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열린 풀러신학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 대표연설을 하기 위해 강단에 오른 강숭철· 혜경 부부.
함께 공부하면서 가장 절친한 인생 동지가 됐다는 강숭철·혜경 부부. 앞으로 한인가정 치유와 회복에 헌신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꿈이다.
60년대초 브라질 이민가 미국으로 이주
아이들 뒷바라지- 학비 부담등 스트레스
풀러신학대 졸업식 화제의 강숭철·혜경 커플
잘나가던 금융인 목회자 되다
동문수학 10년만에 나란히 박사따고 함께 졸업대표 연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단다. 그저 ‘좀 배워볼까. 그리고 이왕 배울거 아내랑 한 과목씩 들어보자’라고 쉽게 시작한 게 어느새 10년 세월. 강산이 한번 변하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이들 부부는 나란히 석사 학위 2개도 모자라 박사학위까지 손에 거머쥐었다. 지난 10일 풀러신학대학교에서 나란히 선교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강숭철(51)·혜경(48) 부부. 부부가 함께 같은 학교에서 나란히 박사학위를 받는 것만도 특별한 졸업식이었던 이날, 강씨 부부에게 더 큰 기쁨은 졸업생들에겐 최고의 영예인 졸업 대표연설을 부부가 함께 했다는데 있다. 생애 최고라 할 수 있는 기쁨의 순간에 이들 부부는 함께 서 있었다. 이 굉장한 행운과 축복의 주인공들을 만나봤다.
처음 풀러신학대학교 대학원에 부부가 함께 등록한 게 지난 96년. 평소 절친한 목회자가 그들에게 목회자가 돼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고 그 말에 큰 뜻 없이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배우고 익히는게 두 부부에겐 큰 즐거움이긴 했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 뒤론 고난의 연속이었다. 두 사람의 석사학위 과정에 들어가는 수만 달러의 학비에 한창 크는 아이들 뒷바라지, 젊은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스트레스 등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1960년대 초반 당시 열살도 채 안된 나이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 브라질로 이민 가 다시 미국으로 이민 온 원조 1.5세인 이들 부부는 언어 장벽은 없다손 치더라도 생활인으로, 학생으로 살아온 지난 10년 세월이 꿈만 같기만 하다.
“처음엔 한 과목씩 듣다가 조금씩 과목을 늘려가고 결국은 학위까지 받으니까 계속 욕심이 났습니다. 게다가 교회에서 교역자로 봉사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적용하면서 변화되는 교인들을 보면서는 너무 즐겁고 신났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보람있고 즐거울 때가 또 있었나 싶었죠. 아마 그 매력에 빠져 겁 없이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본인 스스로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던 강숭철 목사지만 한번 말을 시작하면 달변가도 그런 달변가가 없다.
비슷한 시기에 이민 왔지만 월등히 한국말을 잘했던 아내 덕분에 실력이 확 늘었다는 그는 당시 잘나가던 주류사회 금융인이었다. 어려운 시절 이민 온 그는 중학생 때부터 부모를 도와 닥치는 대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제가 브라질로 이민간게 64년이었는데 당시 이민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죠. 자녀들도 생계를 위해서 일하지 않으면 안됐죠. 그때 결심했던 것 같아요. 가난이 싫어서 원 없이 돈을 벌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대학에서도 비즈니스를 전공했고 결혼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목표를 이룬 듯도 보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돈 벌 시간과 기회를 포기하고 목회자가 된 데에는 특별한 ‘콜링’이 있었던 것도, 기적을 체험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돈버는 것 말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것 말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신앙심에 충실하다보니 지금의 자리에까지 왔다는 것이다.
◇공부는 나의 힘
이들 부부는 각각 가정사역과 여성 리더십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줄곧 가정사역이라는 한 우물만 팠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LA 온누리교회(담임 유진소 목사)에서 가정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 부부는 가정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공부하는데 중도하차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이 이 가정 사역과 치유사역을 선택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이들이 바로 원조 1.5세라는 사실.
