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술에 목숨 거는 주당이라면 모를까 일반인들에게 술이라고 하면 맥주나 소주 정도가 고작. 여기에 한국에서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세대라면 막걸리와 동동주도 잊을 수 없는 술인데다 인터넷 동호회까지 형성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우아한 술, 와인도 빠뜨릴 수 없는 인기 술이다.
시시각각 입맛이 변하는 것처럼 술에도 엄연히 유행이 있는데, 요즘은 한국산 과실주가 단연 인기다. 머루주, 석류주, 복분자주, 오가피주 등 건강이 먹거리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몸에 좋은 성분이 듬뿍 든 과실로 빚은 과실주가 관심을 얻게 된 것. 거기다 향기도 좋고 첫 맛도 달착지근해 술술 잘 넘어가는 편이다.
과실주의 가장 큰 특징은 과실 열매를 그대로 발효시켜 만든 천연 발효주로 알콜도수가 10-20도 사이로 순하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거나 속이 쓰리다거나 하는 증세가 일반 술을 마셨을 때보다 훨씬 덜하다.
‘한국의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어필하고 있는 다양한 과실주는 ‘독하고 쓴’ 술이 아닌 ‘향긋하고 단맛’ 나는 순한 술로 젊은 세대들은 물론 나이 지긋하진 어른들까지 고르게 인기를 얻고있다.
그 선두주자에 서 있는 대표선수가 바로 복분자 주. 복분자주는 전북 지방 고유의 전통술로 산딸기를 발효시켜 만든 과실 발효주로 레드 와인 같은 진한 붉은 빛을 띤다. 한방에서 산딸기를 일컫는 ‘복분자’는 옛날 어떤 노인이 땔감을 구하러 산에 들어갔다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발견하여 한껏 따먹고 집에 들어와 소변을 보았더니 요강이 뒤엎어졌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복분자 주는 주로 남자를 위한 술, 정력에 좋은 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복분자 주는 ‘선운산 복분자 주’와 ‘보해 복분자 주’ 두 가지. 한국서는 복분자 주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다양한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복분자 주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예로부터 질 좋은 복분자 열매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선운산 일대의 복분자로 만든 선운산 복분자 주가 술맛을 좀 안다는 애주가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다.
복분자 주가 남성을 위한 과실주라면 여자 몸에 좋다는 ‘석류주’도 있다. 약간 비틀어진 독특한 병 모양이 눈길을 끄는 석류주는 경상북도 고지대의 청정 지역에서 자란 100% 한국산 석류만을 원료로 사용하여 전통 발효 방식에 의해 만든 술. 수년간의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개발되어 세계 농업기술상, 한국 식품개발연구원이 선정한 ‘한국 전통식품 베스트 5’, 대통령 표창 등을 받은 품질을 인정받은 제품이며 무엇보다 천연 에스트로겐이 많이 함유된 석류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여자들을 위한 술로 그만이다.
머루주는 신라시대부터 빚어 온 전통 과실주로 산머루를 원료로 발효시켜 만든다. 야생 포도로 알려진 산머루는 포도의 원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와인 평론가들은 흔히 머루주가 프랑스 남서부에서 많이 생산되는 포도품종인 바뉼스로 빚은 와인과 유사한 맛이 난다고 평한다. 이밖에도 런던에서 발행된 한 와인리포트는 ‘감동적이고 신기한 와인’으로, 일본의 유명 여행잡지 ‘여명’은 ‘기교를 부리지 않은 순수한 맛’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부드럽고 깊은 맛… 숙취도 없어
산딸기·석류·산머루
오가피·배·생강 등
몸에 좋은 약재로 만들어
이강주는 3대 전통 명주
“와인보다 낫네” 인기
맛본 외국인들도 호평
시중에서 맛볼 수 있는 ‘감악산 머루주’는 경기도 감악산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산머루 농원에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기법으로 재배한 머루를 발효해 3년의 숙성 과정을 거쳐 만든 과실주다.
이밖에도 몸에 좋은 약재 오가피와 인삼향이 그윽한 ‘가시 오가피주’와 과실주의 맏형이라 할 수 있는 매취순, 설중매 등의 ‘매실주’ 등도 한번쯤 맛볼만한 과실주다.
과실주가 향은 좋지만 너무 달고 순하다고 느껴지는 주당이라면 최근 새로 나온 고품격 소주 ‘이강주’를 한번 시도해 본다. 안동 소주, 문배주와 함께 한국의 3대 전통 명주로 꼽히는 전주 이강주를 무형 문화재이자 전통식품 제조 명인으로 지정된 조정형씨가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재 창조해낸 고급술이다.
알콜을 물에 희석하여 만든 일반 소주와는 달리 발효된 밑술을 증류하는 전통 방식으로 만든 고급 소주로 배, 생강, 율금, 계피 등을 넣어 일반 소주에 비해 맛이 부드러우며 숙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명인에 의해 빚어진 전통주가 대개 촌스럽고 투박한 도자기에 담아져 나오는 반면 이강주는 현대 감각의 심플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유리병에 담겨져 있는데, 빛깔 또한 배에서 우러난 은은한 노란빛이 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초여름 초생달과도 같은 술’이라 칭해왔던 이강주는 배의 청량감, 생강의 알싸한 맛, 계피의 향긋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고급 소주로 전통 이강주의 알콜도수보다 낮은 22도로 제조되어 소주보다도 도수는 높지만 쓴맛이 완화되어 목 넘김이 좋아 술맛을 아는 주당에게 제격인 현대 술이다.
