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업(필라델피아)
우리나라 속담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신분제도가 엄하였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다. 자조적이며, 지극히 그 능력을 원초에서부터 묶어 버티는 체념적인 삶으로 유도하는 그 시대 사회의 일면을 알게 된다. 오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실행하여
보지도 못하고 단념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한편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도 있다. 도전적이며 적극적으로 자기의 운명을 허물고 나가는 용감한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러한 상반적인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어느 시대나 다 있음직한 것으로 생각이 든다.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각 대학 졸업식에서 수많은 인간 승리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졸업식에서 행해지는 저명인사들의 축사에서는 한결같이 졸업생들의 생각이 미국의 미래라는 것을 강
조하고 있다. 또한 부단히 도전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개척정신 하나로 일구어낸 이 신대륙은 시대에서 시대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토대로 한 도전의 역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미국의 3군사관학교 졸업생 중 한국인이 35명이나 된다는 보도를 보며 이들이 극복한 훈련과정에서 신체적인 문제 등을 뛰어 넘었고, 학업에 있어서도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참으로 장하고 대견하고 이들이 막강한 미국의 국방의 일선에서 활동할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가 없다.고등학교 때 나는 해군사관학교를 동경하였다. 10월 국군의 날이 있으매 서울운동장(동대문 옆)에서는 3군 사관생들의 체육대회가 있었으며 그 응원전은 대단한 인기였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밖으로 자유시간으로 나와 걷고 있는 해사 생도의 옆에 따라가며 내 어깨도 발걸음도 맞춰가면서 한참씩 걸어본 기억이 난다. 얼마나 해사를 동경했는지! 그 당시 해사 지망은 오르지 못할 나무였다.
검푸른 태평양을 내려다 보면 참으로 긴 시간 비행끝에 도착한 이 미국땅! 이렇게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놀라움과 함께 삶이 시작되었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우리는 모두 저마다 나름대로 꿈을 가슴에 안고 왔다. 어찌 보면 새로운 인생이 다시 시작이 되었다고도 여겨진다.
구구절절 각자의 스토리를 간직하고...침묵 속에서 절망했던 날들, 오월의 석양을 바라보며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아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던 그 가족들의 보고 싶었던 초저녁들..
‘이러한 일이 어디 나 뿐이겠는가’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잡아 다시 나무를 찍었던 많은 시간 속에서 이제는 오르지 못할 나무 보다는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각오로 살아오면서 인간의 능력은 생각하기에 따라 엄청난 일들을 해내는 것들을 볼 수가 있다.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면서 저마다 야망을 가지고 자기의 길을 걷고 있다. 최첨단 기술
연구실에서, 금융가에서 세계 최강군의 조직 내에서, 또한 일반 직장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천태만별의 직종에서 이 기회의 나라 미국땅에서 전심전력으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간에도 이민의 첫발을 딛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문화와 환경에 압도되어 좌절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의구심에 싸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명백한 사실은 모든 문제에는 해결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자기가 하는 일에 정통
하여야 할 것이며, 부단한 연구가 뒤따라야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든 시간은 순서대로 완다가 차례대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인간의 비극은 모든 것이 늦기 때문’이라고 세익스피어는 말했다.심오한 인간의 비극을 가장 많이 다룬 이 불멸의 작가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지나고 나서야 늦었다는 것을 뉘우치게 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도끼 한번 나무에 찍어보지 못한채 그 앞에 주저앉아 버리고 현재의 시간들을 놓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을 본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냉정한 것이다.현재를 수단이나 희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 자체가 목적인 삶으로 살 때 비로소 삶에 변화가 일어나며 열번 찍을 수 있도록 도끼를 휘두를 힘이 솟아나리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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