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가정들도 입양 편견 버릴때”
이제 막 돌이 지나 걸음마 배우기에 한창인 나탈리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 케이티씨와 아빠 브라이언씨. 푸른 잔디에서 펼쳐 보이는 다섯 살 하이디의 유연한 덤블링에 환호하는 아빠 제이씨, 여덟살난 개구쟁이 아들 조셉의 뒤치닥거리에 벌써 기진맥진한 엄마 경미씨… 햇빛 좋은 주말 휴일, 집 가까운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이 평범한 여느 가족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으로 한가로이 휴일 한때를 보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엠펙’(MPAK: Mission to Promote Adoption in Korean)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입양’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사람들. ‘엠펙’은 ‘한국 아이들을 입양한 한인 가족들의 모임’으로 지난 99년 스티브 모리슨씨에 의해 설립된 단체. 한국에서는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라는 이름으로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에게 새로운 한국인 부모와 가정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양부모된 입양아 출신 “가족은 사랑으로 이루는것”
한국아동 입양가족 ‘엠펙’
엠펙의 창설자 스티브 모리슨씨는 언뜻 이름만 보면 외국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은 순수 한국인. 그도 14세 때 고아가 되어 미국으로 입양돼 미국인 부모 손에 자라난 입양아였다.
오랫동안 미국 국제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봉사하면서 ‘가정이 없는 한국 아이들이 한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란다면 더 행복할 텐데’ 하는 생각에 엠펙이라는 단체를 만들게 되었고, 이 단체를 통해 한국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입양에 대한 인식이 좋은 나라가 될 때까지 열심히 활동하는 것이 그의 목표가 되었다.
“매년 수없이 많은 한국 아이들이 부모에게 버려져 해외 가정으로 입양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남의 나라에 우리 아이들을 떠맡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한국 사람들도 입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가족이 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가족만큼 좋은 울타리는 없거든요”
예전보다 입양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있는 ‘내 핏줄, 내 자식’에 대한 생각은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아직도 그 문이 굳게 닫혀있는 실정이다.
정작 부부끼리는 합의가 되어 입양을 하고 싶어도 시댁과 친정 어른들의 반대로 입양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비공개, 비밀 입양 때문이에요. 어릴 때야 부모나 친척들이 쉬쉬하면 숨겨지지만 아이가 다 자란 후까지 어디 그렇습니까?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가 받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래서 예전에 갖고 싶었던 물건을 안 사준 것도, 그렇게 심하게 야단친 것도 모두 양부모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뒤늦게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백이면 백 모두 방황하는 시기를 거치고 지금까지 사랑으로 키워준 양부모와의 관계는 서먹해진다.
입양을 꺼리는 한국 사람들 대부분도 이런 결과가 입양의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양부모라는 걸 밝히고 부모와 자식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 아름답게 맺어진 가족 관계가 어처구니없이 깨져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스티브씨의 설명이다.
“양부모가 지속적으로 사랑과 정성을 쏟으면 아무리 아픈 과거를 지닌 아이라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한결 성숙해집니다.
부모는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더욱 애틋한 사랑이 생기고, 아이는 자신을 지켜 봐주는 부모를 보면서 따뜻한 사랑을 느껴 둘 사이의 유대감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5면에 계속>
스티브씨는 그 자신이 조셉을 한국에서 입양해 정성껏 키우고 있는 입양아 부모다. 아내 경미씨와의 사이에 딸만 셋을 두고 있는데, 조셉이 스티브씨의 아들로서 든든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조셉이 우리 집에 온 첫날 밤이었어요. 아이를 방에 데려가 재우려는데 문득 제가 입양 온 첫날 저희 아버지께서 잠들기 전 다 큰 제 이마에 뽀뽀를 해주시던 게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저도 똑같이 조셉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어요. 그때 ‘나를 키워주셨던 아버지 마음이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처음 왔을 때 조셉은 세살 반, 어느덧 5년이란 세월이 지나 지금은 여덟살 개구쟁이 소년이 되었다. 큰딸인 헬렌과 나이는 같지만 두 달이 어려 억울하게(?) 동생이 된 조셉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몰라보게 얼굴 표정도 밝아졌다.
“처음엔 누나와 동생을 유난히 괴롭히더라구요. 하루는 화낼 기운도 없어서 그냥 살며시 안으면서 ‘아니 왜 예쁜 조셉이 이렇게 말을 안 듣니’ 했더니 조셉이 너무 의아해하면서 ‘엄마, 나 정말 예뻐?’하는 거예요. 그 순간 ‘우리 조셉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지 못했구나, 더 많은 사랑을 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이젠 조셉과 하루도 씨름을 안 하면 오히려 허전하다는 경미씨는 입양인라는 스티브씨의 핸디캡을 아무런 갈등 없이 받아들이고, 입양에 대한 남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로 커다란 힘이 되어주고 있다. 결혼 전부터 결혼하면 아이도 낳고 입양도 하자는 스티브씨의 말에 흔쾌히 동의했고, 지금은 조용히 실천하고 있는 것.
이제 막 학교생활을 시작한 조셉. 겉으로는 명랑하고, 쾌활하고, 친구들도 잘 사귀는 개구쟁이지만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갖고 있다. 정기적으로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이들 가족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조셉의 담당 의사는 경미씨 같은 엄마가 없다고 칭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함께 울고 웃고 생활하다보면 정말 내 자식과 입양아의 구분은 없어져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아이니까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저 내가 극복해야할 일이려니 할뿐이죠. 하지만 조셉 때문에 힘든 것 보단 즐거운 일이 훨씬 더 많아요”
5년전 하이디를 입양한, 엠펙 회원가족인 제이씨도 이런 경미씨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처음 아이를 입양할 때는 ‘그래, 이 아이를 부모로서 평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오히려 이 아이의 도움을 받고 있더라구요. 이젠 아예 우리가 아이를 입양한 건지 아이가 우리를 입양한 건지 모를 정도랍니다”
결혼하고 오랫동안 아이 갖기를 시도하다 번번이 실패, 포기하고 있던 무렵, 복음방송에서 스티브씨의 입양에 대한 간증을 듣고 입양에 대해 처음 생각해 보았다는 제이씨는 후에 스티브씨를 만나 입양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열심히 기도한 결과 자연스레 하이디와 부모자식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데려와 지금 다섯살이 된 하이디는 운동에 소질이 많다. 특히 피겨 스케이팅에 재주가 많아 요즘 유명한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는 미래 올림픽 유망주(?)다. 하이디를 옆에 꼭 붙들어 둔 아빠는 ‘우리 딸이 실력은 되는데 나이가 어려서 올림픽에 못 나간다’며 자랑에 여념이 없다.
“주변에서 우리를 자꾸 대단하다고 하지만 하이디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너무 커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혹시 지금 입양을 망설이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괜한 걱정 때문에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엠펙 회원 가족들 모두가 한결같이 하는 말이 ‘이렇게 좋은걸 왜 진작 안 했나’ 할 정도랍니다” 아내 셰나씨의 행복한 고백이다.
입양의 기쁨과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는 엠펙 회원 가족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서로의 경험담을 주고받으며 전 미주 지역에 한인입양가족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남가주 지역의 회원만도 서른 가족정도로 공개 입양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뿌리를 넓혀가고 있다.
오는 8월에는 LA에서 ‘입양은 사랑이다’는 주제로 LA 한인가정에 공개입양 홍보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입양이나 엠펙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www.mpak.com 을 살펴보면 된다.
<글 성민정 기자 사진 서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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