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리지역 공립고교 한인학생들이 매년 공동 주최하는 행사를 앞두고 회의에 열중하고 있다.
사립이냐 … 공립이냐 …
‘사립이냐 공립이냐’는 또 다른 선택사항이다. 이를 놓고 고민하는 한인 학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개별 교회의 부속학교 등을 더하면 사립학교는 생각보다 많다. 이들 소규모 사립학교 중에는 전인교육, 인성교육, 크리스천 교육 등의 교육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 적지 않아 ‘공부 수준’이나 졸업생들의 진학 대학 등을 따지면 오히려 공립학교 보다 못한 곳도 있다. 대신 이런 학교에는 공립학교 캠퍼스에서 흔히 우려되는 폭력, 마약, 10대 임신 등의 문제가 적고, 개별적인 학생 지도가 이뤄져 말 그대로 가족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 경우, 사립이냐 공립이냐는 전적으로 학부모의 교육철학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한인 학부모들이 진짜 고민하는 문제는 대입 명문교로 성가가 높은 유명 사립학교를 보내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주위의 명문 공립고교를 보내는 것이 좋은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명문 신드롬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인 학부모들의 경험과 전문가 이야기를 통해 교육이슈-사립이냐 공립이냐를 짚어본다.
머란다 최씨
주부·베벌리힐스
사립가서 우울증까지
공립전학 성격 밝아져
머란다 최씨는 일가친척 자녀 6명이 모두 LA 북서부의 유명 사립 중·고교에 재학중이거나 졸업 후 아이비플러스 대학에 재학 중이다. 그녀는 “우리 두 딸도 같은 학교에 넣어 첫 아이는 스탠포드로 갔지만 둘째는 올 가을 11학년을 앞두고 집 근처 공립고교로 전학했다”고 속상해 한다.
조용하고 공부만 파고드는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성격도 활달하고 친구도 많았지만 주의가 산만한 편이고 성적의 기복도 심해 교사와 부모에게 잦은 지적을 받아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잘 지내던 친구들도 고교생이 되자 공부에 바짝 신경 쓰는데 놀기만 재촉하는 우리 둘째를 짜증스러워 하는 눈치를 보였다”는 그녀는 “진작 알아채 전학시킬 것을 아이도, 부모도 기진할 때까지 버티다 성적 경쟁에 도태되고 결석이나 조퇴가 잦은데다 초기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난 뒤에야 전문가 권유에 따라 이웃 공립학교로 전학했다”며 둘째에게는 맞지 않았던 명문 사립학교 선택을 후회한다.
하지만 이웃의 새 학교 친구와 벌써 사귀어 서머스쿨을 함께 다니는 등 아이가 다시 밝아지고 있어 희망이 생긴다고 그녀는 말했다.
장기전 염두, 자녀의 학습 성향 파악부터
앤젤라 홍씨
자영업·글렌데일
아들 관심사·재능몰라
전문 사립 못보내 후회
오는 가을 새크라멘토의 작은 대학에 진학해 연극을 전공할 지미는 글렌데일서 태어나 킨더가튼부터 고교까지 공립학교를 나왔다. 어머니 앤젤라 홍씨는 “지미가 7학년 때부터 잡지나 광고 모델로 종종 발탁되곤 했지만 워낙 말없고 내성적인 외아들이라 평생 업으로 삼을 만큼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녀는 아들이 대입 준비를 위해 작성한 에세이를 읽고 난 후에야 진작 적성에 맞는 사립학교를 골라 보내주지 않고 공립학교에만 ‘방치’해 뒀던 것을 후회하게 됐다고 한다.
홍씨는 “특히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다. 비로소 살아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그 동안 매그닛 프로그램만 골라 보내며 방학마다 학원이다, 과외다, 들볶았던 나 자신이 어찌나 미안했던지…”라며 자책한다.
아버지도 “남가주엔 연극을 지도하는 전문기관도 많고 특히 LA인근엔 무대예술로 유명한 사립고교도 있을 뿐 아니라, 학생수가 적은 대다수 사립고교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취미나 특기를 살려 특별프로그램을 개설하기도 한다던데, 진작 알았더라면 까짓, 하나 뿐인 외아들 사립학교 학비 뒷바라지쯤 못 했겠냐”며 못내 아쉬워했다.
