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일년에 한번 아니면 이년에 한번 정도로 꾸어지는 꿈이 있다. 왜 매번 비슷한 꿈을 꾸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내 무의식 깊은 곳에 공포나 억압기제로 남아 있다가 불현듯 꿈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20년도 훨씬 넘은 기억 저편의 일이 꿈에서는 생생한 현실의 일로 나타나 언제나 힘들게 안간힘을 쓰다가 꿈에서 깨고 나면 안도하게 되는 그런 일이.
그저께도 그런 가위눌리는 꿈을 꾸고는 간신히 깨어보니 새벽이었다. 한창 자라날 나이엔 무서운 꿈을 꾸고 나면 키가 큰다고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지만 이 나이에 키가 클 이유는 만무하고 그렇다면 정신의 키라도 클려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꿈속에서라도 다시는 그런 현실과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절대로 그런 비슷한 상황에는 놓이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일이학년 때 체육시간이 있는 날은 나는 늘 학교 가기가 싫었다. 특별히 몸이 약하거나 운동신경이 둔해 체육시간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일주일에 두번은 매번 학교 가기가 그렇게도 싫었었다. 체육 선생님의 수업방식이 내게는 너무나 공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운동장에 모여 대오를 짓고 체조로 몸을 푸는 것까지는 그저 평범한 체육시간이겠으나 끝나기 십여분을 남겨놓고 시키는 달리기는 그야말로 소수의 승자만이 살아남는 이상한 방법이었다. 먼저 운동장 한쪽에서 마주 보이는 끝까지 한반 60명을 함께 뛰게 하는 것인데 뛰는 속도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끝에서 20명은 15대, 또다시 남은 40명을 뛰게 해서는 처지는 10명을 골라내서는 10대, 다시 남은 30명중 10명을 골라 5대… 결국 20명만이 맞지 않는 이상한 방식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같은 반 다른 친구들이 나보다 앞서 뛰면 내가 기를 쓰고 뛰어도 소용이 없는 그런 일이었다. 앞에서 뛰던 친구가 발이 엇갈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나도 일으켜 세워줄 수도 없이 그 넘어진 친구를 피해 앞으로, 앞으로 달려야만 하는 뜀박질. 선택받는 20명이 되기 위해 아무 생각도 없이 친구와 팔이 부딪치거나 몸이 부딪쳐도 미안해할 겨를도 없이 달려야만 하는 그 뜀박질이 나는 너무나 싫었었다.
열심히 해서 그 능력만큼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교생활도 실력만큼 인정받는 것에는 이의가 없는 일이지만, 능력이 안 된다고 매를 맞는 일은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뜀박질을 시켜서 잘 뛰는 아이들은 다른 처지는 아이들보다 점수를 잘 주면 그만이지 왜 못 뛴다고 때릴까? 백미터 뛰기를 18초면 18초, 그 기준을 잡아놓고 그 안에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면 친구들과 서로 격려를 해가며 뛸 수도 있었으련만, 넘어진 친구를 피해서 달리게 했던 그 이상한 상황이 너무 분하고 공포스러웠었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는 교육방법이었겠지만 그때는 선생님한테 대들거나 따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넘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다시 체육시간, 하얀색 상의에 곤색 반바지를 입은 내가 운동화 끈을 잘 조이고 뛸 준비를 하고 있다. 두려움에 쿵쾅쿵쾅 뛰는 심장소리가 들리고 야무지게 진 두 주먹엔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탕! 소리에 맞추어 뛰기 시작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해 넘어지고 만다. 그때 우리 반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작은 키에 뚱뚱했던, 안짱다리였던 그 친구, 늘 달리기에서 꼴찌였던 유숙자, 그 아이가 나처럼 넘어져서 울고 있다. 아~! 마대자루에서 떼어낸 몽둥이로 맞겠구나, 무서움으로 눈물이 흐르고…
깜짝 놀래서 깨어보니 꿈이다. 그저께 새벽에 꾼 꿈이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내용은 늘 비슷한 그 꿈이다. 쥐가 나거나 체육복 바지 고무줄이 헐거워져서 잘 뛰지 못하는 그런 류의 꿈.
친하지 않아서 한번도 생각나지 않았던 유숙자라는 친구를 꿈속에서 만나고 나니 그 친구는 어떻게 잘 지내나, 잠깐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체육시간에 여러 번 넘어졌던 그 친구를 그때에는 한번도 일으켜 세워주지를 못했었다. 지금 같으면 체육선생님의 매가 아무리 무섭다해도 넘어져 있는 숙자의 손을 한번은 잡아줄 수 있을 텐데…
마흔을 넘기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인생이라는 달리기에서 쥐가 나고 넘어질 때가 있다. 무섭고 자신 없어서 때때로 남모르게 울기도 하는데, 나보다 훨씬 힘이 없어 넘어지기만 했던 그 유숙자 같았던 친구는 내 옆에는 없었는지, 살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보았다 하더라도 내가 달리기 위해서 그냥 지나쳤겠지…
갑자기 전우익 할아버지가 쓴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제목이 생각난다.
이영화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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