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은 아버지날
‘아버지 학교’ 통해 변화된‘ 행복한 아버지’ 이병섭씨 가정
물질적 풍요보다 가족과 함께 사소한 일상 나누는게 중요
“아버지, 당신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세상은 아버지께 변하라고 합니다
자녀들의 사소한 일에 신경 써주는 아버지, 자녀교육과 가정사를 아내와 함께 의논하는 아버지가 환영받는 시대, 딸 자람이와 아들 정근이의 손을 꽉 잡고 걸어가는 이병섭씨의 환한 미소가 아내 이상주씨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행복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이병섭씨와 이정근군.
6월 셋째주 일요일인 19일은 아버지날(Father’s Day)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자녀의 삶에 있어 교과서가 되는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존재. 두란노 아버지학교 김성묵 국제본부장이 펴낸 신간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읽어보면 ‘그 아버지에 그 아들(Like Father, Like Son)’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아버지를 진정으로 용서해 은연중에 대물림된 아버지상으로부터 자유스럽게 만들고, 그 자유를 통해 새로운 아버지상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 어릴 적 아버지가 보였던 가정에 대한 무관심의 대물림을 끊어버리고, 좀처럼 듣지 못했던 칭찬도 내 아이, 내 아내에게는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 말로는 쉽지만 그렇게 되기가 과연 쉬울까. 마음만으로 자녀를 사랑하다가 아버지 학교를 통해 ‘작은 일상을 나누는 행복한 아버지’로 변한 이병섭(48)씨와 아내 이상주(43)씨, 딸 자람(16), 아들 정근(13)군을 만났다.
<글 하은선 기자·사진 신효섭 기자>
“좋 은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아이들이 원하는 아버지는 아니면서, 아버지가 바라는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라는 게 문제죠”
지난해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이병섭씨는 요즘 아이들과 말이 통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약속을 지키는 아버지, 거짓말하지 않는 아버지’가 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이씨는 아버지 학교가 끝나면서 그 다짐을 바꾸었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그 시절의 보통 아버지가 그렇듯이 보수적인 집안의 6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된 이씨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정말 많았다. 미국에서 생활하지만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길 원했고, 자기가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 인사성 바르고 겸손한 태도를 지닌 사람, 자신의 주장은 내세우되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커가길 원했다.
그리고, 이씨 스스로가 아버지로서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만큼 아이들도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길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잘했다’는 칭찬은 인색하면서도, 아이들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대하는 면이 있었던 것.
그러나 이젠 바쁜 와중에서도 애써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야단을 칠 때도 무턱대고 화만 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야단맞는 이유를 알게 하려고 노력한다.
“나름대로 아버지 역할, 남편 역할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학교를 다녀보니 실제론 10점도 안 됐던 거죠. 아버지학교를 수료하면서 각별한 애정이 생겼어요. 학교를 함께 다녔던 아버지들이 1년째 큐티 모임을 열면서 그 때 그 감정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이씨가 아버지 학교를 다녔던 시기는 비즈니스가 힘들어졌을 무렵이었다. 풍족하게 누리다가 경제적으로 고전을 하니 스스로 위기감이 느껴지고 괜히 아이들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라는 고백과 더불어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혼자서 꾹꾹 눌러온 고민을 스스럼없이 주위 사람들과 나누다보니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힘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물질적 풍요는 가족을 편안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모두의 마음까지 평화롭게 해주진 못한다는 걸 깨달은 거죠. 가족과 함께 사소한 일상을 함께 하는 행복이 아이들에겐 무엇보다 아버지를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직은 아버지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 아들이지만, 언젠가 자신보다 힘이 세질 아들을 생각하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는 이병섭씨가 아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LA에서 열린 아버지학교 강의 모습.
