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온도는 며칠 동안 계속 100도를 넘고있다. 아침에 말끔히 목욕을 시켰건만 구월이의 몸에서는 개 비린내가 심하게 난다. 뒷좌석에 얌전히 앉아 있으면 좋으련만 일어섰다, 빙빙 돌았다, 끙끙 댔다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월이는 여섯 살 짜리 진돗개의 이름이다. 미스 진도견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흠잡을 곳없는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다. 큰아들이 기르던 놈인데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다. 15번 도로를 북쪽으로 가다가 138번에서 서쪽으로 빠져나간 곳에 문우가 살고있다. 뜰은 넓은데 개가 없어 허전하다기에 구월이를 개가시키기에 마땅한 집이라는 판단이 들어 구월이를 데리고 가는 길이다. 사실 구월이는 피신을 가고있다는 것이 옳은 말일게다.
아들네 집은 전형적인 주택단지에 있다. 어느날 이웃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새벽이면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못 자니 조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개란 원래 짖는 짐승이고 어느 곳에도 불평하는 사람은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실상 짜증이 나기는 아들내외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구월이의 울부짖음이 격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월이가 왜 그런지 궁금해질 때 건너건너 집 강아지가 잡아 먹혔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아들은 야구 방망이를 준비해놓고 망을 보기 시작했다. 새벽에 창을 내다보고 있으면 무슨 물체가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도 같고 쥐나 고양이를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잠깐 방심하면 어느 사이 개는 폭풍처럼 짖어댔고 무엇과 싸웠는지 쫑긋한 귓밥이 조금씩 뜯겨나가고 있었다. 미지의 대상과 격렬히 싸웠다는 증거인 것이다.
화가 난 아들이 구월이를 차고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 눈에 안 뜨이면 그 미지의 대상도 안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그날 새벽엔 더욱 큰 소동이 일어났단다.
침략자가 나타나자 강한 격투심이 발동한 구월이가 문을 발로 긁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짖어댔다. 차를 건드려서 알람까지 울어대니 그 소리에 놀란 구월이는 더 기승을 부렸다. 곧바로 집안과 후원에 불을 밝히니 아직도 도망을 못간 카요티 두마리가 이빨을 세우고 공략의 자세로 있더란다.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소리를 치니 담을 넘어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그러기를 몇달 계속하니 구월이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야위어가고 물렸던 귀는 헐어서 진물이 났다. 끈질긴 카요티들은 포기하지 않고 새벽마다 찾아와 구월이의 기운을 뺐어갔다.
식구들은 불쌍한 구월이를 안전하게 피신시킬 장소를 물색했다. 기가 빠지고 넋이 나간 구월이가 편안히 지낼 수 있는 좋은 주인을 찾기에 고심하였다.
언젠가 한번 방문했던 문우의 집은 가까스로 기억을 더듬어서야 찾아낼 수가 있었다.
우리를 태우고 온 차가 마당으로 들어가고 목에 쇠줄을 단 구월이가 차에서 내렸다. 그늘이 큰 나무 밑에 앉혀놓고 물부터 한 그릇 주었다. 70마일이 넘는 거리를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왔기에 목이 말라 있을 게다.
차 속에서 계속 질러대던 쇠 소리 같은 마른 비명도 더 이상 내지 않는다. 불안할 때 지르는 구월이의 증상이라고 아들이 귀뜸을 해준다. 에어컨이 시원한 집안에서 주인 부부가 대접하는 차가운 음료수로 땀을 날리고 미스 진도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잠시 후 밖으로 나와 어떻게 떼어놓고 갈지를 고민을 했다. 그놈이 들을까 작은 소리로 합의한 것은 “슬그머니 돌아서 가자”였다. 목소리는 가늘게 흔들리고 눈에는 물기가 어려있는 아들이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함께 살아온 세월에 무게를 잴수 없는 정이 눈꺼풀에 매달릴게다.
눈치를 챈 문우가 한마디한다. “잘 데리고 있을게요. 언제든지 보고싶으면 와서보고 도로 데려 가고 싶을 땐 데려가도 좋아요”
구월이와의 마지막 인사도 생략한 채 우리는 차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내가 위로한답시고 불쑥 한 말은 “그 옆집에 수놈 개가 세 마리나 있대. 구월이는 잘 온거야” 였다.
하루 빨리 그 넓은 뜰을 마음껏 뛰놀며 잃어버린 패기와 기운도 회복하고 미스 진도의 우렁찬 목소리도 찾기를 바란다. 옆집 친구들과도 잘 사귀면서 개가한 구월이의 새로운 삶이 성공적이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홍민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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