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브라이언은 열심히 일을 찾아다니지만 오늘도 별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생계를 위해 이미 타운을 떠난 친구들 또 앞으로 떠나려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러나 브라이언에게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브라이언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아버지 어머니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눈을 감고도 어디에 교통신호가 있는지 조심할 것은 무엇인지 길옆에 가로수까지 셀 정도로 환히 알고 있는 정든 곳이다.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브라인언은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차를 몰다가 길옆에 서있는 차와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털털거리는 자신의 폰티악을 벤츠 앞에 세우고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노인은 도움을 받으려고 서있긴 했지만 막상 호젓한 길에 후줄근한 젊은이가 자신 앞에 나타나고 보니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가난하고 배고파 보이는 사람인데. 저 사람 괜찮을까?’
그는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브라이언은 노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될수록 얼굴에 미소를 띄면서 “할머니 제가 도와 드릴께요. 차안으로 들어가 기다리세요. 차안은 좀 날 것 같은데요. 아 참, 제 이름은 브라이언입니다.” 하고는 노인의 차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타이어에 구멍이 난 것을 찾았다.
브라이언은 두어 번 언 손을 비비고는 트렁크를 열어 잭키를 찾아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타이어를 바꾸었다. 나사를 꽉 조일 때에야 노인은 차창을 내리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사람인데 이곳을 지나다 고장이 나서 도와 줄 사람을 오래 기다리던 중이라면서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인은 속으로 여러 가지 무서운 일이 일어 날수도 있는 것을 해결해 준 그에게 얼마를 요구해도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브라이언은 웃으면서 더러워진 손으로 차 트렁크를 닫았다. 노인은 얼마인가를 물었다. ‘이 정도의 일로 돈을 받다니.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은 도움이 얼마나 많은데.’ 브라이언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했을 뿐인데요. 정말로 갚고 싶으시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세요. 그때 저를 기억해 주세요.” 하고는 그녀가 차에 발동을 걸고 떠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기분 좋게 집을 향해 황혼 길을 달렸다.
노인은 몇 마일을 가다가 카페를 발견했다. 집으로 가기 전에 무엇을 좀 먹고 추위를 면하고 싶었다. 오래된 가스 펌프 두 개가 서 있는 문부터 퍽 초라하고 썰렁해 보이는 식당이었다. 그러나 젖은 머리를 닦으라고 깨끗한 수건을 건네주는 웨이트리스를 보면서 노인은 ‘하루종일 일을 했을 텐데.’ 생각했다.
노인이 보기에 웨이트리스는 임신 팔 개월은 된 몸이지만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별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베풀 수 있는 일들이 참 많구나!’ 하면서 브라이언을 떠올렸다. 식사를 마친 후에 웨이트리스는 부인이 낸 100불 자리를 작은 돈으로 바꾸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동안 노부인은 밖으로 나왔다.
웨이트리스가 돌아오니 이미 노부인은 떠난 후였다. 두리번거리며 노부인을 찾다가 냅킨에 무엇인가 쓴 것을 발견했다. 냅킨 밑에는 100불 짜리 4장이 있었다. 웨이트리스는 부인이 써 놓은 노트를 읽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에게 빚진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이미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도움의 일부를 갚는 것뿐이니까요. 이 사랑의 고리가 계속 이어지기 바라요.” 웨이트리스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설탕 그릇을 채우고 청소하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우리 부부가 필요한 돈을 그 부인이 어떻게 알았을까? 내달이 산달이어서 아주 어려울 뻔했는데. 이것 때문에 남편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데.’
웨이트리스는 노부인으로부터 받은 돈과 부인의 노트를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자고 있는 남편 옆에 가만히 누워 그에게 기대면서 속삭였다.
“모든 일이 잘 될 거예요. 브라이언. 사랑해요”
김준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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