겉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속마음은 엄청나게 변했다는 이씨에게서 아버지학교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나오자 딸 자람이와 아들 정근이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아이들의 갑작스런 웃음이 수상(?)하게 여겨져 “너희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하고 물어보니, 11학년 자람이에게는 “아버지와 사이가 각별히 좋은 딸(I’m daddy’s girl)”, 8학년 정근이에게는 “한국 비디오를 함께 보고 골프를 함께 즐기는 아버지”라는 모범답안이 돌아왔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아버지를 흐뭇하게 하려는 속셈이 훤한 아이들의 대답이었다.
“그럼, 자람이는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아니요. 우리 아버진 집안 일을 거들어주지 않아서 싫어요”
자람이의 대답은 한 마디로 딱 잘라 ‘노우’(No). 아무리 자신을 ‘대디 걸’이라고 표현했어도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되기엔 아버지의 모습에 부족함이 많은가 보다.
“그래도 쓰레기 내다 버리는 건 매번 아버지가 하잖아?”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 이상주씨가 한마디 거들었지만, 이미 내뱉은 자람이의 한 마디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이씨가 집안 일엔 소홀한 아버지였음을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자신의 전문분야에선 자신만만하지만 아내와 자녀, 특히 가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애정을 표시하는 건 서투른 게 사실이죠. 아직까지 완벽한 아버지는 아니지만, 오늘과 내일이 다른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요즘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게 많다. 아버지 되기는 쉽지만 아버지답게 살기는 어렵다는 말 그대로다. 옛날처럼 돈만 벌어다주는 아버지보다는 가끔은 엄마를 도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까지 해주는 아버지를 좋아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무작정 회초리부터 드는 무서운 아버지보다는 엄한 구석은 있더라도 아이들의 말부터 화내지 않고 들어보는, 말이 통하는 아버지를 좋아한다.
“가족 밥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 우리남자들에게 슈퍼맨을 강요하지 마라”는 불평불만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아버지의 역할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다. 돈 버는 기계를 자처하며 늦은 밤까지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 중독 아버지로 살아가면 좋은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자녀들의 사소한 일에 신경 써주는 아버지, 자녀교육과 가정사를 아내와 함께 의논하는 아버지가 환영받는 시대인 것.
집안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가부장적 권위 대신 ‘좋은 아버지’가 미덕이 된 지금, 부지런히 배워서 새로운 아버지상을 확립해야 가족이 즐겁고, 아버지 자신도 편안해진다.
“이 다음에 아들이 커서 아버지가 됐을 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소리를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질 만큼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병섭씨처럼. <글 하은선 기자·사진 신효섭 기자>
<두란노 아버지학교>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아버지학교는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의 두란노서원(원장 하용조 목사)이 개설한 크리스천 남성회복운동이다. 미주 아버지학교는 2000년 여름 포틀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LA두란노에 본부를 두고 서울 아버지학교 운동본부와 연계하여 미 전역과 캐나다, 남미 지역에서 아버지학교를 개설하고 있다.
아버지날이 들어있는 6월 일정만 봐도 좋은 아버지 되기 운동이 얼마나 활발한지 느낄 수 있다. LA지역은 6월18∼26일, 롤랜하이츠의 아름다운교회에서 LA 25기가 운영되고, 애틀란타 4기(11∼19일, 한빛장로교회), 라스베가스 4기(6∼14일, 영광교회), 시애틀 14기(4∼12일, 에버렛 한인장로교회), 알래스카 2기(17∼19일, 동양선교교회), 샌호세 8기(4∼12일, 콩코드 한인침례교회) 등이 실시된다.
그렇다면 아버지학교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까. 진행자인 팀장과 조장에 따라서 내용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기본 골격은 같다.
지원한 아버지들은 먼저 자신의 아버지와 자녀, 아내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 과제물로는 자녀나 아내와 데이트하기, 자녀 또한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 20가지 쓰기 등이 나간다. 교육이론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그 동안 ‘쑥스러워서’ 또는 ‘귀찮아서’ 등의 이유로 표현하지 못했던 행동을 가정에서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 주에는 아버지와 가정이라는 주제 아래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참석하는 화해의 장을 마련하고, 아버지학교의 하이라이트인 아내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준다. 미주 본부 문의 (213)382-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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