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 팍
독립기념일 연휴에 우리 가족은 가까운 RV 팍에서 하룻밤 자고 왔다.
LA에서 꼭 한시간 거리에 있는 피라밋 레익 RV 리조트, 그곳을 운영하는 이재권, 성호씨 부부의 초청으로 예쁜 캐빈에서 하룻밤 호사를 하고 온 것이다.
연휴 때의 RV 팍은 모든 사이트가 풀로 차고 수백명이 몰려들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가족용 캐빈을 내주시고, 그 와중에 직접 특미 된장찌개와 갈비까지 대접해주신 두분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사, 아니 송구스러움을 느꼈던 주말이었다.
이재권씨는 한인회, 평통, 100주년기념사업회, 기독교교회협의회 등 LA한인사회에서 폭넓게 활동해온 분이고, 아내 이성호씨는 여러권의 책을 출판한 시인이자 소설가로 문단에서 널리 알려진 부부이다. 그런데 작년봄, 은퇴할 연세에 갑자기 RV 팍이라는 특이한 비즈니스를 인수했다며 이곳으로 숨어든 두 분은 지금 마치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이며 의욕적으로 일하고 계신다.
RV 리조트란 1년전만 해도 한인들에게 생소한 유원지였다. 여행용 차량(Recreational Vehicle)을 소유한 미국인들이나 쉬었다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졌던 곳인데 두 분이 인수한 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이제는 전체 사용자의 반 이상이 한인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수영장과 18홀 미니골프코스가 있고 클럽하우스와 당구대, 농구와 배구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가족이나 단체여행에 쾌적한 리조트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인들이 RV를 몰고 오거나 대여하는 것과는 달리 RV 사용에 익숙치 않은 한인들은 주로 캐빈을 빌리고 그 옆에 여러개의 텐트를 치는 방식으로 단체 여행을 즐기고 있다. 특히 교회들이 수양회나 각종 캠프를 갖기 위해 자주 찾는데, 이유는 여러 시설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비용이 웬만한 기도원이나 리조트에 가는 것보다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성호씨가 “연휴 때만 되면 나는 마귀할멈이 된다”고 개탄한다는데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많은 한인들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관계로 매번 인상 찌푸릴 일이 수도 없이 생긴다는 것이다.
30명이 온다 하면 50명이 오고, 차가 10대 온다 하면 20대 오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며, 텐트 2개를 치는 사이트에 대여섯개가 들어서는 것은 물론, 자동차 두 대만 세우는 곳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밤새 몰래 들어온 차량이 빼곡이 주차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얕은 속임수 때문이다. 사이트 당 정해진 인원수 외에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시설 사용비로 일인당 하루 10달러씩 더 내야하는데 그걸 내지 않으려는 눈속임인 것이다.
“도대체 교회마다 정확한 인원수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사이트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람수를 세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교회에서 말하는 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데 정직하게 보고하는 교회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이재권씨)
“솔직히 말해서 왜 미국사람들이 마이노리티를 싫어하는지 이제 알겠어요. 규칙은 지키지 않으면서 시설은 엉망을 만들어놓으니, 직원들한테서 ‘왜 너네나라 사람에게는 규칙을 적용하지 않느냐’는 항의도 부지기수로 받지요. 한인들이 밤새도록 술 마시고 떠드는 통에 옆 사이트에 있던 미국인들이 화가 나서 떠나버린 일도 있답니다. 한국사람들 멕시칸 무시하지만 수준이 다를 바가 전혀 없어요”(이성호씨)
그러면서도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니까 맘놓고 활개치지, 어디 가서 이렇게 실컷 놀겠나” 하고 푸근한 마음을 가져보다가도 “아니, 교회가 단체로 거짓말하고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서 무슨 신앙교육을 하겠나” 싶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너무 많다는 이씨는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무엇이든 덮어버리는 치외법권 집단”이라고 개탄해마지 않았다.
오해하지 말라. 이성호씨는 목사님 딸이며 권사이고, 이재권씨는 존경받는 장로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걸 이용해 덕만 보려하는 사람들마저 품어야하는 애로점이 오죽할까.
이러한 일들이 꼭 이곳 RV 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갔던 주말에도 세군데 교회에서 수련회를 왔는데 어찌나 시끄럽던지, 새벽부터 찬송가를 불러대 잠든 캠핑족들을 다 깨우는 것보다 정직하게 계산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한 신앙교육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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