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 화사한 한낮의 정원에서 최춘화·순희 부부가 차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5년 전부터 뒤뜰 2,000여스퀘어피트 손질
이웃 불러 맛과 멋 나누는‘삶의 이야기터’
최씨네 부부 정원은 참 복도 많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게도 ‘어여쁘다, 건강해라’ 덕담하고 쓰다듬어주니 무남독녀 외딸에게도 이렇진 않겠다 싶을만큼 지극정성이다. 그러니 복 많은 정원이라는 것이 별로 틀린 말도 아닐 게다. 이들 부부 정원에서 무럭무럭 커나가는 화초들은 이렇게 알뜰살뜰한 부부와 함께 십수년 동거동락했으니 복도 이만저만 터진 게 아니지 않는가. 어여쁜 딸 혼례 앞둔 혼주마냥 살짝 들떠 ‘봄철이면 더 이쁜데, 우리정원 더 이쁜데’를 연신 되뇌는 최춘화(51·사이프레스)·순희(51) 부부를 만난건 아직은 오후 햇살 따가운 초가을 한복판이었다. 그들 부부 정원에선 눈부신 화초들이 햇볕을 쬐느라 일광욕이 한창이었다.
대문옆에 조그맣게 달려있는 쪽문을 삐걱 열고 얼굴 내미니 화사한 가을정원이 사알짝 발밑에 와 앉는다.
아이비, 행운목, 갈대 등 쉽게 볼 수 있는 초목들에 베고니아, 청사초롱, 앤젤트럼핏 등 꽃의 이름닮은 색색의 꽃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그 화초들 사이사이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양동이에서도 물이 쪼르르 흘러내린다. 그뿐인가. 분명 손으로 만들었을 게 틀림없어 보이는 풍차는 또 어떠며, 군데군데 놓인 ‘핸드 메이드’ 새장의 앙증맞음은 또 어쩌란 말인가.
2,000스퀘어피트 남짓한 정원 곳곳을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그 소소한 디테일들과 섬세함에 방문객은 쉽게 눈길을 뗄 수 없을 만큼 가슴 설레어온다. 거기다 정원밖으로 설치된 미니 스피커에선 발라드까지 흘러나오고 있어 잘 꾸며진 야외카페에 온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가든그로브에서 초이스 계산기를 운영하는 최씨 부부는 올해로 이민온지 22년이 훌쩍 넘어섰고 이 집으로 이사온지는 15년 가량됐다. 최씨 부부에겐 결혼후 두번째 집이었다.
이사와서도 10년쯤은 그냥 이 뒷마당은 방치돼 있었다. 그러다가 5년전 부인 순희씨가 당뇨병을 얻으면서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을 찾다가 시작한 것이 이 정원 가꾸기. 처음엔 그냥 소일거리 삼아 시작한 것이 이제는 어느새 이 부부에게 일상중 가장 중요한 ‘업무’가 돼버렸다.
춘화씨는 “세 딸들은 물론 우리 부부에게도 정서적으로 좋을 것 같아 소박하게 시작했다”며 “이제는 저녁식사 후 부부가 1~2시간을 이 정원손질로 보낼만큼 푹 빠져 버렸다”고 털어놓는다.
덕분에 이제 이 정원은 최씨 부부에겐 그냥 가족이 돼 버렸다.
우연한 어느 아침, 선인장에 희귀한 꽃이라도 핀 걸 보는 날이면 세 딸들은 아침잠을 설쳐야 한다. 부부가 딸들 방을 돌아다니며 ‘꽃 구경하라’며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딸들이 정원을 상대로 질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원에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어른 키높이 만한 풍차. 풍차 앞으론 햇볕을 즐기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가든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주말에 부부가 이 정원에서 교회 모임이라도 할라치면 적어도 이틀전엔 반드시 딸들에게 일일히 물어봐야 할만큼 예약손님이 시간대별로 밀려 있다.
순희씨는 “주말엔 아이들이 정원 자랑도 할겸 친구들을 몰고 와 점심에 저녁까지 먹고, 차도 마시며 이곳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다”며 “덕분에 아이들이 밖으로 돌지 않고 착하게 잘 자라줬다”고 귀띔한다.
그렇게 오랜동안 손님접대의 역사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정원 한가운데 자리잡은 테이블엔 커피믹스 여러 봉과 사탕, 초콜릿 등이 가지런히 담겨져 있었다.
