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거금(?)을 들여서 이를 다 손봤는데 어금니에 또 문제가 생겼다. 충치를 갈아내고 필링(filling)치료를 받았는데 엊그제부터 어금니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전등을 켜고 꼼꼼히 살펴보니 충치치료를 한 옆으로 틈이 생긴 것이 보였다. 또 사단이 났구나. 누군들 치과 가는 것이 좋으랴만은 어릴 때부터 치과 출입이 잦았던 나는 치과 가는 것이 거의 공포수준이다.
사십 중반인 나이에 충치로 치료를 받은 것 13개다. 내 치아중 절반 정도가 부실하고 보니 치아 때문에 고생한 날이 셀 수 없이 많다. 늦둥이로 태어나 밤마다 아버지가 품안에서 꺼내주시는 사탕이랑 과자를 늘 먹으면서 잠들었던 나이고 보면 이가 상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너댓 살 무렵, 부시시 자다 일어나 윗목에 있던 요강에 앉아 볼일을 보고 나서 재봉틀 서랍에 아버지가 넣어두신 사탕을 하나 꺼내 물면서 잠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어제 일인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 그 꿀맛같던 사탕을 요쪽저쪽 입안에 굴리면서 다시 잠들던 어린 나는 너무나 행복했었다. 굵은 설탕이 붙어있던 왕사탕부터 신앙촌 캬라멜, 또 새끼손톱보다 작은 형형색색의 별사탕까지 내 입안에서 녹여낸 사탕의 양만큼, 그 달콤함만큼 내 이가 상했을 터, 그런데 내 부모님들은 그 당시 양치하는 것을 말씀해주시지 않으셨다. 아마도 단 사탕을 먹고 이를 안 닦으면 이가 얼마나 상하는지 깊게 생각을 하지 못하셨을 테고, 또 당신들의 어린 딸이 자다 말고 사탕을 꺼내 먹는 습성이 있는 줄도 모르셨을 것이다. 요즘 같으면 기겁할 일이지만, 어찌됐든 어린 날 그 달콤한 행복이 빌미가 되어 겪은 치통의 세월은 오늘날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빨리 치과에 예약을 해야 할 텐데. 있는 대로 입을 벌리고 마취주사를 맞고 또 그야말로 이 갈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끔찍해서 어제, 오늘 계속 망설이고 있다. 그래도 음식 먹을 때마다 너무 괴로우니까 내일이라도 치과엘 가봐야지 싶다.
또 한군데 가볼 곳이 생겼다. 산부인과다. 며칠 전 서울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에 힘이 없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자궁암에 걸려 수술을 했다고 했다. 일 년에 한번씩 검진을 받았다면 좋았을 걸 잊고 지내다 그만 병이 깊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절제수술을 하고나니 너무도 우울해졌노라고 나더러 병원에 언제 갔다 왔냐고 묻는 전화였다. 그나마 목숨건진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친구를 위로하면서 생각해보니 나도 병원에 가서 검진 받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거린다.
“암이란 진단 받고 나니까 앞이 깜깜하더라. 내가 앞찬 말을 많이 해서 벌 받는구나 싶었어. 오래 살면 뭐하냐고 자주 말했었거든. 막상 죽는다 싶으니까 아이들 공부도 다 못시키고, 또 나 죽으면 연로하신 부모님은 또 무슨 고통을 받으실까 싶고.… 아니, 그 모든 이유보다도 내가 더 살고 싶어지더라.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정말 열심히 잘 살겠다고 하나님께 수천 번 약속했어. 꼭 병원 가서 검사 받는다고 약속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친구는 서둘러서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한테 전화해서는 꼭 병원을 다녀오라고 당부하고는 약속까지 받는 걸 잊지 않았다. 나도 사랑하는 친구한테 약속을 했다.
자궁암 수술까지 하고 자신도 몹시 힘들텐데 나까지 걱정돼서 멀리서 전화해주는 친구한테 어떻게 다짐을 안 받을 수 있겠는가.
꼭 2주일 전에 내가 좋아하는 선후배랑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오랜만에 내가 올해가 가기 전에 어떻게 하든 명품가방을 사겠노라는 폭탄선언(?)을 했었다. 그동안 생활이 크게 여유롭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감각도 없어서 명품에 크게 관심도 없었는데 나이가 드는 탓인지 좋은 가방 한 개쯤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모두들 웬일이냐고 하면서 그간 검소했으니까, 한번쯤은 나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마련하면 좋겠다고 했다.
아마도 명품가방은 이제 날아가지 싶다. 가방 살 그 돈으로 내 몸을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치과도 가야하고 또 병원에도 가야할 테니 말이다. 어째, 웬일로 명품을 갖고 싶더라니… 내게 명품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셈이다.
이영화 <자영업>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