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라디오 서울의 ‘홈 스위트 홈’ 방송을 들으며 운전을 하다가 한 청취자의 편지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언니가 중매를 했어요”로 시작되는 최정자씨의 글이었다.
남편 사별한지 18년이 되고, 나이가 60이 다 되어간다는 그는 최근 한 할아버지를 중매로 만나면서 재혼을 생각해본 심정을 차분하게 써내려 갔다. 그의 편지가 내 관심을 잡아끈 것은 두 마디 말 때문이었다 - 따뜻함과 순수함. 그는 재혼 상대로 ‘가슴이 따뜻한 사람’그리고 ‘순수한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주변에서 보면 순수하게 서로 사랑해서 재혼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대개 조건부터 따지고 서로 이용하려고 들어요. 남자들은 여자가 돈이 있나, 집은 있나, 나이는 젊은가 부터 따지고, 여자들은 남자의 재력을 따지지요”
“나 같은 ‘순수 떼기’는 재혼하기 어렵다”고 그는 나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말했다.
‘재혼’이 우리 삶에 바짝바짝 다가들고 있다. 두가지 경로 때문이다. 첫째는 높은 이혼율이다. 이혼이 많아지면서 재혼이 늘고, 재혼이 늘면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재혼하는 풍조가 자리를 잡고 있다. 한국의 2005년 통계를 보면 결혼 4건 중 1건은 재혼이다. 하루 평균 867쌍이 결혼하는 한편으로 352쌍은 이혼을 한다니 이혼·재혼은 이제 일상적 삶의 한 양상이 되었다.
미주 한인들의 경우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이혼도 재혼도 많다는 것은 피부로 느껴지는 일이다. 잠깐 주변을 둘러봐도 이혼한 커플, 재혼한 커플 서넛쯤은 쉽게 꼽힌다. 미국, 한국 모두 이혼율 1, 2위를 다투는 나라들이니 미주 한인들의 이혼율도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혼이 ‘우리 일’로 다가오는 두 번째 요인은 길어진 기대 수명이다. 명실공히 “요즘 60대는 청년”이어서 대개 외모도 젊고 건강하다. 여생도 보통 20여년은 될 것으로 여기는데, 모든 부부가 그 수명을 같이 살아내지는 못한다.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건강 좋고 살 날 많은 보통의 우리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서는 이슈가 재혼이다.
재혼 수요가 높다는 것은 ‘재혼’을 내건 공개 이벤트가 열리는 것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결혼 정보회사 듀오 LA지사는 지난 19일 재혼 희망자만을 위한 만남의 행사를 개최했다. 듀오 측은 전체 회원 중 30%가 재혼 희망자들인 만큼 재혼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열 계획이라고 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보통 말하는데, 그렇다면 재혼은 어떨까. 재혼은 ‘하면 후회’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미국에서 초혼의 이혼율이 40%라면 재혼의 이혼율은 70%에 달한다. 한인사회도 비슷하다. 남가주 오렌지카운티 한인가정상담소 통계를 보면 전체 상담 중 재혼 가정 케이스는 15% 정도. 그런데 이들 재혼 가정 중 70%는 문제가 심각해서 결국 다시 깨어지고 만다고 한다. 깨어져서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재혼이 더 잘 깨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족 공동체로서 같이 참고 견디는 인내심 부족이다. 가정상담 전문가는 말했다.
“모든 게 좋을 때는 별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경제적 곤란이나, 가정폭력, 성격상의 차이 등 가정에 어려움이 닥칠 경우 꿋꿋이 참고 이겨내는 정도가 초혼에 비해 훨씬 떨어져요”
가족으로서의 끈끈함이 떨어지는 것인데, 그 근본을 짚어보면 ‘조건’으로 귀결된다. 젊은 시절 밥을 굶어도 같이 있기만 하면 행복하다는 열정으로 맺어지는 초혼과 달리, 나이 들어서 각자 자녀 딸린 상태로 가정을 재구성하려면 조건을 너무 안보는 것도 사실 무책임이다. 문제는 ‘사람’보다 ‘조건’만 보는 재혼, 재혼 희망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인생도, 결혼도 마라톤이다. 오르막길, 자갈길 지날 때 있고 눈보라, 폭풍우 뚫고 나가야 할 때가 있다. 재혼은 무거운 짐을 잔뜩 이고 지고 같은 길을 가야하는 고난도 마라톤이다. 먼저 결혼에서 생긴 자녀, 전 배우자 등 복잡한 인간관계, 상실감·배신감 같은 감정적 상처 등 문제를 산더미 같이 안고 시작하는 것이 재혼이다. 돈, 직업, 나이 등 외적 조건만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뜻함과 순수함’이라는 기본조건이 꼭 붙어야 하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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