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그 당시 LA 다저스 야구 팀 감독으로 재임 중이던 타미 라소다(Tommy Lasorda, 1927-)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20년 동안 다저스 감독으로서의 그의 명성이나 업적은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내가 그에게서 받은 가장 깊은 인상은 다른데서 왔다. 그의 안내로 둘러본 다저스 경기장 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한 인부를 만났다. 그는 우리는 보자 기뻐서 소리 쳤다. “하이, 타미, 하우 아 유 두잉?” 라소다도 반갑게 청소부의 이름을 부르며 잠깐 동안 덕담을 나누었다. 누구나 그를 타미라고 부르냐고 나중에 내가 물었을 때 그가 말했다.
“그들이 나를 감독님이라고 부르면 그들은 나를 윗사람으로 어려워만 했지 나와 인간적으로 교우 하지 않을 것이요. 그리고 내 이름은 타미이기 때문에 나는 다저스 기관 안의 모든 사람에게 이름을 불러 달라고 부탁 해두었어요.”
1996년 그가 건강 때문에 다저스 감독직을 떠났을 때 나는 특별한 감회를 느꼈다. 그리고 4년 후 그가 올림픽 야구팀의 감독으로 발탁되어 시드니 올림픽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골드 메달의 영광을 그가 사랑하는 미국에 안겨 주었을 때 나는 흥분하여 손이 아프게 박수를 쳤다.
한국 문화권 안에서는 이름을 잃고 살기 쉽다. 특히 여자인 경우 더 그렇다. 동창 모임에서가 아니면 서로 이름을 부르며 사교하는 일이 드물다. 태어났을 때 지어 받은 이름, 동무들과 놀면서 서로 다정하게 부르던 이름, 출석부에 명료하게 적혀있던 이름, 좋아하던 남자 친구가 편지 머리에 써 주던 이름, 결혼 전 남편이 불러주던 이름. 그 이름이 점차적으로 사라지면서 새로운 호칭들이 여자의 이름 노릇을 대신 하게 된다. 한 여자의 역할이 곧 그 여자의 이름이 되어 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그 호칭에 맞추어 적절한 대접을 받게 된다.
이 나라 관습대로 결혼 후에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미시즈 플러스 남편의 성이 여자의 이름 전부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무엇하다. 여러 사람의 미시즈 김, 미시즈 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아이를 낳으면 아무개의 엄마로 아예 자리를 굳히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무개의 할머니로 한번 더 개명을 한 뒤에는 그 이상 바꾸어 질 이름이 대부분의 여자에게는 없다. 이름 변천이 여자의 일생을 말해주는 이정표 노릇을 해주기도 한다.
그래도 미국에서 사는 우리는 괜찮은 편이다. 한국에 나가서 옛 친구 집에 전화 해본 사람은 경험했을 것이다. 반드시 사모님이거나 엄마, 혹은 할머니를 찾아야 연결이 된다. 그러지 않고 이름을 댔다간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가정부에게 안 주인의 이름은 사모님이고 시어른들께 며느리의 이름은 애기에서 에미로 바뀐 지 하도 오래여서 참 이름은 기억의 영역 밖으로 나가 버렸다.
중년 이후의 여자 이름은 모두 박물관으로 보내져 버린 것 같다. 그런 현실이 그 땅의 전통이고 미덕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이름을 잃어야 되는 그런 미덕과 전통이 어떤 시대에 비롯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남자의 위주의 가부장 제도와 관계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집안에서만 평생을 보내던 시절, 여자에게 무슨 이름이 필요했겠는가. 아씨, 마님이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삼월이나 유월이 같은 하인들이나 이름으로 불려졌다.
미풍양식도 따라서 변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기야 역할 대명사를 쓰고 부르면서 서로의 이름조차 모른 채 몇 년씩이나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그렇게 잘 살면 되지 무슨 이름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이름은 ‘나는 누구’인가를 규정하고 그 주인의 정체를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여 밝혀 주는 빛 같은 것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보라. 당당히 이름을 간판에 내 걸지 않는가.
이름을 부르고 부름 받는 관계는 수평적이고. 우호적이고, 민주적이고, 현대적이다. 직함이나 신분이 이름을 대신하는 사회는 수직적이고, 계급 중심으로 흐르게 되어있다. 우리는 지금 수직적인 계급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도 또 한번 라소다의 웃는 모습을 생각한다.
송정원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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