵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아르바이트하는 박승규군이 음료수를 나르고 있다.
아직도 앳된 얼굴이 가시지 않은 승규군은 올해 열 네살.
8학년인 승규군은 방학과 동시에 라크마 인근 윌셔가 한 빌딩에서 샌드위치샵을 운영하는 엄마 강양춘(47)씨를 돕고 있다. 그러나 말이 돕는 것이지 장정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해낸다.
연일 100도를 넘는 폭염이 절정에 다다랐던 지난달 25일 오후에 만난 승규군은 얼굴엔 연신 비지땀이 흐르고 있었다.
에어컨이 가동된다고는 하지만 손님들이 연신 드나들어 바깥기온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300스퀘어피트 남짓 가게에서 승규군이 하는 일은 주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엄마를 보조하는 것과 캐시어이다.
승규군 외에도 일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지만 점심시간을 전후로 한창 바쁠 때는 3명이 이 좁은 가게를 종횡무진해도 손이 모자란다.
<박승규군>
이제 이민 온지 3년된 강양춘씨가 이 샌드위치샵을 오픈한 것은 지난해 여름. 그리고 이번 방학 때 처음으로 승규군이 가게 일에 가세했다.
“엄마가 1년 동안 일하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는데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그래서 올 여름방학엔 꼭 엄마를 도와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승규군은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음식을 챙기고, 진열대를 정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덕분에 엄마는 승규 때문에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승규가 없었으면 어떻게 이 더위에 일했을까 싶어요. 사실 부모 입장에선 승규만 집에다 두고 오는 것도 걱정이었는데 자기가 알아서 일하겠다고 하니 기특하죠.”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얻는 승규군의 한달 급여는 150달러. 시간당 7달러에도 미치지 않는 저임금(?)이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승규군이 “어휴, 이 돈도 많죠”라고 답한다.
돈을 모아서는 어디서 쓸 거냐는 질문에 승규군은 두번 생각도 않고 대답한다.
“8월에 엄마 생신이 있거든요. 엄마 생일선물 해드릴 거예요. 엄마가 랍스터 좋아하는데 아마 맛있는 저녁을 사드릴까 생각중이예요. 그리고 만약 돈이 남는다면 게임기를 살까 생각중인데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철이 다 들어버린 승규군은 공부도 잘해 방학 전 성적표도 ‘올 A’를 받았다. 그래서 아이비리그가 목표일 법도 한데 대학도 멀리 갈 생각이 없단다. 승규군의 목표는 UCLA. 엄마 일을 계속 도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너무 더운 거랑 하루종일 서 있어야 하는 게 제일 힘들지만 엄마가 저 때문에 조금 덜 힘들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내년 여름방학 때도 또 도와 드릴래요. 그리고 앞으로도 쭉 계속요.”
도저히 열네살 소년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의젓한 승규군의 소박하지만 속이 꽉 찬 10년치 소망이다.
갤러리아 마켓 캐시어 17세 박호남군
갤러리아 마켓 캐시어로 일하는 박호남군이 고객이 샤핑한 물건을 스캔하고 있다.
중국 연변에서 지난해 11월 이민 온 호남(17·LA고교)군은 방학과 함께 갤러리아 마켓에서 일하고 있다. 매주 수·토·일요일 일주일에 3일 정도 하루 6시간씩 일한다. 호남군의 퇴근시간은 오후 10시. 밤늦은 시간까지 서서 계산대 일을 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돈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른단다. 호남군이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시간당 8.25달러. 여기에 보너스까지 합쳐 한달 평균 600~800달러를 번다.
고교생 아르바이트 치곤 꽤 짭짤한 액수다. 그러나 육체적으론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하루종일 서 있다보니 저녁엔 입맛도 없어 빵이나 우유로 때우기 일쑤고 처음 일을 시작할 땐 집에 들어가면 온 몸이 녹초가 됐다. 그러나 이젠 일도 익숙해졌을 뿐 더러 간혹 마켓에 장보러 온 이웃들이나 지인들이 더위에 수고한다면 음료수며 아이스크림도 전해줘 일하는 게 즐겁단다.
“개학 후에도 계속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차를 사고 싶다”는 호남군은 “직접 돈을 벌어보니 부모님이 주는 돈이 얼마나 귀한 줄 알겠다”고 말한다.
현재 갤러리아 마켓에선 캐시어 20명중 고교생은 호남군을 비롯해 단 2명. 마켓측에 따르면 방학이라고 해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학생들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고.
갤러리아 마켓 안시영 매니저는 “호남군은 성실하고 일도 잘해 마켓에서도 좋은 대우를 해주려고 노력한다”며 “일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 늘 고객들에게도 잘하고 실수도 없다”고 칭찬한다.
앞으로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해 성공한 비즈니스맨이 되는 게 꿈이라는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파리 바게트 16세 앤 권양
앤 권양이 파리바게뜨에서 이제 막 구워 나온 빵을 정리하고 있다.
“내 힘으로 돈도 벌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지난 6월초부터 파리 바게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앤 권(16)양은 이 곳이 생애 첫 직장이다. 올 여름엔 꼭 아르바이트를 해야지 하고 맘먹고 이리저리 알아보다 집에서도 가깝고, 또래 친구들과 일할 수 있는 파리바케트를 선택했다.
일주일에 3일간 오후 2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는 그녀의 주업무는 오븐에서 막 나온 빵을 진열대로 옮기거나, 케익을 포장하고, 매장을 쓸고 닦는 일이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은 화장실 청소. 집에선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니 쉽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귀띔이다.
그래도 그녀는 “매장에 있는 언니, 오빠들이며 동료친구들이 너무 잘해 준다”며 “더울 땐 서로 아이스크림도 나눠 먹고 일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설명한다.
<앤 권양>
빵집에서 일하니까 빵하나 만큼은 실컷 먹지 않을까 싶어 물어보니 그렇지도 않단다. 매일매일 빵과 함께 생활하고, 빵천지에서 살다보니 오히려 빵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그래도 우리 베이커리 스트로베리 페이스트리는 정말 너무 맛있다”며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이렇게 해서 권양이 버는 돈은 시간당 7달러선. 처음 급여를 받아서는 갖고 싶었던 아이파드를 샀다. 그리곤 나머지 돈으론 부모님과 오빠까지 저녁식사를 사준 기특한 딸이기도 하다.
현재 이메큘라 하트 고등학교 11학년에 재학중인 그녀는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엔 SAT 학원에 다니며 대입준비에 한창이다. 대학에선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방송 일을 해보고 싶은 것이 그녀의 꿈. 이 귀엽고 천진난만한 빵집 아가씨를 언젠가 TV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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