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지난해 9월 사망한 윌리엄 렌퀴스트 전 대법원장은 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운동 경기가 있으면 어느 팀이 이길까, 선거 때가 되면 누가 당선될까 … 거의 모든 일에 5달러쯤 걸고 내기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오랜 친구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은 그의 장례식에서 그의 내기 버릇을 언급했다. 갑상선 암으로 투병 중이던 그가 필경 스스로에게 내기를 걸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지병에도 불구하고 한 회기는 더 버텨낼 수 있을 것으로 내기를 걸었을 터인데 “이번 내기에서 그는 졌다”고 오코너는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잘 산 인생’상 수상자 입니다”
어떤 사람의 생애를 두고 ‘잘 살았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떤 삶일까.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거나 성공을 했다고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돈이나 명예, 지위 … 우리가 삶에서 쟁취하고 싶은 것들을 손에 넣으면 열심히 산 삶, 성공한 삶은 되겠지만 그것이 잘 산 삶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이번 주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워렌 버핏이다. 투자를 귀신처럼 잘 해서 모은 재산이 440억달러 정도인 데 그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그는 발표했다. 그의 세 자녀는 인생이라는 사다리에서 이미 저 높이 앞 설만큼 특혜를 받았으니 사다리의 맨 밑바닥에 있는 못 가진 다수에게 부를 돌린다고 했다.
그의 버크셔 헤더웨이 주식은 주당 가격이 9만 달러가 넘어서 한 주를 1/30로 나누어서 거래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런 알짜배기 주식을 고스란히 내어놓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평생 끌어 모으기만 하던 부를 훌훌 털어 내놓으면서 그는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한 세기 전 앤드류 카네기는 부자들의 도덕적 책무를 이야기했다. “부자의 생애는 두 시기로 나뉘어져야 한다. 부를 획득하는 전반부와 축적된 부를 사회에 되돌리는 후반부이다”라며 그 자신이 확실하게 모범을 보였다. 그런 모범으로 그는 무엇을 얻었던가. 아주 단순화하면 “그 사람, 인생 잘 살았어”라는 세인들의 평가, 그리고 “이만하면 잘 살았다”싶은 스스로의 만족감이 아닐까.
미국에서 대표적 자수성가 기업인으로 폴 오팔리아 전 킹코스 회장이 빠지지 않는다. 난독증이 심한 그는 학교 성적이 늘 바닥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가까스로 대학 졸업한 후 취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UC 샌타바바라 앞에서 복사기 한대 놓고, 곱슬머리라서 붙은 자신의 별명 ‘킹코’를 상호명으로 한 복사 전문점이었다. 1970년 보잘것없게 시작된 킹코스는 그의 뛰어난 사업수완 덕분에 전 세계 1,200여 지점망을 만들만큼 성공했다.
그런데 기업가로 한창 잘 나가던 지난 2000년, 50대 초반의 그는 은퇴를 선언했다. 오팔리아 가족재단을 설립해 자선 사업에 나서면서 어머니의 가르침이 결정 배경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의 어머니는“20대에는 모든 분야를 다 시도해보고, 30대에는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자기 길을 찾고, 40대에는 그 분야에서 최대한 돈을 벌고, 50대에는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꼭 하고 싶은 일은 자선이었다. 삶은 예술이 될 수가 있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욕망’이라고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는 가르친다. 욕망이 의지를 만들고, 의지가 행동을 낳고, 그 행동들이 모여서 인생의 내용, 즉 운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은 중요하다. 하지만 욕망에만 시선이 꽂힌 경직된 삶을 잘 산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아들은 “세상에 우리 아버지보다 장미꽃 향기를 더 많이 맡은 사람은 없을 것”이란 말로 아버지를 자랑했다. 그는 못 말리는 낙천주의와 유머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겼다고 한다.
삶을 잘 산다는 것은 여유로운 삶을 말할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 둘러보며 주변 존재들을 보듬는 마음, 그래서 나눔이 자연스런 삶이다. 나이 들수록 ‘많이 가졌다’‘성공했다’ 보다는 ‘잘 살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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