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3학년인 작은아들이 5학년인 제 누나 방에서 쫓겨나서는 울고 있었다. 누나가 소리를 지르면서, 당장 나가라고 불호령을 내린 것이 못내 서운해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왜 누나가 야박하게 동생을 쫓아내야 했는지 물었더니, 옷을 갈아입느라고 그랬단다. 전에는 동생이 있는데서도 옷을 잘 갈아입더니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샤워를 하고 나면, 벌거벗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동생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일이다. 결국, 아빠마저도 접근 금지 대상 목록에 오르고 말았다. 이제는 아빠가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어야 할 때가 된 딸아이를 보면서 대견스런 마음과 함께 만감이 교차한다.
딸아이가 요즘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에 ‘패밀리 라이프’(Family Life)라는 과목이 있다. 공부 내용은 다름 아닌 남자 여자가 성장하면서 어떻게 신체구조에 변화를 가져오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아이는 실제로 자신의 신체가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운가 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엄마에게 열심히 가르쳐(?) 주면서 말이 많아진 것을 보면 알 것 같다. 딸아이는 남동생이 있어서 이미 볼 것(?)을 다 보았기 때문에, 남자 형제가 없는 아이들보다 공부하는데 훨씬 이해가 쉽다고 한다.
아직 성에 대해서 자세히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것까지는 가르쳐 주는가 보다. 나는 어려서 학교에서 그런 것을 배워 본 적이 없어 꽤나 궁금한 생각이 든다. 벌써부터 그런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우리 때는 친구들과 함께 자습(?)을 통해서만 배웠는데,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르쳐 준다니 자습보다는 분명 학습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갈 때가 기억난다. 벌거벗은 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누워있는 아저씨들을 보면 괜히 미운 생각마저 들었었다. 옆 사람과 목욕탕이 다 울리도록 신나게 떠드는 어른들을 보면, 어른이 되기 싫었다. 그 아저씨들은 양심에도 털이 났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언젠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친구 목사가 선배를 만나는 자리에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몇 마디를 나누더니, 곧 바로 사우나로 향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따라가, 초면의 선배와 함께 목욕을 하면서 교제를 나누었다. 양심에 털 난 아저씨 대열에 스스럼없이 서 있는 나를 보면서 혼자 웃은 적이 있다.
딸아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어른 안되면 안돼?” 어른이 되어가는 변화의 시작을 경험하면서 마음에 뭔지 모를 불안감이 자리하는 것 같다.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거부하고 싶은 마음에, 피할 자리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아내는 자신의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 아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아빠와 엄마가 불러 놓고는 여러 가지를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아빠 엄마에게 직접 사사 받은(?) 것에 대해 늘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딸에게 물려줄 때가 벌써 온 것이다.
엄마는 딸에게 때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이야기 해 준다. 이젠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어린 딸에게 이야기했었을까, 이제야 조금은 알 듯한 마음으로 딸을 안아주며 보람을 느낀다.
이제는 제 침대가 꽉 차는 잠든 딸아이를 보니, 제법 처녀티가 나는 것만 같다. 늘 그러하듯, 자랑스런 마음으로 손을 얹어 잠든 아이를 축복하며 기도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질서, 그 안에서 생명을 풍성히 누리며 행복하라. 성장하는 아픔을 넘어 서서 아름다운 생명을 가꾸어라. 성숙한 인생을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감사함으로 보듬어 가라. 돌짝 밭을 헤쳐나가는 아픔이 있더라도, 뿌리를 깊이 내려라. 거기 예쁜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리라”
어디선가 아이들이 잘 크라고 ‘성장탕’을 선전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이 쑥쑥 커주기를 기대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성장탕보다도, ‘성장통’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이 아닐까? 언젠가 아들 녀석과 함께 보이끼리 성장통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때가 올 것을 기대해 보면서,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김동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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