“한국에서 태어나 브라질에서 조금 살고, 또 미국에서 교육받고 살면서 한국말도 영어도, 스패니시도 완벽하지 못하고 문화도 100% 이해 못하니까 무의식적인 정체성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게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구요. 지금 한창 자라나는 1.5세, 2세들이 그렇고, 이들이 포함돼있는 한국가정에 위기가 많은걸 발견했습니다. 1세 부모와 2세 자녀의 갈등은 쉬쉬하지만 심각한 문제인걸 알게 됐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 수 있었지만 아이들을 대학 앞마당과 도서관에서 키우다시피 한 강혜경 목사의 이야기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가정이 건강해야 돼요. 개개인이 건강해야 건강한 조직을 이룰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어요? 그런데 한인들은 가정의 문제는 집 울타리를 넘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만 감싸 안으려하고 그게 해결되지 않다 보면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는 것이죠. 터놓고 이야기하다보면 답도 보이고 해결책도 보입니다.”
◇이 부부가 사는 법
지난 10일 열린 졸업식에 온가족이 함께 모였다. 왼쪽부터 강숭철 목사, 장남 매튜군, 차녀 미셸양, 강혜경 목사.
애처가다 못해 공처가(?)가 아닐까 싶다. 아내에게 간혹 경어를 섞어 쓸 만큼 깍듯한 강숭철 목사는 아내 강혜경 목사가 가장 든든한 인생 동반자이자 동지란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 학비문제로 위기를 맞을 때면 일단 아내부터 먼저 등록시킬 만큼 아내에 대한 외조가 남다르다. 그리고 아내 역시 이를 200% 수긍한다.
“졸업 전 담당 교수와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21세기라곤 하나 여전히 성공한 여성 옆엔 든든한 외조는 필수인 것 같아요. 남편의 헌신적인 재정적, 정신적 지원이 없었다면 박사학위는 꿈도 꿀 수 없었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부부가 같은 전공을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보너스는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것에 있다. 같이 공부를 하기 전에도 자상한 남편과 아내였지만 같이 시험공부를 하면서, 논문을 도와주면서 부부이기 이전에 가장 절친한 클래스메이트가 돼버렸다.
“사실 부부라는 인연으로 10년을 넘게 살면서도 서로를 잘 몰라요. 아내의 상처가 무언지, 꿈이 뭔지, 어떤 갈등이 있는지 등등 이전에 몰랐던 것들을 함께 공부하면서 많이 알아갔어요. 무엇보다 전공이 치유다 보니 서로가 몰랐던 상처를 치유해주고 함께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이들은 이구동성 말한다. “이해가 뭐 별건가요? 머리 아프다는 아내에게 약 먹으라고 한마디 툭 던지는 건 오히려 싸움을 거는 것에 다름 아니겠죠. 직장 동료 때문에 화가 난 아내의 이야기에 맞장구 쳐주고, 힘들다고 생색(?)내는 남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어깨를 주물러 주는 것, 그런 것들이 서로에게 용기와 힘이 되는 것이겠죠.”
그래서 이들 부부는 싸움도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면 금방 화해한다.
“기분 좋을 때 규칙을 만들어 놓으면 됩니다. 화가 났을 때 서로의 심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쟁으로 이어질 것 같을 때 타임아웃 제도를 만드는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세워두는 거죠.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되기는 쉽지 않지만 한 발자국만 떼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어색하지 않게 금방 실천할 수 있거든요.”가정 사역자들이 들려주는 부부싸움 잘하는 법이다.
건강한 한인가정이 많아질수록 교회가 회복된다고 믿는 이들 부부는 앞으로도 카운슬링과 강의를 통해 세계각지의 한인들과 만나 소통하길 꿈꾼다. 그러나 이 절대다수와의 커뮤니케이션보다 아직도 서로로 인해 하루하루가 ‘무진장’ 재밌다는 이들 부부의 일상속 대화가 더 엿듣고 싶은 건 왜일까.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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