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심방을 가거나 웬만한 교회 모임에 갈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부모를 쫓아다니는데 이력이 난 아이들은, 떠나기 전에 아예 준비를 한다. 그림 그릴 종이와 펜, 읽을만한 책, 장난감… 등을 나름대로 싸 가지고 다닌다. 때론, 그 집에 가면 몇 살짜리 아이들이 있는지 미리 묻기도 한다. 또래의 아이들이 있게 되면 별로 준비할 것이 없지만, 아이들이 없는 집에 가는 것을 알게 되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자동차 뒷좌석에 쓰러져 잠든 아이들을 업어 내려야 한다. 종종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따라 가지 않고 집에 남아 있을 방도가 없을까 싶어 꾀를 낼 때도 있다. 그러나, 별 도리 없이 우리를 따라 나선다.
한번은 아이들과 차를 타고 가는데, 이제 여덟 살인 작은 아들녀석이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장난감을 가지고 손을 분주히 놀리면서 무의식적으로 콧노래를 부르는데, 우리에게 너무나 낯익은 가락이었다.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아내와 나는 마주 쳐다보았다. “아니?”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놀라 토끼 눈을 뜨고 서로 마주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노래는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라는 찬송가였다. 주로, 나이 드신 성도들을 방문할 때, 많이 부르는 곡 중에 하나였다. 선교사 발음으로 떠듬떠듬 한국학교 교과서를 겨우 읽는 아이가, 완전히 할머니 조로, 오랜 찬송가락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흥얼거리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아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웃느라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얼마 전, 교인의 가정을 방문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불렀던 찬송이었다.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둘러앉기는 했지만, 언제나처럼, 우리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하는지,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예배를 드리고는, 늘 그렇듯이 여러 대화를 나누고는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왔다. 그날도 아이는 뒷좌석에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날의 그 찬송을 혼자서 콧노래로 부른 것이었다. 우리가 가락을 알아들을 만큼 정확하게.
작은아이는 원래 뭘 하라고 하면, 하는 것 같지 않게 하는 아이다. 밥을 먹을 때도 밥을 먹고 있는 것인지, 밥을 가지고 장난을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엄마에게 혼나게 되는 단골 메뉴 1번이다. 그럼에도 제 밥그릇은 꼭 비운다. 숙제를 할 때도 글을 쓰는지 그림을 그리는지 모르겠는데도,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는 주의를 받지 않는 것을 보면, 하긴 다 한 것임에 틀림없다.
아내는 어려서, 부모님이 햄버거 가게를 하셨다. 브라질에서 1년여 동안 이민생활의 눈을 뜬 후, 미국으로 오셨다. 영주권도 없이 시작한 이민생활에, 히스패닉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작은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면서, 권총강도도 당해 보고, 온갖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토요일이면 가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는 장모님이 한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데리고 갈만한 한국학교가 주위에 마땅치 않아서, 하는 수 없이 가게 한 모퉁이 식탁에 앉아서는, 가나다라를 배우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한국말 찬송가도 배웠다. 고달픈 이민생활의 눈물 맺힌 엄마의 찬송을 뜻이 무언지도 모르고 아이들은 따라 불렀다. 지금껏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은 “주안에 있는 나에게“라는 찬송이다. 실은, 아내에게는 그때 배운 한국말 실력이 전부다.
이후로, 장인은 목사가 되어 목회를 시작하셨고, 처제들과 처남은 교회에서 시작된 한국학교를 줄곧 다녔다. 그래서인지 맏인 아내보다, 동생들의 한국말 쓰기와 읽기 실력이 훨씬 좋았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학교에서 배운 실력으로는 모자라지만, 엄마와 가슴으로 통하는 대화는 동생들보다 더 나은 것을 본다.
엄마 아빠가 부르는 노래는 아이의 가슴에 흘러든다. 아이도 모르게. 엄마도 모르게. 그리고는 어느 날 난데없이, 그 노래가 아이의 삶에서 다시 새어 나온다. 엄마 아빠가 불러 준 그대로. 아내와 나는 마주 보고 한참을 웃다가, 한 순간 웃음을 멈추고는 둘 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할 수 없이 따라 나선 길에 스쳐 들은 찬송가락이 아이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우리가 부르는 인생의 레퍼토리를 심각히 되짚어 보느라고.
김동현 <뉴-비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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