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전인 28일 아침 출근을 하는데 프리웨이 왼편으로 멀리 하늘에 회색 연기가 뭉게뭉게 띠를 이루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샌타애나 바람이 불더니 산불 시즌이 시작되려나?”- ‘산불’은 그렇게 무덤덤 하게 내게 다가왔다.
건조하고 산이 많은 남가주에서 산불은 연례 행사이다. 특히 2년 전 10월말에는 남가주 5개 카운티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산불이 일어나 70여만 에이커를 휩쓸며 가옥 3,000 여채를 태우고 2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몇 길 높이로 다가드는 불의 기세는 TV로 봐도 섬뜩하고, 삶의 터전을 잃고 허탈해하는 이재민들의 모습은 남의 일 같지 않게 안타까웠다.
하지만 TV 화면으로 접하는 산불은 결국 ‘남의 일’이었다. 불길이 잡히고 뉴스로 더 이상 보도되지 않는 순간 잊혀지면서, 내 관심의 연례행사로 산불은 지나갔다. 산불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29일 오후, 이웃 동네에 사는 친구가 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연기가 온통 하늘을 뒤덮어서 세상이 컴컴하다. 불이 칼라바사스로 번졌다던데 집에 가봐야 되지 않겠느냐”며 걱정을 했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 TV를 켜보니 산불은 바로 우리 동네에서 나고 있었다. 오후 5시40분쯤 서둘러 퇴근을 하는데, LA의 하늘은 너무 맑아서 30마일 저편의 산불이 실감나지 않았다. 집 동네에 가까이 갈수록 맑았던 하늘은 짙은 연기로 뒤덮여 순식간에 어둠이 밀려온 듯 했다.
101번 프리웨이의 라스 버지네스 북쪽 출구로 내려 한 블록을 올라가니 도로는 이미 차단되어 있었다.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걸어 가는데 “이게 바로 전쟁터로구나” 싶었다.
왕복 4차선 길 바로 맞은 편 산 능선을 따라 불길이 넘실대고 그 너머로는 두터운 연기의 굴뚝들이 여기저기서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소방차들은 웽웽거리며 들락거리고, 바로 머리 위에서는 소방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자줏빛 방화액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 사이를 헬리콥터와 경찰차들이 어수선하게 돌아다니고 도로변을 메운 수많은 사람들 위로는 매케한 연기 냄새와 비듬 같은 재가 눈 내리듯 흩날리고 있었다.
이웃 사람들은 저마다 셀폰으로 통화를 하고, 카메라로 불 사진을 찍으면서도 연신 짐을 챙겨 대피준비를 했다. 옆집 낸시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간다며 “꼭 필요한 것들을 챙겨 어서 대피하라”고 충고했다.
“꼭 필요한 게 뭘까”- 집안을 둘러보니 막상 ‘꼭 필요하다’며 챙길 것은 별로 없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집·자동차 서류, 여권, 아이들 출생 증명서, 페이먼트 청구서 등 문서들, 몇 안되는 보석류를 챙겼다.
그리고 옷장에 가보니 줄줄이 걸린 옷들이 평소 모두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구겨지지 않는 옷 두벌 넣고 구두와 핸드백도 하나씩 트렁크에 넣었다. 화장품을 챙기고, 손에 익은 헤어드라이어를 넣고 나니 ‘필요한 것’은 모두 챙긴 셈이었다.
이제 뭘 더 가져가야 할까. 잃어버리면 다시 장만할 수 없는 것 - 우리 가족 비디오 테이프와 앨범, 벽에 걸린 사진들이었다. 그걸 다 챙기자니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같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차가 멀리 있어 나르기도 힘들어 그만 두었다. 몇 블록 걸어가 짐을 차에 싣고 나자 셰리프가 확성기 소리를 왕왕 거리며 모두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이웃 동네의 친지댁으로 가니 그분들은 반갑게 ‘이재민’을 맞아주었다. 화재보도를 지켜보다 옅은 잠을 자고 다시 TV를 켜니 주민에 한해 동네로 들어갈 수가 있다고 했다. 이른 아침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며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 산은 그대로 있을까. 집들은 그대로 있을까. 길모퉁이를 돌자 산의 끝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불은 없고 산만 있었다.
집안은 연기냄새가 가득하고, 2층 베란다 바로 건너편의 산은 절반 이상이 불타있었다. 그 산너머에서, 아직도 소방대원들이 일하고 있는지, 맑은 외침소리들이 들렸다. 그 낯모르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가족이 평상시에 입던 옷, 자던 침대, 책장의 책들, 벽의 사진들, 그 모두를 담은 추억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몰랐던 내 집, 내 목욕탕에서 오늘 아침 샤워를 하니 이런 호사가 없었다. 가진 게 없다고, 누리지 못한다고 평소 왜 그렇게 불평을 했을까.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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