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언니한테 전화를 했다가 부재중인 언니대신 조카하고 통화를 하게 됐었다. 재수해서 올해 대학생이 된 조카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느닷없이 “ 이모, 인생이 마음대로 참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
늘상 서울에 다니러 갈 때면 그 녀석 몫으로 앰앤앰 초컬릿을 사다 날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라, 벌써 이 녀석이 인생을 찾네.’ 우습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전공도 마음에 안 들고, 장래도 걱정되고, 또 군대는 언제 갈까 등등 나름대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사실 재수를 안 했다면 대학교 2학년이 됐을테니, 인생에 대해서 고민할 나이도 되긴 됐겠구나 싶으면서도, ‘아! 어느새 이렇게나 컸네.’하는 생각이 앞서드는 바람에 그 아이 고민을 진지하게 같이 나누지를 못했다. “학교 잘 다니구, 착한 아이 만나거들랑 예쁜 연애도 하고…” 그냥 보통 어른이 해줄 수 있는 그런 얘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말이 쉽지, 하고싶지 않은 공부를 잘하라고 하고, 예쁜 연애를 하라니,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것인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다니, 연애가 어떻게 예쁠수만 있을까... 저는 절실해서 말했을텐데 너무 건성으로 답해준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나이에 온통 난리 굿을 다 치르지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부모님 속을 있는 대로 다 뒤집어놓고 걱정은 또 얼마나 시켰는지,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지만 그땐 정말 내가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10가지도 넘었었다. 오죽했으면 대학을 졸업하던 날 “무사히 졸업해서 참 다행이야”라고 언니가 말했을까.
2학년말, 학기말시험을 치르러 학교에 가다가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와 버렸었다. 전철 안에서 그날 치를 언어학 개론책을 보고 있었는데, 등뒤 누군가가 나를 더듬는 것을 느꼈었다. 처음엔 사람이 많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점점 그게 아님을 알았다.
애써 피해가며 책을 보는데 마침 모음을 소리낼 때, 우리 혀의 모양이 어떻게 되는 지라는 부분을 읽고 있었다. 그때 내 뒷목에 혀끝이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결한 느낌과 끈적거리는 숨결 앞에 속수무책으로 놓여진 나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화장실을 찾아 손수건에 물을 묻혀 뒷목을 닦고 또 닦았다. 불결하고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 타박타박 걸어서 반대쪽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책을 펼쳐들고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더는 들지 않았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나는 학교에 안 갔고 물론 학기말고사는 죄다 빵꾸(?)가 났다.
81년 입학생이라 졸업정원제가 칼같이 지켜지던 시절, 나는 자동탈락 일순위였다. 과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고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늦둥이 막내딸 어떡하든 대학 졸업시켜서 교사를 만들려고 했던 아버지의 꿈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엄마는 성이 나셔서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소설가가 될테니 걱정 말라고, 소설가는 대학졸업장 필요 없다고 큰소리쳤다가 엄마한테 등판만 호되게 맞고, 아버지는 상심하셔서 식사를 못 드셨다.
타당한 이유가 없어서 재시험 자격이 없었다. 대학 2학년까지는 마친 셈이니까 나는 그만 다녀도 별로 문제될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부모님이 너무 많이 속상해하셨다.
지도교수님의 필사적인 노력에 힘입어, 어찌어찌 재시험을 보고 졸업을 할 때까지, 우리 가족들은 내가 또 엉뚱한 짓을 하지는 않을까, 늘 가슴 졸여하던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누구나 다 청춘의 시기엔 아직 마음이 여물지 못해 큰일 아닌 것에 마음을 뺏기고 상처입고, 그래서 실수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이치겠지만, 난 특히나 부모님 걱정을 많이 시킨 자식이었다.
이번 가을에 내 주변에는 대학으로 떠나는 아이들이 여러명 된다. 몸은 더 할 나위 없이 어른 같은데, 정신은 아직 덜 성숙해서 그 아이들은 몸으로 또 마음으로 부딪치며 이겨나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을 터이다. 어른이 되어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그때에는 왜 그리도 힘겹고 고통스러웠는지, 어쩌면 순수했기 때문에 모든 것에 치열하게 부딪친 것은 아니었는지… 살아보니 그 모든 것이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지 싶다.
이제 학기가 벌써 시작됐고, 아이들을 학교에 넣어놓고 돌아온 부모들은, 우리 부모님들이 겪은 마음고생을 어쩌면 고스란히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치만 크게 걱정 안 해도 되는 것이, 사실 우리도 다 그렇게 어줍잖은 청춘기를 보내고 어른이 되지 않았는가. 스무살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눈이 부시다. 지들이야 고민이 많든 어쩌든, 젊다는 것이 그렇게나 빛난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이영화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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