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디지털 세대 두 남녀
각종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 디지털 문화에 더 없이 친숙한 이들을 우리는 ‘디지털 세대’라 부른다. 클릭 한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스피드’에 민감한 세대이고, ‘버튼’ 누르기에 친숙한 세대다. 이들의 대화 수단은 손에 쥐고 있는 셀폰, 이메일, 그리고 인스턴트 메신저로, 전화보다는 이메일, 셀폰보다는 인스턴트 메신저나 텍스트 메시지로 연락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 무엇보다 이들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형 인간이어서 모니터에는 윈도가 최소한 5∼10개 열려 있다. 수시로 메신저 윈도가 열리면서 대화를 청하고, 한 구석엔 동영상이 떠있으며, 음악은 혼자서 흘러나온다. 인터넷 정보의 바다를 능숙하게 헤엄치기 때문에 두뇌구조도 아날로그 세대와 달라, 전략적으로 주의를 분산해 집중 처리하는데 익숙하다. 아날로그 세대인 부모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들의 디지털 라이프는 도대체 어디까지 도달해 있을까. 초고속 디지털 세대의 두 남녀, 라나 김씨와 제이슨 박씨를 만나봤다.
뮤직비디오 프로덕션 팀장 라나 김씨
뮤직비디오 팀장 라나 김(26)씨와의 인터뷰는 그녀의 친구 오세리씨의 인스턴트 메시지로 이루어졌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오씨가 셀폰 통화를 잠깐 대기시키는 사이 컴퓨터 화면에 조그만 창을 띄워 인스턴트 메시지를 보냈고, 몇 초만에 김씨의 ‘OK’ 응답 메시지가 날아왔다.
약속 장소는 할리웃에 있는 김씨의 회사 근처 카페.
김씨가 일하는 프로덕션은 영화계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영화 ‘대부’의 감독)의 아들인 로만 코폴라의 뮤직비디오 및 광고 제작사 ‘디렉터스 뷰로’(The Directors Bureau)로, 여동생인 소피아 코폴라를 비롯해 유명 감독들이 소속돼 있다.
프로덕션 미팅이 끝나자마자 김씨는 애플 랩탑을 넣은 컴퓨터가방을 어깨에 메고, 손에는 자그마한 토트백을 들고 부리나케 나타났다.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는 아이맥(iMac G4) 랩탑을 테이블에 꺼내놓고, 토트백을 여니 셀폰, 개인 휴대단말기(PDA), 아이팟(iPod),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지갑과 화장품 케이스가 오밀조밀, 그러나 질서정연하게 들어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취재수첩에 볼펜으로 열심히 적어대는 기자의 모습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밌다는 듯 쳐다보았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인터뷰에서 취재수첩은 여러모로 필요한 도구라고 해명(?)했지만, 그녀에게 볼펜 필기는 아날로그 세대의 유물이었던 것.
<5면에 라나 김씨로 계속>
제일 먼저 그녀가 보여준 셀폰은 모토로라 V710 모델. 지난해 스탠더드 호텔에서 열렸던 디지털카메라 사진전 ‘아메리카스 퍼스트 폰캠 아트쇼’를 구경갔다가 참가한 감독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비디오카메라와 MP3플레이어가 내장돼있고, 블루투스(Bluetooth Wireless Technology·근거리 무선 데이터 송수신 기술) 기능이 있어 고속 인터넷접속이 가능하고, 텍스트, 사진, 동영상, 사운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기능은 비디오카메라로 찍어 전송하기. 몇 달 전 뮤직비디오 촬영차 해외로케를 떠난 한 감독이 집에 홀로 남겨둔 애완견을 너무 보고싶어해서 비디오 클립을 찍어 보내줬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정신없이 바쁜 그녀의 스케줄을 알아서 정리해주는 그녀의 비서 휴대단말기(PDA).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특히 유용하게 쓰이는 펜 입력 방식의 휴대 단말기 ‘팜파일럿’(PalmPilot)은 에미넴과 비욘세의 문신 아티스트 미스터 카툰(Mr. Cartoon tatoo artist)에게 받은 선물이라서 다소 구형이지만 여전히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의 애장품인 15GB 용량의 아이팟(iPod). 음반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만큼 그녀의 MP3플레이어에는 4,937개의 노래가 녹음돼있다. 랩탑도 데스크탑도 모두 아이맥(iMac) 세상인 그녀는 아이튠즈(iTunes)를 이용해 라이브러리에 저장돼있는 MP3파일들을 그대로 아이팟으로 전송한다. 프로모션 CD가 워낙 많지만, MP3음악파일의 구입(노래 1곡 99센트)을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하는 애플의 오디오 프로그램 아이튠즈를 애용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이메일 주소는 8개. 이 중에서 회사 이메일 3개와 개인용 이메일 2개는 수시로 확인하는 주요 연락처이고, 나머지 3개는 연락하긴 싫지만 알려줘야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이메일 주소다.
