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 있는 일반인들이 펴낸 요리책이 잇달아 출간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요리책 전성시대
신혼 시절, 친정 엄마에게 요리에 관한 질문을 할 때마다 ‘그냥 적당히’라거나 ‘맛보면서 알맞게’라는, 당신에게는 명쾌하지만 초보 주부에겐 한없이 애매 모호했던 대답들을 뒤로하고 서점에 들러 요리 책 한 권 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만 해도 요리 책이라고 하면 유명한 요리 연구가들의 손맛과 레서피를 정리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계량 스푼과 계량컵을 사용해 재료와 양념을 정확히 사용해야 함은 물론이고 요리를 막 시작하는 초보 주부들은 시도해볼 엄두조차 못 낼만큼 길고 복잡한 레서피들이 실려 있는 것이 전반적인 특징이었다. 또한 그 즈음 실력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요리를 즐긴다는 연예인들의 얼굴과 이름을 빌려 만든 요리 책들도 하나 둘 출간,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렇다면 요즘 출판된 요리 책들은 어떨까? 한눈에 보기에도 기자가 초보 주부이던 시절에 나왔던 요리 책과는 많이 달라진 요즘 요리 책의 최신 경향을 살펴보았다.
◇인터넷 블로거를 통해 알려진 손맛 좋은 일반인들이 펴낸 요리책
요리 연구가라는 타이틀 없이 ‘손맛’ 하나만 끝내줘도 요리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부지런히 살림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해 먹이는 일을 업으로 삼는 평범한 주부들이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직접 만든 요리를 하나씩 올리다 보니 요리 사이트로 유명해져 이른바 유명세를 타게 된 것.
이들이 홈페이지에 올린 요리들을 한데 묶어 요리 책으로 내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데 인터넷을 통해 이미 인기도는 검증된 상태이기 때문에 요리 책도 어느 정도는 팔린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주방 한 코너에 꽂아두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만큼 곳곳에 매력이 숨겨져 있다.
최근에 인기있는 요리책으로는 네이버 요리 블로거 문성실의 ‘쌍둥기 키우면서 밥해먹기’, 다소마미라는 요리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유경아씨의 ‘5,000원으로 손님상 차리기’와 ‘2,000원으로 아이들 밥상 차리기’, 트루씨 홈페이지의 주인 김미경씨의 ‘2,000원으로 아침상 차리기’가 인기다. 또한 출판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주목을 받고 있는 ‘친환경 아줌마 꼬물댁의 후다닥 밥상’도 기대되는 요리책 중 하나다.
또 ‘나물이’로 더 유명한 싱글남 김용환씨의 손맛과 노하우가 그대로 담긴 요리 책 ‘누가해도 참 맛있는 나물이네 밥상’은 그 명성에 걸맞게 출판되자마자 한국과 이곳의 서점 베스트 셀러로 꼽힐 정도로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다.
주부·20대 남자·가수까지 요리책 펴내
인터넷 블로그서 인기 얻은
‘쌍둥이 키우면서 밥해먹기’등
재료 구하기·조리법 쉬워
‘자연을 담은 소박한 밥상’
TV 프로 엮은‘위대한 밥상’은
친환경 먹거리 사용한 웰빙식
경륜있는 전문가 노하우 담은
심영순씨 ‘최고의 우리맛’등
전통 요리책도 꾸준히 팔려
20대남 한승택씨 ‘사랑요리’
가수 이승철의 ‘쿠킹 콘서트’
일식‘노부, 맛의 제국’등 다양
요리 책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 손맛 좋은 일반인들이 펴낸 책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 일상 생활에서 바로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며 소박하지만 질리지 않는 메뉴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계량컵이나 계량 스푼 없이 어느 집에나 있는 일반 숟가락과 종이컵을 기준으로 양념과 재료의 분량을 적어놓은 것도 색다르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리책은 네이버 블로거 문성실의 ‘쌍둥이 키우면서 밥해먹기’.
