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지난 주 킹스 캐년에 다녀왔다는 주방일기와 관련, 몇몇 독자와 동료들이 개인적으로 질문을 해왔다. 좀더 자세한 여행정보와 우리 가족이 다녀온 코스들을 물어왔는데, 그 중에 여자들마다 공통적으로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이 있었다. “거기서 캠핑했어요?”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캠핑하기 싫어하는 여자들의 심리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으랴. 일단 그 질문에 답부터 해두자. “아니요, 캠핑 안하고 모텔에서 잤어요”
나는 ‘캠핑 알레르기’ 체질이다. 나와 캠핑의 악연은 지금으로부터 8년전 다음과 같은 회복불능의 관계를 통해 맺어졌다.
그때도 메모리얼 위켄드, 교회의 구역식구 다섯집이 세코야 국립공원에 2박3일 캠핑을 간다며 우리를 초청하였다. 캠핑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우리 가족은 멋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텐트며 슬리핑백을 새로 장만해 단체여행에 따라나섰다.
산 속에 텐트를 치고 맑은 공기 속에서 별을 보며 잠드는 캠핑을 해야 진정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텐트에서 자야 하는 밤이 얼마나 추운지, 샤워를 하지 못하면 얼마나 꾀죄죄해지는지, 밤에 화장실에 가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버너에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쪼그리고 앉아 설거지하는 일들이 얼마나 귀찮은지에 대해서는 사전에 전혀 들은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불편 중 나를 가장 분노케한 것은 해 떨어지고 난 뒤에 찾아오는 산중의 추위였다. 가져간 옷을 모조리 껴입고, 밍크담요까지 깔고 덮고 슬리핑백에 들어갔지만 온몸에 저며드는 한기는 그 무엇으로도 달랠 길이 없었다. 이를 딱딱 마주치며 사시나무 떨 듯 떠느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며, 온 몸에 하도 힘을 주고 오그린 탓에 팔 다리 어깨 허리 등 삭신이 쑤셔서 운신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한사람 두사람 텐트에서 나오더니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고 결국 일행의 반 정도는 그날 밤 밖에 나와 두런두런 캠프파이어 불을 쪼이며 훤하게 동터오는 새벽을 맞이했던 것이다.
밤새 1초도 못 자고 떨었던 나는 해가 뜨자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어떻게 또 오늘밤을 보낼 것인지로 걱정과 고민을 거듭하였다. 나는 우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그만큼 고생했으면 다들 ‘우리 고만 집에 가자’, 그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하룻밤을 또 그 추위 속에 보내려는 것인가?’ 내 눈에는 다들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남편을 꼬시기 시작했다. 또 하룻밤 벌벌 떨며 밤을 새우는 것은 미친 짓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내게 말을 해달라. 남들이 뭐라든 우리가 먼저 돌아가는 용기를 보이자…
단체여행이었던 관계로 눈치를 보며 망설이던 남편은 나를 어떻게든 설득해보려 하였지만 도대체 왜 그런 고생을 또 해야하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한 탓에 짐을 꾸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들 놀라서 쳐다보는 가운데 우리는 텐트를 접고 단체에서 이탈하여 하루만에 떠나오고 말았다. 그때 이후 우리 가족은 구역 식구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으며 캠핑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두고두고 씹혀야 했다.
그때 이후 내 인생에서 캠핑이란 낱말은 아예 지워버렸다. 따라서 우리 가족은 산이고 바다고 사막이고 어디로 놀러가든 인근 가까운 곳의 숙박시설을 찾아 미리 예약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다. 지난 번 킹스 캐년 여행 때도 한시간이나 떨어진 프레스노의 베스트 웨스턴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다시 한시간을 운전하여 산에 들어갔다 나왔던 것이다.
여자들은 씻고, 자고, 샤워하고, 화장하고, 머리하고, 화장실 가고… 그런 것이 편하지 않으면 여행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 편안하고 기분 좋게 쉬려고 떠나는 것이 여행인데, 가장 기본적인 추스림이 편안하지 못한 여행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젠 나이도 이만하게 먹고 나니 고생이 될 만한 여행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여행을 가면 고생을 해야 추억이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고생 안 하고 잘 먹고 잘 놀다온 여행이 훨씬 더 즐거운 추억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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