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은 아버지 날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아이들이 뭔가 정성스레 준비한 것을 꺼내어 놓았다. 딸아이는 발레를 하면서 찍은 예쁜 사진을 담은 액자를 만들었고, 아들은 아빠가 여행 다닐 때 사용하라고 알람이 있는 작은 시계를 샀다. 아이들은 서툰 한국말로 카드를 적었다. 카드 안쪽에는 스타워즈 그림을 그려 넣고, 넘버원 아빠라고 썼다.
카드와 선물이 아이들의 손에 들리기는 했지만, 사실은 엄마의 마음과 수고를 담은 것이었다. 아들은, 시계를 뜯을 때, 제가 준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나보다도 더 궁금해했다.
아내는 바지를 선물했다. 내가 좋아하는 곤색이었다. 나는 웬만하면 바지나 신발 같은 것은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중고품가게에서 구입하곤 한다. 중고지만 꽤 쓸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가끔 눈에 띄면 들르기를 좋아한다. 옷걸이가 제법 괜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간혹 정장 외제양복도 20달러 미만에 구입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늘 남이 입던 옷을 입는 것에 대해 굳이 말리지는 않았어도, 내심으론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는데, 아버지날을 핑계 삼아 새 바지를 사다 준 것이었다. 우리와 함께 지내고 계신 아버님을 위해서도, 셔츠와 바지 두 세트를 선물로 준비했다.
바지가 좋아 보이기도 하고, 마침 필요했기에 만족스런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아내는 선물로 준 옷을 굳이 우리가 입어 보길 원했다. 아버님 방에 가서, 색이나 디자인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입어 보라고 독촉을 하고는, 내게로 와서도 입어 보라고 했다. 아버님도 머쓱해서는 새 옷을 입고 나오셨다.
아내는 몇 차례나 우리에게 물었다. 옷이 어떤지, 잘 맞는지, 색상은 어떤지, 옷이 편한지... 자꾸 물었다. 참 좋다고 대답했지만, 묻고 또 묻는다. 아버님이나 나나, 고마운 마음에 색도 맘에 들고, 몸에도 잘 맞고, 너무 잘 샀다고 칭찬과 감사의 말을 했다.
아내는 우리가 새 옷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앞에서도 보고, 조금 있다가는 뒤로 돌아가서 보고,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자꾸만 훑어보며 보람에 넘친 얼굴로 너무나 좋아했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새 옷을 입은 것이 그렇게도 좋을까?
미국교회를 담임하던 시절, 일년 중에 교회가 꽉 차도록 교인들이 많이 모이는 날은 정해져 있었다.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혹은 성탄절이었다. 그러나, 5년 동안의 통계를 내어 보니, 오히려 그 유명한 절기보다도 더 많이 모이는 주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어머니날이었다. 흩어져 있던, 모든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노부모님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주일 아침예배에 참석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꼭 한달이 지나 어김없이 아버지날이 오지만, 아버지날은 도무지 아무런 인기가 없다. 평상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주일을 지나곤 했다. 어머니날 점심이나 저녁은 외식을 한번 하려면 예약을 일찍부터 하지 않고는 쉽지 않지만, 아버지날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어머니날만 있었지, 아버지날은 원래 없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어머니날이 어버이 날로 바뀌면서 아버지들도 끼워 주었다.
왜 아버지날과 어머니날은 차이가 나는 것일까?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기독교윤리 시간에 한번은 교수가 ‘성취와 희생’이란 주제를 갖고 토론을 유도했다.
목표를 성취하려면 희생해서는 안되고, 희생하면 목표의 성취를 포기해야 하기에, 딜레마와도 같은 두 개의 주제가 어떻게 긴장을 피하고 조화될 수 있는지를 기독교 윤리학적인 관점에서 살피는 시간이었다.
나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에서, ‘희생과 성취’ 이 둘이 긴장관계가 아니라는 해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희생을 통해 성취를 경험하신 분들이다.
이 둘 사이에서 고민하지도 않으셨고, 별다른 이론을 세울 필요도 없었다. 다만,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역설적인 진리를 몸소 삶으로 보여 주셨다.
어머니들은 새 옷을 사 입으면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 입히면서 보람을 맛보았다. 밤늦은 시간 식은 국을 몇 차례씩 데워가며 식구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희생을 먹고, 우리는 대학도 가고, 유학도 왔다.
우리는 그런 어머니들의 은혜와 돌봄을 입고 컸다. 그러기에, 아버지날이 되어 박수도 받고, 선물도 받았지만, 왠지 어머니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은 오히려 당연한 것일까?
김동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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