이밖에 한국에서는 이미 선보인 뽕나무 열매 오디로 담근 ‘오디주’와 APEC 정상회담 공식 술로 선보여 호평을 받은 상황 버섯 주 ‘천년 약속’도 곧 애주가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 주당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선운산 복분자주
-알콜도수: 16도,
-마켓 가격: 7.99달러
-맛에 대한 평: 전통주 같은 깊은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 한결같은 반응. 첫맛은 강하지 않지만 뒷맛은 진한 술이 내는 쓴맛이 난다는 평가가 대부분. 박동준 기자는 과실주임에도 불구하고 진한 술맛이 느껴져 ‘술 먹는 맛’이 난다고 했고, 초컬릿 맛도 느껴진다는 정숙희 부장 의견도 있었다.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장어구이(전복 고창의 선운산 가까운 곳의 풍천 장어가 유명한데 예로부터 복분자 주와 함께 곁들여 먹던 음식이며 궁합도 잘 맞는 편이다.)
보해 복분자주
-알콜도수: 15도
-마켓 가격: 5.99달러
-맛에 대한 평: 토속적인 약주 맛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술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게 제조된 라이트한 과실주라는 평. 대부분 선운산 복분자 주가 진하다고 맛있다는 평이었으나 김정섭 부장은 보해가 오히려 산뜻한 맛이 나 가볍게 즐길 수 있어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로스구이나 생선회와 먹으면 깔끔하다.
석류주
-알콜도수: 16도
-마켓 가격: 7.99달러
-맛에 대한 평: 술이라기보다는 진한 석류주스를 마시는 느낌이라는 일부의 의견과 그래도 톡 쏘는 알콜 냄새가 느껴진다는 또 다른 의견이 맞섰다. 첫맛은 소프트하지만 뒷맛은 약간 떫은맛이 나는데, 와인으로 말하면 태닌이 느껴지고 드라이 와인에 가까운 맛이다. 드라이한 와인을 좋아하는 성민정 기자는 오히려 달지 않아 좋다고 평.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생선 구이, 혹은 육류 구이류와 잘 어울리는 맛. 와인처럼 치즈와 함께 먹어도 괜찮은 편이다.
감악산 머루주
-알콜도수: 12도
-마켓가격: 7.99달러
-맛에 대한 평: 전통주의 진한 맛과 함께 단맛이 강하다. ‘맛있다’는 것이 한결같은 의견. 달고 맛있는 디저트 와인 같은 느낌이 들어 여성들에게 ‘강추’하고 싶다는 정숙희 부장의 평가와 함께 너무 달아서 술 같지 않다는 박동준 기자의 의견도 있었다.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고기류와 함께 먹으면 좋다. 머루에는 소화기능을 촉진하는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함께 곁들이면 고기 소화에 도움이 된다.
강화도 자 오가피 술
-알콜도수: 13도
-마켓가격: 3.99달러
-맛에 대한 평: 전통주처럼 처음 향은 진하다. 특히 인삼 향이 강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과실주라기 보다는 약술이라는 느낌. 하지만 맛을 보면 진하고 깊은 맛이 나지 않는 편. 정통 중국 오가피 술맛을 본 김정섭 부장과 김상목 차장은 그에 비해 못하다는 평.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생선회와 함께 곁들이면 잘 어울리는 맛.
이강주
이강주 쓴 맛 없어 “이거 소주 맞나요”
-알콜도수: 22도
-마켓가격: 6.99달러
-맛에 대한 평: 화학소주의 맛에 길들여진 남자들의 반응은 소주 맛과 너무 다르다는 것. 일반 소주의 톡 쏘고 쓴맛이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었지만 여자들은 오히려 끝 맛이 달착지근해 소주보다는 잘 넘어간다는 평이다. 정숙희 부장과 민경훈 의원은 약한 데킬라 같은 맛이 나는 술이라는 평가를 해주었다.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고기와 함께 곁들여 마시면 소화도 잘되고 맛도 잘 어울린다. 또한 돼지 고기 요리시 조금 넣으면 육질을 부드럽게 해 주고 냄새도 없애주는 요리술 역할도 한다.
■6명의 기자, 직접 시음해보니…
술도 먹는 음식이다. 그래서 어떤 재료로 어떻게 빚었는지 보다는 사실 ‘맛’이 어떤 지가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다. 과실주의 돌풍을 일으킨 복분자주를 비롯해 요즘 새로 나온 과실주를 시음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음자는 한국일보에서 ‘한 술’ 한다는 민경훈 논설위원, 사회부 김정섭 부장, 김상목 차장, 특집 1부 박동준 기자, 그리고 특집 2부의 푸드 담당 데스크이자 와인 전문가 정숙희 부장과 성민정 기자 등 6명. 이들이 한데 모여 6가지 과실주를 마셔보았다.
글·사진 성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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