춘화씨는 “이제 친구 부부들은 물론이고 교회식구들도 정원을 너무 좋아해 웬만한 2차는 다 이곳에서 이뤄진다”며 “사람들하고 예쁜 정원에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하는 일이 가장 큰 낙”이라고 말한다.
물론 주말에만 이 아름다운 정원에 식탁이 차려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저녁도 매일밤 정원에 차려진다. 저녁이 되면 정원이 또다른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이 최씨 부부의 설명.
순희씨는 “정원 곳곳에 백열등과 캔들을 걸어 놨다”며 “어스름한 저녁무렵 이곳에 불을 밝히며 먹는 저녁밥은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환상”이라고 자랑한다.
‘졸졸, 도르르’ 물 흘러가는 소리에, 은은히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좋은 음악 들으며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매일밤 식사를 할 수 있다니… 이들 부부의 5년간의 땀의 댓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심은대로 거두고 누리는’ 이 즐거움에 푹 빠져 주말이면 춘화씨의 손과 몸은 톱밥 천지다.
썰고, 자르고, 붙이고 주말내내 그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정원에 있는 새장이며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다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고 하니 이제 그는 반 목수가 다 됐다.
춘화씨는 “처음엔 전기톱 소음으로 이웃들의 항의가 대단했다”며 “그러나 그 이웃들을 정원으로 초대해 한국음식도 대접하고 했더니 이제는 오히려 정원가꾸기를 격려해주는 입장”이라며 웃는다.
정원가꾸기에 푹 빠진 이들 부부는 요즘 이보다 더 큰 정원 가꾸기 꿈에 부풀어 있다.
마운틴 하이 인근 필란(Philan)에 2.5에이커짜리 집 한채를 장만했기 때문이다. 근처에 번듯한 새집도 많았지만 이들 부부가 오래된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마당 곳곳에 솟아있는 아름드리 나무에 첫눈에 반해서다.
춘화씨는 “잡초가 무성해 앞으로 거기를 정원꼴로 만들려면 시간꽤나 투자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아름드리 나무를 중심으로 이것저것 가꿔놓으면 멋진 정원이 탄생할 것 같지 않느냐”며 볼엔 홍조까지 띄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아마도 이들 부부가 2.5에이커 가득 가꿔갈 정원은 단순한 화초나 식물이 아닌, 행복이란 이름의 또다른 생의 터전이 아닐까.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최춘화·순희씨가 제안하는 초보자들을 위한 정원가꾸기>
5년전 정원 가꾸기에 돌입하기전 이들 부부는 식물이며 화초에 관해 문외한이었음은 물론, 춘화씨는 집안에 못 하나 제대로 박지 못해 늘 아내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는 처지였다. 그러던 그들이 5년새 정원 가꾸기 하나로 오렌지카운티 일대에 소문이 나 알음알음 조언을 받고자 찾아오는 추종자(?)들까지 생겼을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들 부부가 들려주는 ‘왕초보 정원가꾸기’ 노하우를 알아봤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정원가꾸기에 왕도는 없다고 설명하는 이들은 ‘무조건 많이 키워보고 많이 실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식물마다 물을 주는 횟수며 시기 등이 틀린데 이는 자꾸 해봐야 요령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이런 실패가 두렵다면 처음엔 야생화를 길러보는 것도 방법. 야생화는 생명력도 질기고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 초보자들에겐 기르는 즐거움을 알게해줘 추천할 만 하다.
◇묻고 또 물어라=두사람은 아직도 ‘누구네 정원이 참 좋더라’라는 말만 들으면 그 길로 거리 불문하고 한달음에 달려간다. 양해를 구해 정원도 구경하고 필요하면 맘에 드는 디자인은 사진도 찍어와 시도해본다. 그리고 가끔 인근에서 열리는 일반 가정집의 백야드 쇼(Backyard Show)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안목을 기른다고.
◇잡지와 컨벤션을 활용하라=정원 인테리어는 대부분 아내 순희씨의 작품인데 순희씨는 아이디어를 대부분 잡지에서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진을 오려주거나 아이디어를 설명하면 약간의 변형을 거쳐 아름다운 새장과 펜스, 인형 등이 탄생한다. 그리고 가든 쇼에서는 정원 인테리어 소품도 저렴하게 판매해 쇼에가면 유용한 정보와 샤핑까지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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