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최근 남북실무자회담을 통해 북한에 비료 20만톤을 지원키로 하고 즉시 선적에 들어갔다. 조국의 운명이 걸린 북한 핵 문제는 아랑곳 않고 비료만 선뜻 내어주는 것이 과연 옳은 정책이냐는 논란은 별개로 하고 북한의 황폐해진 농토는 비료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대북 비료지원의 성격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야할 사실이 있다. 비료지원을 이른바 ‘인도적 지원’ 품목에 포함시키는 것은 세계 역사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이론이란 점이다.
비료가 화약원료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지난번 용천 폭발사고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그만큼 주의를 요하고 분배·사용과정에 대한 철저한 투명성이 요구되는 물품이다. 얼마전 한 관계부처 공무원을 만날 기회가 있어 이 문제를 제기 했더니 답변이 가관이었다. “아직 미국 정부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니 괜찮지 않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지원되는 물자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무조건 수용하는 대부분의 국민 인식도 문제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비료를 화약제조 물질로 전용하지 않더라도 다른 문제가 있다. 지난 수년의 전례를 보면 이 ‘인도적 차원’의 지원비료를 북한당국이 실수요자인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지 않고 돈을 받고 팔았던 일들이 있었다. 한국 국민들이 낸 세금이 결국 북한의 정권유지 비용으로 사용된 것이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포장 하에 국민의 귀와 입을 막고 있는 다른 사례가 또 있다. 대북 쌀 지원이 그것이다.
현재 한국 정부가 하고 있는 북한 식량 지원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세계식량기구(WFP)를 통해 지원하는 것과, 장기 저리 융자방식이다.
한국 정부는 2001년 10월 북한 당국과 맺은 장기저리융자 방법을 사용해 매년 30~40만 톤에 달하는 쌀을 지원해 오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국내 쌀값이 비싸니 국제 현물가격으로 처리하고 그 차액은 국민 세금으로 상쇄한다는 것은 상당히 알려진 사실이다. 2001년 남북간 쌀 지원 협상 당시 북한당국은 현물차관 방식에 강력히 반대했다고 한다. 반면 한국 정부는 당시 국내에서 큰 문제가 되어 있던 결식아동, 노숙자 문제 등으로 대북 무상지원이 국민감정에 좋지 못하게 비쳐질 수 있을 것을 우려해 현물차관 형식을 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런 현물차관 방식을 거부하는 북한 당국을 설득한 한국 정부의 논리였다. 한국 정부측은 북한측에 “이렇게 빌려주는 돈은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형식적인 절차만 밟아 달라”고 해서 계약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 현물차관은 대북 지원 누계에도 잡히지 않으니 국회에서 통과된 대북 지원 상한선(연간 5,000억원)을 피해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다고 추측된다.
그후 수년 동안 한국 정부는 현물차관 형식으로 대북 쌀 지원을 해 왔다. 도대체 이 명목으로 북한에 나간 차관 누계가 얼마가 되는지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규명해야 할 문제이다.
굶주림에 죽어 가는 북한 동포를 지원하자는 대의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국제사회는 그 분배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 ‘인도적 차원’이라는 이름으로 지원되는 물품들이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 전달되는지를 알고자 한다.
국제사회는 이제 그런 대북 지원의 투명성 확보에 한국 정부가 장애가 된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나아가 북한 정권이 ‘인도적 지원’ 물품까지도 팔아 정권유지비용으로 충당하고 이를 한국 정부가 일조하는 결과는 장기적으로 남북관계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남재중/이지스재단 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