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원 판사의 은퇴계획 발표는 워싱턴 정가를 대통령 선거에 버금가는 엄청난 소용돌이 가운데로 몰아넣었다. 연방정부의 권력 대 주 정부의 권력, 낙태문제, 소수민족에 대한 긍정적 조치, 정부와 종교 분리문제 등 여러 가지 이슈에 있어서 그가 24년 동안 취해온 입장은 흔히 5 대 4 결정들 중 Swing vote 였다.
따라서 때로는 보수, 때로는 진보적 판결에 힘을 실어주었던 그의 역할 때문에 그 후임에 누가 되느냐가 보수 진보 양 진영의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어느 보수단체에서는 보수성향이 투철한 후임자를 임명시키도록 하는 투쟁에 1,800만 달러를 지출할 예산까지 세워놓았다는 보도다. 진보성향의 낙태권리 단체 등도 칼을 벼르고 있다.
대법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대법원에 헌법 해석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는 헌법재판소가 따로 있지 않다. 연방 헌법 자체에는 미 연방의 사법권이 대법원과 연방의회가 세우는 하급 법원들에 부여되어 있다고만 나와있지 헌법을 해석할 권리를 대법원에 부여한다고 명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 건국 초기의 여러 결정을 통해 대법원이 헌법 해석권을 관습적으로 가지게 된 것이다.
대법원과 모든 법원들이 판례의 테두리 안에서 사안을 심리하고 판결하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를 상당한 시간 경과 후에나 뒤따르는 일반적인 보수성이 있다. 1918년에 있은 햄머 대 대건하트 사건을 예로 들어볼 수 있다. 당시에는 공장이나 탄광에서 14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1주일에 엿새 동안, 때로는 하루 13시간씩 부려먹는 어린이 노동착취가 합법이었다.
연방의회의 진보세력이 어린이 노동 결과의 제품을 주들 사이의 통상에서 금지시키는 법을 통과시키자 연방 대법원은 그 법이 연방 의회의 권한을 초과한 것이라서 위헌이라고 선언한다. 제조업을 포함한 통상 활동은 연방 정부에 위임되지 않은 것이라서 지방 (주) 정부의 권한 아래 속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만약 연방 의회가 주들 사이의 통상에 있어서 상품의 유통을 금지시킴으로써 지방 정부에 맡겨진 문제들을 규제할 수 있다면 모든 상업상의 자유는 끝나버릴 것이고 지방 문제에 대한 주 정부의 권한이 제거될 지도 모르며 따라서 미국 (연방 및 주 정부들로 구성된) 정부제도가 거의 파괴될 것이다”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1929년의 경제 대공황은 미국의 경제활동이나 노동자들 문제에 있어서 전국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1932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부터 경제회생을 위한 뉴딜 법들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인준했지만 연방 대법원은 여섯 개를 위헌이라고 사문화 해버린다.
그 중 네 개는 노동조합 가입권, 노동시간과 최저임금제도, 노인들에 대한 소셜 시큐리티와 실직보험 등에 대한 법률들로 뉴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었으니 루즈벨트와 의회 지도자들의 대법원에 대한 불신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1936년 재선된 루즈벨트는 선거 결과를 대법원의 방해로 좌절된 그와 같은 연방법들이 굶주리는 노동자 농민들의 생활환경의 개선책으로 필수불가결 하다는 자기의 뉴딜 정책을 계속 추진하라는 국민의 신임으로 간주하게 된다.
1937년 루즈벨트는 70세가 넘은 대법원 판사마다 하나씩 더 임명하여 대법원 판사를 당시로 최고 여섯 명까지 증원시키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소위 대법원 재구성 제안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여론의 반대가 심해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1937년부터 연방 대법원은 뉴딜 관계법들을 합헌이라고 판결하기 시작한다. 어떤 경우에는 불과 1년도 되기 전에 위헌이라고 판결했던 것을 합헌이라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것도 있다.
제 때에 한 바늘 꿰매면 아홉 바늘 쓸 일을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A Stitch in time saves nine). 어떤 냉소주의자는 그 표현을 변조시켜 루즈벨트가 대법원 재구성 제안을 포기한 것을 두고 제 때에 한 사람, 혹은 한번의 변화가 아홉(판사)을 구한다고 비꼰 적이 있었다(A Switch in time saves the nine).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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