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 Check
이화진(리틀넥)
매주 목요일자 일간신문은 더 많이 구독되어지고 있을 듯한 생각이 든다. 이 날은 내가 구독하는 신문 외에 또 한 가지를 사서 보곤 하니까 말이다. 그 이유는 한국 수퍼마켓의 세일 품목이 목요일에 일제히 광고되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오후 4시경이었다. 역시 나와 비슷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조선오이 세일이 시작되었으니 사러 가자는 내용이었다. 세 사람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H마켓으로 달려갔다.혹자는 오이를 사는데 무슨 기대에 부풀기까지 하겠느냐 웃겠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커비)미국오이와 달리 조선오이의 값은 세배 이상 다섯배도 넘기 때문에 편히 사서 소백이를 담굴 수가 없다. 한동안 작은 키에 예쁘게 생긴 일본오이가 샐러드용으로 인기가 있었다. 요즘은 키가 크면서도 날렵하고 잘 생긴 조선오이가 여름 식탁에 한 몫을 잘 한다.아작아작 씹히는 맛과 입안의 상쾌한 촉감은 피곤을 잊게 한다. 우리의 종자가 이렇게 우수한 농산물로 버섯류나 후지사과처럼 미국시장에도 족히 도전되리라 기대하며 좋아한다. 이날도 세 여자들이 이런 칭찬을 늘어지게 하면서 20분을 달려갔었다.
그런데 세일품목으로 진열된 것은 노랗게 말라버린 오이가 몇개 남아 있었다. 광고를 보고 오이를 사러왔다고 했더니 “저거예요”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한다. 버리기 아까운 것 세일해서 치우는게 장사 아니냐는 캐셔의 태도다. 그녀의 소관이 아니라 생각되어 야채부 매니저를 만났다. 똑같은 이야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내가 태도를 바꿨다. 이것이 정말 신문에 광고된 물건입니까? 이번에는 그의 태도가 달라진다. 세일품목을 실은 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싫으면 내일 와서 사란다. 그래서 레인첵을 달라고 했다.
레인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자격이 없어서 못 준단다. 그러면 누가 줄 수 있느냐 했더니 본사에 말하란다. 궁여지책으로 본사 책임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똑같은 이야기다. 레인첵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단다.
정말 본사에서도 모를까? 이 정도의 운영진이란 말인가? H마켓은 맘 앤 파파(Mom & Papa)상점이 아니다. 우리 한인사회의 식품을 담당하는 크고도 중요한 회사다. 뿐만 아니라 모든 한인이 즐겨 찾는 자랑스러운 샤핑 장소이다. 이렇게 심한 경쟁 속에서 이 정도의 간부급으로 훌륭한 경영이 가능할까 심히 염려된다.
레인첵이란 나처럼 광고를 보고 수퍼마켓에 찾아온 고객이 있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와서 물건이 제 때에 도착하지 못했다. H마켓도 비슷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이 수퍼마켓 책임자는 찾아온 모든 고객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약속의 싸인을 해주었다. 고객의 기대와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지혜로운 책임자로 인해 수퍼마켓이 크게 번창했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미국의 모든 소매업체는 광고 아이템이 품질, 혹은 미달될 경우 반드시 레인첵을 주는 것이 상법화 되어 있다. 물론 내가 오이를 좋아하고 한국 수퍼마켓에서만 살 수 있으니 반드시 다시 가서 사게 되어있
다. 비단 오이뿐 아니라 해도 매주 한번 혹은 그 이상은 들러야 필요를 채운다. 그래서 일반적인 상도를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피차에 의무와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후에 야채부 매니저의 설명에 의하면 오전에 한 박스의 오이가 남아 있었는데 한 사람이 다 가져갔기 때문이라며 미안해 했다. 김치 없이 살 수 없는 우리는 흔히 배추, 무우를 박스로 들여간다. 그러니까 오이를 박스채 가져갔다 해서 불평할 명분이 없다.그런데 유럽을 여행하면서 경험한 사례다. 유명상품을 싹쓸이 해가며 기분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을 본다. 반면 매상과 상관 없이 푸대접을 받는 것 또한 한국사람이다. 이유는 다른 고객을 전혀 생각지 않는 나쁜 매너라고 팔기를 싫어하고 뒤에서 욕을 한다. 그런 우리가 세일품목을 대할 때야 얼마나 극성이겠는가?
상도란 상인뿐 아니라 고객도 함께 지켜야 할 예의며 좋은 제도이다.
이러한 일은 전에도 종종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제쯤 이 땅의 제도와 문화에 안착할 수 있을까 하는데 관점을 갖고자 한다.조국을 떠나 이곳에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이 땅을 사랑하고 아낀다. 이제는 우리들의 후손들이 좋은 시민으로 이 땅의 주역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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