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3학급씩이었는데 1, 2반은 남자애들, 3반이 여자애들 반이었다. 5학년이 되니 남자반 애들이 갑자기 이상해졌는데 휘파람도 들려오고 상스러운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고 공연히 웃으며 여자반 복도를 후다닥 뛰어 지나가는 놈까지 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어느 날 방과후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하며 노는데 바로 우리 옆을 남자애들 몇이 지나가고 있었다. 힐끔 보니 1반 교실 복도에서 가끔 벌서고 있는 모습을 본 일이 있는 강경희라는 장난꾸러기가 눈에 띄고 1반 반장도 함께 걷고 있었다. 우리는 못 본 체하고 계속 놀고 있는데 경희녀석이 1반 반장 어깨를 잡고 내 쪽으로 훽 돌리며 “너도 반장이니까 3반 반장 네 마누라 해라!” 하는게 아닌가.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얼른 감이 오지 않았으나 그 녀석의 행동이 왜 그렇게 부끄러웠던지 모르겠다. 마누라 어쩌구 하던 그 한마디가 마법의 끈인 양 나를 옭아매고 그 후부터는 1반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으니까…
1939년 우리는 6학년이 되었다. 1반 반장 함춘주는 언니가 6학년때 담임을 맡았던 함언주 선생의 동생이라고 했다. 근처에 사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집이 가난하여 형님 집에 와있는데 함선생 부인이 구박을 하여 늘 아기를 업고 길에 나와 서있는데 언제나 쓸쓸해 보이는 불쌍한 애야. 그래도 공부는 언제 하는지 또 반장이 된걸 보니 1등이었나 보지?”했다. 우리 학교는 1등은 반장, 2등은 부반장이었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어쩐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6학년 1반에 김용식이라는 친척 애가 있었는데 하루는 우리 집에 놀러와서 한다는 소리가 “우리 반장이 말이야 나더러 3반 반장이 너네 친척이냐고 묻고 있더라. 그 녀석 그런 줄 몰랐는데 바람둥인가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공연히 가슴이 뛰며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왜 이럴까?
우리 고장에서 해마다 6월10일이면 벌어지는 포스터 대회가 있었다. 내가 그린 포스터가 중앙통 ‘가와이 상회’ 큰 유리창에 붙었다는 말을 듣고 친구 김전옥과 함께 보러 가는데 멀리서부터 웬 남자아이가 큰 유리창에 붙어서서 하염없이 포스터를 쳐다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 보니 1반 반장 춘주가 아닌가? 그는 우리를 돌아다보더니 도망치듯 뛰어가 버렸다.
6학년 1반 반장을 ‘전체급장’이라고 불렀다. 아침 조례 때면 전교생을 향하여 “차렷, 교장선생님께 경례!”하고 구령을 거는데 나는 매일 아침 춘주의 우렁찬 구령소리를 들으면서 그를 점점 좋아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졸업하던 날 춘주와 나는 나란히 서서 ‘도지사상’을 탔다. 춘주와 그렇게 지근거리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각각 다른 도시로 진학을 했고, 나의 졸업과 동시에 우리 일가는 청진으로 옮기게 되었으므로 그 후 4년이나 보지 못했으나 말 한마디 주고받은 일 없는 그를 나는 잊지 못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의 ‘여자미술학교’와 ‘제국여자전문학교’ 가사과의 합격통지를 받았는데 “B-29 공습이 심하니 지금 동경에는 못 보낸다”고 아버님이 막으셨다. 그때 나는 가다 죽어도 간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보니 ‘마지막으로 함춘주를 한번 봤으면!’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9시간이나 기차를 탔다. 고향에 가서 김용식을 만나면 그의 소식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을까…
그런데 막상 용식을 만나니 차마 춘주 얘기부터 꺼낼 수 없어 친척들 얘기도 듣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돌아오는 차편만 알려주고 헤어졌다. 다음날, 내가 뭣땜에 이곳까지 왔는데 정말 이렇게 돌아가야 하나 허탈한 기분으로 역에 나오니 건너편에서 청년이 된 함춘주가 이쪽을 보고 서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마구 달려가서 매달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그를 외면하고 서둘러 홈으로 빠져나왔다.”내가 동경에 간다고 용식이가 귀뜸을 해줬구나. 지금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게 아닌데 어쩌면 좋지?”
곧 기차가 오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바람에 간신히 뎃끼에 탔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춘주가 뛰어와서 계단에 한쪽 발을 올려놓고 위를 살피더니 훌쩍 올라탔다. 아, 그가 드디어 나를 찾아왔구나! 가슴이 터지도록 기뻤다. 바로 내 등뒤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그의 숨소리로 알아차렸으나 나는 똑바로 앞만 보고 서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그가 나의 왼쪽 어깨에 손을 얹고 흔들었다. “저, 3반 반장하던 분인가요?” 나의 태도가 하도 냉냉해보이니까 긴가 민가 싶어 확인을 하는 모양이었다.
“네 그래요” 짤막하게 대답하고 곧 후회했다. 화제가 이어지도록 대답했어야 했는데… 그는 묵묵히 서있더니 이름 모를 간이역에서 “사요나라!”하고 내렸다. 지금쯤 그도 신경통, 관절염, 해소쟁이 할아버지는 되지 않았는지…
김순련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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