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승욱이 수술이 결정되기 일주일전에 학교에서 편지가 한통 왔다. 보낸 사람은 Beth 선생님이었다. 곧 학교를 떠나신다는 편지를 읽는데 도저히 믿기질 않는다. 어쩌면 이렇게 갑자기 선전포고를 할 수 있을까… 전혀 생각지 못한 일에 대한 배신감(?) 같은 것이 마음에서 마구 일었다.
남편을 따라 오클라호마로 가야하는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는 것은 확정된 일이니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Beth 선생님의 전화가 있은 다음날 학교를 가기로 했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그마한 선물을 하나 장만했다. 한국전통 신랑각시를 수공으로 만든 인형을 예쁘게 포장해서 준비했다. 그리고 카드를 한 장 쓰는데 너무 눈물이 나서 몇 줄 쓰는데 30분도 넘게 끙끙거렸다.
다음날 오후에 학교로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다.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함께 기뻐서 울고, 감동 받아 울고, 또 슬퍼서 울고… 함께 운 시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하다. 만나면 뭐라고 말을 할까.
그녀의 방을 예의바르게 똑똑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고 한다. 문을 열고 방을 들여다보니 Beth선생님 특유의 환한 미소가 나를 반긴다.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고 했다. 난 뭐라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만 울음이 먼저 터져 버렸다. 앙~~엉‥엉‥엉‥ 이렇게 소리내어 울어본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마치 친엄마가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을 때 아이가 싫다고 땡깡부리며 울듯 그녀를 붙잡고 울었다. 그녀 역시 운다.
콧물, 눈물, 범벅이 되어 둘이가 끌어안고 있다. 난 억지를 부리며 가면 안 된다고 지금 우리에겐 Beth선생님이 너무 필요하다구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그녀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잘 안다고 했다. 자신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인지 잘 안다고 했다.
Beth선생님 자신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녀가 앉은 의자 앞 땅바닥에 주저앉아 난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 왜 그리 멀리 가냐고… 꼭 가야하냐고… 앞으로 승욱이 수술하고 들으면 누가 말을 가르쳐 주냐고(Beth선생님은 승욱이의 Speech 선생님이었다), 승욱이가 얼마나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앞으로 누구랑 UCLA병원을 가냐고… 승욱이 말하는 것 듣고 싶지 않냐고… 이 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가 있는 줄 아냐고… 세상 어디에도 이만한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은 없을꺼라고…
선생님이 너무 많이 운다. 선생님은 세상 어디를 가도 자신이 승욱이의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승욱이의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난 머리를 깊이 숙여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의 인사, 고마움의 인사, 사랑의 인사, 못 잊음의 인사, 존경의 인사, 스승에 대한 진정한 마음의 인사…
이젠 영영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방을 나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잠시 앉아보라고 했다. 그리곤 내가 앉을 의자를 자신의 앞으로 바싹 당겨주었다.
“민아! 내가 너를 안지가 벌써 3년이 훨씬 넘었구나. 넌 언제나 좋은 엄마였어. 그 좋은 엄마의 자리가 때론 너에게 힘이 들 때가 있지. 그건 내가 보기에 너가 언제나 ‘YES’라고 말하기 때문이란다. 미국사람인 나도 언제나 ‘YES’라고 말하진 못해. 정말 너가 할 수 없는 일, 못 하는 일, 도움이 필요한 일에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못하면 못하겠다고 ‘NO’라고 말할 줄 알아야한다. 알았지? 언제나 ‘YES’라고 말하는 널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앞으론 ‘NO’말해. 알았지? 그래야 너도 편하고 주변 사람들도 편하단다”
난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다 안다. 앞으로 승욱이를 키우면서 힘들 것을 아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난 할 수 있는 일이건, 없는 일이건 언제나 ‘YES’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버리고 무진장 고민하고…
승욱이를 찾아서 학교를 걸어나오는데 멀리서 Beth선생님이 우리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왠지 쳐다보면, 아니 아는 체를 하면 못 헤어지고 또 눈물 뚝뚝 흘릴 것 같아서 과감하고도 씩씩하게 차를 타고 학교를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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