인터넷 채팅 프로그램인 아이챗(iChat)과 AOL 인스턴트 메신저인 에임(AIM)은 언제나 로그인 상태. 에임은 통화중일 경우, 인스턴트 메신저가 날아와 ‘방문’을 알리거나 급한 용무를 재촉하고, 아이챗은 화상 회의(video conference)에 사용되지만, 오디오 채팅이 주를 이룬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은 이메일을 보내거나 메신저로 연락해요. 셀폰은 긴급상황이 생겼을 때나 사용하죠. 집에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층의 방에 있는 남동생도 소리를 지르는 대신 인스턴트 메시지를 보내거든요. 우리 세대는 전화보다는 인스턴트 메신저로 연락하는 게 빨라요”
아시안 전문인협회 부회장 제이슨 스캇 박씨
제이슨 스캇 박(26)씨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생활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잃지 않는 청년이다.
랜드아메리카 파이낸셜 그룹의 자회사이자 아버지의 회사인 ‘게이트웨이 타이틀 컴퍼니’(Gateway Title Company)에서 어시스턴트 매니저라는 직함을 갖고 재정전문가로 일하지만, 비영리단체와 커뮤니티를 위한 자원봉사가 일상생활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아시안전문인협회(APEX)의 부회장을 맡고 있고, 매주 목요일 복음방송에서 ‘차세대와의 만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나성영락교회 커뮤니티 그랜트와 YNEM 운영위원이고, 나눔 선교회 후원회인 ‘Love Nanoom’의 운영위원이다.
두 달 전까지는 LA시 주최 아시안 퍼시픽 아메리칸 헤리티지의 달 행사 준비에 열을 올렸고, 지금은 올 가을 APEX의 기금모금 행사를 추진하느라 바쁘다.
인터넷 활동도 활발해 각지로 흩어진 친구들과 교류의 장이 되는 개인 블로그 운영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딴 웹사이트 ‘제이슨 스캇 박 닷컴’(www.jasonscottpark.com)을 통해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주요 이벤트를 홍보한다.
돈벌기도 바쁜 세상에 커뮤니티 봉사에 막대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건 순전히 디지털 세대의 특징인 “스피드가 몸에 배어있어서”라고 박씨는 밝힌다.
말하는 속도도 빠르지만 일 처리 속도는 더없이 빠르고 정확하며, 실시간 반응이 그의 강점이다.
어려서부터 인터넷에서 하이퍼링크로 연결돼있는 페이지를 그때그때 넘나들어 궁금한 사항을 실시간으로 해결하면서 자란 그이기에 신속한 반응을 추구하는 생활태도는 당연한 것.
이메일이 가장 빠른 대화 수단으로 생활화돼있는 그의 셀폰은 인공지능 스피커 시스템이 전화를 거는 상대방의 이름을 알려주기 때문에 긴급 전화가 아닌 경우 자동응답서비스로 연결된다. “도대체가 연락이 힘들다”는 불평은 아날로그 세대에게서나 나오는 반응인 셈이다.
요즘 들어 시간과 정보를 좀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싶어 ‘블랙베리’(BlackBerry·무선인터넷이 가능하고 이메일 전송이 간편한 스마트폰)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그는 컴퓨터의 즐겨 찾기와 이메일 주소록이 체계적으로 정리돼있듯이 두뇌 또한 대그룹과 소그룹 분류, 우선 순위 정하기 등 조직적 체계에 강한 편이라고 자신을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생활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디지털 포토. 행사마다 디지털 카메라로 기록을 남긴다는 그는 그날 찍은 사진은 당일 무료 인터넷 사이트(www.freefoto.com 혹은 kodakgallery.com)를 이용해 디지털 앨범을 만들어둔다. 하이퍼링크를 이메일로 보내면 순식간에 그가 찍은 사진은 공유되며, 대외홍보용 사진은 자신의 웹사이트를 장식하는 것이다.
“디지털 세대가 겉으로 보기엔 인터넷에서 혼자 놀지만 혼자 노는 게 아니에요. 온라인 네트워크에 뿌리를 두고 의사소통과 관계성을 중시하죠. 아날로그 세대들에게 디지털 문화를 강요할 순 없지만, 디지털 세상에 발을 디디면 좀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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