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열차 시험운행이 끝내 좌절됐다.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남북한은 지난 5월 13일 제12차 철도·도로 연결 실무접촉에서 25일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범운행을 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북측은 24일 오전 10시쯤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 북측 단장인 박정성 철도성 국장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통해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점’과 ‘남측의 불안정한 정세’를 이유로 열차 시범운행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우리측으로서는 적잖이 당혹스럽다. 우선 어렵사리 산고(産苦)와도 같이 밀고 당기는 협상의 과정을 통해 힘들게 생산한 남북합의를 일방적 통보로써 일순간 백지화시키는 행태가 그 하나다. 이럴 것이라면 왜 합의를 했는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는 다음날 행사를 하게 돼 있는 상황에서 하루 전날 합의 이행거부 통보를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이는 남북관계가 아직도 상호 존중과 예의, 성실한 합의준수 관행, 호혜와 신뢰에 근거하지 못한 불안정한 상태에 있음을 말해주는 징표하고 생각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경의선 철도 연결은 남과 북이 2000년 7월 31일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합의한 이래 장관급회담, 남북경협추진위원회 회의 등 각종의 남북회담에서 조속히 추진하기로 약속했고 또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확인했던 사업이다. 북한이 군부의 반대를 이유로 들어 열차의 시험운행 및 DMZ 통과를 무사시켰지만, 이는 구실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개방을 거부하는 북한 지도부의 폐쇄적 태도 때문이라는게 우리의 시각이다. 또한 북측이 엄청난 대가를 우리측에 요구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열차 시험운행 합의를 휴지화 시켰다는 유력한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연유가 어떤 것이든 합의사항 불이행의 책임, 또한 남북화해 협력의 업그레이드를 소망했던 7천만 겨레의 바램을 저버린 책인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
경의선과 동해선 등 남북간 철도 연결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선 남북한간의 물류비용을 줄임으로써 남북경협의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다. 북한은 철도 운행을 허용함으로써 사실상의 통행료 징수 혹은 기타 형태에 의한 경제적 실리를 취할 수도 있다.
중국 중단철도(TCR), 몽골종단철도(TMGR) 혹은 시베리아 종단철도(TSR)와의 연결을 통해 유럽대륙과 이어지는 이른바 대륙교량(land bridge), 곧 국제철도 물류망의 건설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한 이익은 남북한이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된다.
경의선 철도 연결은 남북한간에 수많은 사람과 물자의 신속한 왕래 및 통행을 가능케 하는 외에도 다른 분야의 협력사업 개발 및 발전을 견인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북한의 경제난 타개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한반도 경제공동체 형성, 나아가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간 철도 연결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사실 경의선 철도 연결은 우리보다도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사업이다. 김일성 주석은 이미 생전에 북한 철도를 통해 중국·러시아 화물을 남한으로 중계 수송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언급한 바 있다. 지난 94년 벨기에 노동당중앙위원회 의장과의 회견에서 그는 남북한 철도 연결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남북한 철도연결의 경제적 파급효과까지 지적했다. 김일성 주석은 “북과 남이 합작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의주와 개성(경의선) 사이의 철길을 한 선 더 건설하여 복선으로 만들고, 남조선으로 들어가는 중국 상품을 날라 주기만 해도 1년에 4억달러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이어 “우리가 러시아나 중국 흑룡강성에서 수출하는 물자를 두만강역에서 넘겨받아 동해안에 있는 철길로 날라다 주면 거기에서도 한 해에 10억달러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도 한 해에 15억달러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김일성 저작집』, 제44권, 1996년, 471쪽)고 말했다. 15억달러 운임 수입은 북한의 96년 총 교역액 19억8000만달러의 75%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북한이 철도망 연결에 거는 기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후 98년 2월 일본 니가카시에서 열린 동북아시아경제회의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의 김수용 교수는 남북한 철도 연결과 관련, “철도가 연결되다는 것은 통일을 의미한다. 남북한 철도 연결은 김일성 수령이 사망하기 전날까지 기본 합의를 이야기 했던 것이며, 따라서 이는 김일성 수령의 유훈”이라고 말했다. 김 주석의 마지막 서명도 남북 철도 연결과 관련되 문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서명은 북한 판문점 통일각 앞의 큰 비석에 새겨져 생전에 이루지 못한 김 주석의 ‘천추의 한’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비석에는 「김일성 1994.7.7」이라는 친필 서명이 새겨져 있다.
이상의 사실에 비추어, 특히 김일성 주석의 유훈 관철의 차원에서 볼 때 북한이 경의선 철도 연결을 위한 시험운행을 거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김일성의 유훈과 그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경의선 열차 시험운행이 무산된 것과 관련하여 김정일 위원장의 권위와 정치적 위상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각에서의 문제 제기가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김정일 위원장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어서 속히 「남북간 철의 대동맥 연결사업」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와 주길 바란다. 남북간 철도 연결은 어려운에 처해있는 북한경제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며 통일을 부르는 첩경이 될 것으로 확신하는 바이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대한국제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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