동네 친구들 다니는 공립이 좋아
■박해영씨 <산부인과전문의·라카냐다>
한때 세 자녀를 모두 사립 초등학교에 보냈던 산부인과 의사인 박해영씨는 “큰 아이의 중학교 진학문제로 라카냐다의 사립 중학교에서 상담나온 카운슬러로부터 ‘이 동네에 사는 나도 아이들을 모두 공립학교에 보낼 정도로 이 동네 학교들이 좋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을 모두 공립 중고교로 보냈다”고 한다.
1.5세인 박씨는 “당장 라카냐다 중·고교의 커리큘럼을 검토해 봤더니 짜임새 있는 교과과정과 특별활동 프로그램 등이 썩 좋았다”며 “전 사립학교에 다닐 때는 생일초대나 방과후 활동을 하려해도 부모의 교통편 제공 없이는 꼼짝 못하는 처지였는데, 학교 친구가 곧 동네 친구인 이곳에선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해 만족스럽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동문간 우애가 각별하고 면학분위기도 좋은데다 학업 관리도 매우 우수하다고 공립학교에 만족한다.
학비는 빼 놓을 수 없는 부분. “큰딸을 재정보조를 받고 동부의명문여대 웰슬리로 가게 됐다”는 그는 “사립고교에 아이 셋을 보내려면 의사 수입으로도 벅차다. 가뜩이나 대학 학비가 날로 치솟는 요즘, 아무래도 사립고 출신보다 공립고 출신에게 재정보조의 문이 넓을 것 아니냐”고 한다.
전문가 의견
알렉스 허
UC버클리 한인 입학사정관 알렉스 허(아이비교육센터 원장)씨는 공·사립고를 선택하기 전에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자녀의 학습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또 ▲진학 희망대학의 신입생선발 경향 ▲고교의 대학진학 통계 등을 알아보고 학교선택을 할 것을 권한다.
허씨에 따르면 각 고교의 학업 경쟁 정도는 그 학교가 공·사립 여부와는 상관없으므로 진학을 고려 중인 학교의 면학 분위기나 성적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즉 ‘사립고교라 해서 반드시 학업 경쟁이 높고 상대적으로 공립에 비해 성적이 좋아지는 것은 절대 아님’을 알아둘 것을 강조한다. 단 “공립고교에 비해 학생 수가 적은 사립고교는 평가제도에 있어서 에세이나 주관식 등 질적 평가를 위주로 하고 있어 학생들의 작문 실력이 크게 늘고, 또 대학에 들어가서도 공부하기 수월한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자녀의 학업성향이 경쟁이 치열할수록 더욱 자극을 받아 분발하는 타입이라면 공사립을 불문하고 소위 성적우수고교에서 도전적인 경험을 쌓는 것도 바람직한 선택. “하지만 상담을 의뢰하는 많은 한인 학생들은 고교과정 초기엔 악착같이 따라 붙다가 심한 경쟁이 지속되면 오래 버티지 못해,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곧 바로 포기하는 편”이라고 경험을 전한다. 이 경우 “오히려 처음부터 학업 경쟁이 평균 정도 되며 다양한 학생들이 모인 공립고교에 진학해 자신을 개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이 뚜렷하다면 그 대학의 신입생 선발 최근 경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남가주 명문사립 하버드웨스트레이크 고교는 하버드, 북가주 명문 멘로고교는 스탠포드에 매년 가장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는 고교로 정평이 나 있는 등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MIT 등 아이비 플러스에는 절대적으로 많은 졸업생을 입학시키는 사립고교가 있게 마련”이라고 전했다. “반면 UC를 비롯한 대다수 명문대들은 출신 고교의 공사립 체계보다는 각자가 처했던 학습환경을 볼뿐이므로 학생의 개 성취도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매년 모든 공사립 고교는 대입 통계를 집계하며 이는 공공자료로 각 고교신문이나 학부모 통지서에 발표하거나, 칼리지 카운슬링 오피스에 요청하면 제공하도록 돼 있다”며 “각 고교의 대입 통계는 수 년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편이므로 최근 통계로 희망 대학 진학률을 가늠해 보는 것도 공·사립고 진학결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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