총 270여 가지의 다양한 요리가 실린 이 책은 수많은 네티즌들의 감탄과 지지를 받았던 알찬 요리 레시피와 결혼 7년차 주부이자 쌍둥이 엄마인 주부의 진솔한 일상까지 엿볼 수 있어 더욱 친근감이 느껴진다. 숟가락과 종이컵을 사용한 재료 계량, 참치액, 굴소스 등을 활용한 맛내기 요령, 간단하지만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홈 베이킹, 한번쯤 따라하고 싶은 유명 맛집 요리에 이르기까지, 주부들이 알고 싶어하는 요리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 웰빙 시대에 걸맞는 ‘건강’을 강조한 요리책
웰빙 라이프 스타일에 걸맞게 친환경 먹거리, 건강 조리법을 강조한 요리책 출판이 활발해졌다. 이 책들은 매일 먹는 밥상에 올리는 먹거리가 건강은 물론 환경 문제와 직결되는 요소임을 지적하면서 엄마의 정성이 담뿍 담긴 슬로우 푸드와 싱싱한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눈에 띄는 요리책으로는 녹색연합에서 펴낸 ‘자연을 담은 소박한 밥상’, KBS2 TV 비타민이라는 건강 프로그램의 한 코너 위대한 밥상에 소개되었던 요리들과 몸에 좋은 재료들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 소개한 ‘위대한 밥상 1, 2, 3’으로 모두 서점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이중에서 민간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에서 펴낸 ‘자연을 담은 소박한 밥상’은 총 110가지의 친환경 요리가 실려있다. 요리 전문가가 개발한 요리가 아닌 전국의 평범한 주부들이 직접 개발한 것을 모아 만들기 쉽고 친근한 것이 특징이자 장점이다. 또한 책을 위해 머리를 짜낸 메뉴가 아닌 일반 주부들이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많이 만들어 먹었던 음식들을 식품영양학과 교수와 영양사 등의 전문가들의 심사를 통해 추려낸 요리라 더욱 믿음이 간다.
◇ 오랜 경륜의 요리 전문가들이 펴낸 요리책
손맛 좋은 일반인들이 펴낸 요리책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오랜 경력과 연륜이 쌓인 전문가들의 요리책도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요리에 관심 있거나 요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스테디셀러인 셈.
캐주얼한 일상 요리보다는 젊은이들에게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 요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제철 요리, 맛을 내는 기본이 되는 다양한 양념까지…. 할머니의 오랜 손맛에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깊은 맛을 담고 있는 요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초보 주부들에게는 생소한 전통요리나 길이가 긴 레서피 들이 부담스러운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제대로 된 요리습관을 들이려면 오랜 경력의 전문가들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요리책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눈에 띄는 요리책으로는 방배동 선생 최경숙의 ‘기초 한식(매일반찬, 국물요리)’, 옥수동 선생 심영순의 30년 노하우를 담은 ‘최고의 우리맛’, 조선 순종의 둘째 따님인 복온공주의 후손 김숙년씨가 펴낸 ‘김숙년의 600년 서울음식’,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으로 유명한 장선용씨의 ‘음식 끝에 정 나지요’ 등이 있다.
한식 요리에만 대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맛있는 빵과 쿠키 만드는 법을 영문 요리 책으로 펴낸 경험이 있는 ‘김영모의 빵, 케이크, 쿠키’와 할리웃 스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식 퓨전 요리의 대가 노부유키 마츠히사가 펴낸 요리책의 한국어판인 ‘노부, 맛의 제국’도 한번 눈 여겨 볼만하다.
◇ 기타 관심 끄는 요리책들
‘2,000원으로 차리는∼’ 시리즈가 관심을 얻으면서 적은 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소개한 소위 ‘서민을 위한 요리책’도 인기를 끌었다. 이런 스타일의 요리 책의 시작은 나물이네로 유명한 김용환씨의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로 시작되었는데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각종 요리 경연대회에서 상을 휩쓸어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대의 젊은 남자 한승택씨의 ‘2,000원으로 사랑요리 만들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출판 된지 얼마 안돼 이곳에서는 조금 기다려야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경향에 발맞추어 두껍고 무겁던 요리책이 얇고 보기 편해진 것도 특징. 국물 요리, 반찬, 일품 요리 등 주제별로 나뉜 요리를 아예 한 권씩 시리즈로 만든 것. 주부들이 필요한 분야의 요리만 골라 살 수 있어 더욱 합리적이다. 또한 최근에 출판된 요리 전문가 한복려의 ‘반찬 걱정 없애주는 책’은 주방에서 보기 편하도록 캘린더형으로 만들어 더욱 실용적이다.
이밖에도 가수 이승철의 요리 노하우가 담긴 ‘쿠킹 콘서트’는 한동안 붐을 이뤘던 연예인들의 요리책의 최신판.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미 손맛을 인정받은 이승철의 쿠킹 콘서트에는 매일 먹는 한식, 특별한 날을 위한 양식 코스, 술안주로 유용한 퓨전 스타일의 파티 안주까지, 총 80여 가지의 메뉴가 담겨있다.
글 성민정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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