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자녀가 어머니날에 드리는 글
태어나서 수없이 많은 어머니날을 무심코 보낸 제가 금년엔 쬐끔 “철”이 들었나봅니다. 지금 저의 눈엔 알수없는 눈물이 고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벌써 나이가 많이 드셨고 두분다 틀니에 의존하는 분들로 변하셨습니다. 틀니를 빼면 합죽하게 들어가는 볼과 손등위의 검버섯들, 이렇게 변한 부모님의 외모는 제가 미국에서 자랑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그늘목이 되어주기 위해 삶과 맞서 오신 30년 이민생활에서 생긴 사랑의 훈장임을 난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젊었을 때 그처럼 에너지 넘치고 열정적이던 부모님도, 이제 세월앞에선 어쩔 수 없이 노인이 되신겁니다. 이 현실을 늦게나마 받아드리고 나니 목이 꽉 졸아들고 코가 겨자를 먹은 듯 찡하며, 붙잡을 수 없는 세월에 한탄하듯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제 나이를 물어보시면, 저는 곤란해집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며 사회적으론 미래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사는 정상적 현대인이라고 자부하지만 불행하게도, 후회스럽게도 철이 뒤늦게 찾아왔습니다. 부모님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뒤늦은 깨달음이 부끄럽고 또 아쉬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한발 늦은 깨달음을 후회하면서도 “Better late than never”라고 변명하며 스스로 위로를 받습니다.
처음 이민 보따리를 들고 한국을 떠나올 때부터 쭉 언제나 나는 보호받고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당연한 ‘어린아이’였습니다. 호빵의 모든 팥은 나의 것, 아빠는 ‘밀가루를 매우 좋아하셔서’ 팥없는 밀가루 껍질만을 드셨습니다. 갈치의 큼직한 토막이나, 굴비의 중간 살부분도 언제나 내차지였습니다. 엄마, 아빠는 ‘생선 대가리부분이 더 짭짤하고 맛있다’고 하셨지요. 각각 입맛이 다르니까 내가 어떻게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아니었나 봅니다. 한사람 접시마다 생선이 나누어져 있어도,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제게 더 먹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찬밥 아닌 따뜻한 밥만 먹어야 귀하게 된다고 고집하며 나의 한국 초등학교시절, 보온 도시락을 갖다 주려고 학교 담까지 넘으시던 엄마가(당신께서 절대 부인하지만)세월이지나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70세 나이인데도 당신이 40세이라고 착각하면서 매일 1시간 이상 머리띠를 두르고, 무릎 패드를 끼고, 트레드밀을 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세상에서 살다가 넘어지고, 포기하고 싶을 때는 우리 엄마의 열정을 생각하며 또 일어서야지 매번 다짐합니다.
미국의 문화를 즐겁게 받아드리는 우리 엄마는 LA 레이커스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레이커스 게임이 있는 날은 ‘Kobe 8’저지를 입고, 게임을 보면서 울고 웃으며 응원하는 ‘쿨한 할머니’입니다. “엄마가 그렇게 광적인 응원을 해도 코비는 엄마를 몰라”라고 내가 비웃어도 아랑곳없이 함성을 질러대는 엄마에게서 나이와 상관없이 긍정적으로, 기쁘게, 열정적으로 산다는 것을 배웁니다.
먼 훗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실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한없이 슬퍼집니다, 요즘은 부모님과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좀더 시간을 함께 하며 여행을 다닐걸, 좀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진지한 대화를 나눌걸… 이런 아쉬움없이, 후회없이 엄마 아빠를 먼 훗날 기억할 수 있도록, 매일 매일 작은 메모리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렵니다. 그래서 요샌, 귀찮다고 너무 당신들 집에 자주 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셔도 난 이유를 만들어 부모님을 뵈러갑니다. 엄마 아빠는 귀찮은 척, 싫어하는척 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X 레이 필름엔 그 표정 아래 반가움이 두껍게 깔려있는 것이 확실하게 보이니까요.
나와 내 남편을 위해 지금도 새벽마다 기도해주시는 엄마, 아빠. 내가 이제야 깨닫는 부모님의 아늑하고 묵직한 사랑을 좀더 일찍 이해했더라면… 하지만 1년후, 10년후가 아니고 지금에라도 그 사랑을 배운 것이 한 없이 기쁩니다. 그리고 이젠 늦게나마 제가 부모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뼈져리게 감사드리며 행동으로 표현해야할 시기가 왔습니다.
엄마 아빠, 미안합니다, 미리 깨닫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제야 겨우 엄마 아빠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게 되어서.
그리고 사랑합니다.
*시카고 NBC와 FOX 뉴스의 프로듀서, PBS 특파원등을 역임한 필자는 초등학교 1학년때 이민 온 1.5세로 한글로 쓴 이민일기 ‘바나나 공주, 지니 오’라는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다.
지니 오 UCLA 대학원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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