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상을 당해서 한국에 다녀왔다. 치매 기가 약간 있었을 뿐 건강하시던 시어머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문상객들이 ‘복 많은 노인’이라고 할만큼 호상이기도 했지만 당시 집중호우로 인해 위로하고 위로 받는 역할이 뒤바뀌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 며칠 전부터 한국 중부지방에는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졌다. 잠수교, 한강 시민공원 등 곳곳이 물에 잠기고 도로가 차단되어서 문상 길이 고생길이었다. 교통혼잡으로 문상 오는데 두세시간 걸린 것은 보통이고, 도로가 침수돼 중간에 되돌아간다고 전화를 한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경주에서 온 한 친지는 빗길 운전을 피해 시외버스로 올라오는 데 6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대학 병원 영안실에서 비 한방울 안 맞고 ‘편안히’ 있던 상주들은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에 고생한 문상객들을 위로하느라 바빴다. 수도권에 이번처럼 폭우가 내린 것은 망원동 일대가 침수돼 북한으로부터 구호품을 받았던 1984년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폭우를 피해 무사히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니 LA에서는 폭염이 기다리고 있었다. 120도를 최고로 연일 100도가 넘는 숨막히는 열기가 10여일 계속되면서 지역마다 정전사태가 속출했다. 말 그대로 살인적 더위여서 캘리포니아 전역에서는 이번에 1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10년 단위로 평균기온을 보면 1990년대가 역사상 가장 더웠고 1년 단위로 보면 1998년이 가장 더웠던 해라고 한다. 올해 폭염은 1998년을 뛰어넘었다.
한국의 폭우, 캘리포니아의 폭염, 뉴올리언스를 초토화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20여만명 목숨을 앗아간 동남아 쓰나미 … 지난해부터 대충 짚어봐도 기상 재해가 너무 잦고, 피해가 너무 크다.
불안한 것은 이런 폭염, 폭풍우, 홍수, 가뭄 등은 앞으로 저 자주, 더 극심해질 것이라는 경고이다. 온실효과에 따른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환경론자들은 겁을 준다.
지난 세기이후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대량생산해서 펑펑 써온 우리의 생활 습관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지구 온도를 높이면서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당장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앞으로 몇 세대 안에 전 지구가 중대한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이들은 경고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지나친 과장’이라는 반박이 또 팽팽하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에는 이스터 아일랜드라는 절해고도가 있다. 가장 가까운 칠레 해안에서 3,700km나 떨어진 세상과 단절된 섬이다. 모아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석상들이 죽 늘어선 신비한 풍경이 우선 눈길을 끌고, 그런 거석문화를 가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황폐한 섬의 현실이 학계의 관심을 끌어왔다.
전설에 의하면 5세기께 폴리네시아 족장이 가족들을 이끌고 와서 처음 정착했고, 당시 섬은 아열대성 기후의 비옥한 땅으로 말 그대로 낙원이었다. 삼림이 울창한 풍요로운 섬에서 주민들은 수세기에 걸쳐 수호신인 석상들을 만들며 전성기를 누렸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하지만 1772년 외부 세계의 첫 방문자로 네델란드인 탐험가가 도착했을 때 섬은 나무 한그루, 동물 한마리 없는 무인도에 가까운 불모지였다. 1,000년 정도 번창하던 문명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거대한 모아이를 제작하려면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했을 텐데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제까지 연구에 의하면 이스터 섬의 멸망 원인은 삼림 파괴였다. 집 짓고, 배 만들고, 땔감으로 쓰느라 나무를 베고, 경작지를 늘리느라 숲을 개간하고, 석상 옮기는 수단으로 나무를 베는 등 삼림 파괴가 대대로 계속되다보니 삼림이 완전히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어 야생 동물들이 사라지고, 땅이 황폐해 곡물 생산이 줄어들자, 제한된 식량을 두고 씨족간 싸움이 벌어지고 나중에는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식인풍습까지 생기면서 종족이 멸망한 것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무분별한 환경파괴가 재앙으로 돌아온 케이스이다.
사막인 캘리포니아에서 물이 펑펑 나오고 에어컨이 쌩쌩 나오는 지금, 자원 고갈이나 환경재앙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절해고도 이스터섬의 운명이 우주의 절해고도 지구의 운명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첨단 문명을 이룩한 21세기 인류의 다음 숙제는 생태적으로 지혜로운 삶이 될 것 같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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