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의 스피치 시간은 언제가 기대가 된다. 오늘은 또 어떤 소리 때문에 까르르 웃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승욱인 어떤 목소리로 말을 할까 마음껏 상상을 하면서 난 승욱이를 데리고 UCLA로 향한다. 일하랴, 승욱이 말 가르치러 데리고 다니랴 몸이 열개여도 다 모자라지만 우리 목사님의 설교처럼 하나님이 주신 몸을 일하지 않아 녹슬어 하나님 앞에 가는 것보다 열심히 일해서 몸이 닳아서 하나님 앞으로 가야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절대동감…
차가 막혀도, 쌩쌩 달려도, 햇빛이 쨍해도, 구름이 끼어도, 해가 져도, 배가 고파도, 그저 감사하다. 입에선 언제나 감사의 기도와 찬양이 승욱이를 데리고 UCLA로 가는 내내 흥얼흥얼이다. (누가 보면 완전히 미친 사람 같겠지만…)
승욱이는 여전히 밤낮이 뒤바뀐 채로 난 매일 밤 승욱이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여전히 아버지의 간간이 들려오는 기침소리는 나에게 무겁게 다가오고 괜찮으실거란 나만의 최면을 걸고 그저 승욱이에게 더 집중하던 참이다.
마침 4년 넘게 살던 아파트도 계약이 끝나가고 우리가족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친정어머니는 낮에 집을 보러 다니고 난 퇴근 후에 어머니가 보고 온 집을 함께 찾아가곤 했다. 낮에 우리 어머니에겐 집을 렌트를 준다던 집주인들은 저녁에 내가 승욱이를 안고 집을 보러 가면 어김없이 다음날 우리에게 집을 못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처음엔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한번 두번 거절을 당하니 그냥 편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 승욱이가 렌트 준 집에 살면서 다치거나 하면 자신들에게 무슨 피해가 간다고 생각을 하나보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저 이해할 수 있었다. 입장을 바꿔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가 생겼다. 우연히 아는 분에게 집을 구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신이 렌트 주고 있는 집이 곧 계약이 끝난다고 그곳으로 이사를 오라고 해주셨다. 집을 보니 너무 예쁘고 아이들과 부모님과 살기엔 딱 맞는 그런 집이었다. 5월 셋째 주에 이사를 결정하고 하나둘씩 이삿짐을 챙기고 있었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좋은 일이 착착 진행되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는 계속해서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해 드시고, 기침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해서 드셔도 별 차도가 없으시다. 두차례 엑스레이를 찍어본 주치의는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갈 것을 권하셨다. 점점 숨이 차서 더 이상 일도 못하시고 집에 일찍 들어오시는 날이 많아지셨다. 아무 일 아니겠지… 아무일 아닐꺼야… 암, 그럴꺼야… 난 계속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다. 큰 병원에 다녀오신 날, 아버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무슨 일일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가는걸까…’ 병원에선 USC병원으로 빨리 가라는 소견서를 주었다고 했다. ‘그럼, 아주 나쁜 병? 우리 가족은 그저 폐에 염증이 생긴거라 생각했는데… 그럼 뭘까…’
아버지가 USC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시는 날, 승욱이도 청력 검사를 위해 UCLA로 가는 중이다. 아버진 아버지 병원으로 난 우리아들 병원으로… 마음이 너무 무겁다. 애써 눈물을 참고 찬양을 크게 틀고 잠자는 승욱이를 데리고 UCLA로 갔다. 와우이식을 한 후에 승욱이가 얼만큼 듣는지를 테스트 해 보는 날이다.
반갑게 우릴 맞이하는 청력사의 얼굴도 말도 하나도 보이지 않고 들리질 않는다. 온통 생각은 아버지의 병원에 가있다. 영어부터 모든 것에 불편을 겪으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빨리 청력검사를 마치고 아버지에게 가야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승욱이의 청력검사가 모두 끝이 났다. 와우이식한 것에 채널을 좀 다르게 바꾸고(소리의 폭을 좀 높임) 다음 검사 때까지 다른 어떤 변화가 있나 잘 관찰하라고 했다. 난 대답도 건성건성 하고 서둘러 UCLA를 빠져 나왔다. 청력검사 내내 울던 승욱인 금새 잠에 빠져들었다. 병원에만 오면 울어 버려서 언제나 정확한 검사를 할 수가 없다. 이젠 병원하고 친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무서워하니 걱정이다.
아버지가 계신 USC병원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눈물을 또 줄줄 흘리며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 하나님, 제발 아무 일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별일 없을거라 안심시켜주세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도 이젠 제법 운전도 잘한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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