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 우리 신문사의 문예공모전 때면 작품들이 산더미같이 몰려온다. 바쁜 이민생활 중에 무슨 글쓸 시간이 있을까 싶지만 작가 지망생들이 써보낸 소설, 수기, 시는 수백 편에 달한다.
보내온 글들이 모두 ‘소설’이고, ‘시’인 것은 아니다. 어느 해 시 부문 심사를 맡았던 한 문인은 이런 말을 했다.
“수백편에 달하는 시 응모작 중에서 시라고 부를 수 있는 건 50편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래도 가슴에 하소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밤을 도와 쓴 글들이니 함부로 버릴 수가 없지요”
살면서 가슴속에 고이는 생각·감정들을 밖으로 분출하고 싶은 욕구, 내 속의 것을 내어 보임으로써 이해 받고 싶은 욕구, 그래서 관심도 얻고 사랑도 받고 싶은 욕구는 생리적 욕구만큼이나 인간에게 기본적인 욕구이다. 이웃 존재와 소통하고 싶은 커뮤니케이션의 욕구인데, 음악이나 미술, 문학 등 예술이 가장 승화된 표현 방식이라면 보통 사람들이 보통 쓰는 욕구 해소 방식은 말·대화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대화의 통로가 쌍방향이 아닌 일방 통행로로 바뀌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말할 시간을 안주고 혼자서만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참석자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노인들이 많다.
지난 연말부터 여러 모임에서 ‘세븐 업’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회자되고 있다. 나이 들어 ‘늙은이’취급받지 않고 대접받을 수 있는 비결 7가지를 업(Up)을 붙여 표현한 것들이다. 주변을 청결하게 하고(Clean Up), 용모를 단정하게 하며(Dress Up), 입은 다물고(Shut Up),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고 (Show Up), 분위기를 활기차게 하고(Cheer Up), 돈을 잘 내고(Pay Up), 포기할 것은 포기하라(Give Up)는 조언들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보면 7가지 중 가장 어려운 것이‘입 다물기’인 것 같다. 신문사의 한 선배는 지난 연말 서울에서 온 동창들과 며칠을 보냈는데 “두번 다시 같이 있고 싶지 않더라”고 했다. 60대 중반의 동창들이 왜 그렇게 말이 많은지 잠시도 입을 쉬지 않기 때문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오래 기자생활을 하고 은퇴한 스탠 힌든이라는 노 칼럼니스트가 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은퇴나 노년에 관한 글을 쓰는 그가 자신의 노년 생활 10계명을 소개한 적이 있다. 노년에 할 일 10가지와 하지 말아야할 일 10가지이다. 할 일은 운동, 독립성, 바른 식생활, 사교, 봉사 등 대개 상식적인 조항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 중 3가지가 말에 관한 것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같은 사람에게 자꾸 되풀이하지 말 것, 자기 건강 상태를 끝없이 늘어놓아 옆 사람들을 질리게 하지 말 것, 세상사람들이 당신이 충고해주기만 기다린다고 생각하지 말 것 등이다.
나이 들면 왜 말이 많아질까. 힌든의 조언에서 그 원인을 유추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우선은 기억력 감퇴이다. 전에 같은 말을 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꾸 또 하는 것이다. 70세의 한 부인은 최근 딸에게 “내가 같은 말을 또 하거든 지적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친구들 모임에 가면 모두 전에 했던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그 자신이 짜증이 나던 경험 때문이다.
둘째는 외로움이다. 나이 들면 사교 범위가 줄어들면서 말할 상대가 전처럼 많지가 않다. 그래서 누구 한사람 만나면 가슴속에 고인 말들을 수도꼭지 틀어놓듯 쏟아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여기저기 쑤신 몸 아픈 이야기로 상대방을 질리게 하는 것도 그 한 예.
셋째, 모두가 자신의 ‘한 말씀’을 기다린다는 착각이다. 나이 들면서 어느 자리에 가건 자신이 대화를 주도해야 된다는 좌장 의식 같은 걸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철없어 보이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하고, 충고를 하고, 가르침을 주다 보면 대화가 아닌 설교가 되고 만다.
가장 아름다운 대화는 애정 어린 경청이다. 4사람이 모인 자리라면 말하기는 1/4, 듣기는 3/4이 되는 것이 기본이다. 입 다물고 귀를 열기 - 나이 들며 배워야할 매너 1번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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